한국 개신교 1,2위 두 교단의 극과 극을 달리는 행보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9. 19. 20:24


한국 개신교 1,2위 두 교단의 극과 극을 달리는 행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일명 예장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일명 예장통합)


두 교단은 원래는 하나의 교단이었으나 '1950년대에 있던 WCC 가입여부'로 갈라선 교단으로 개신교 신자와 그 규모로 1,2위를 다투는 곳이다. 두 교단의 최근 극과 극을 달리는 행보를 소개하고자 한다. 워낙 유명한 것들이라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예장합동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65405

2013년 7월 18일

예장합동은 교단헌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교인으로서 6개월 이상 예배에 출석하지 않거나 십일조 헌금을 드리지 않는 교인은 권리가 자동 중지된다(3항)' 라는 부분을 삽입하고자 하여 논란을 빚었으며, 최소한의 조치라는 둥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들이 절대적 권위로 믿고 따르는 성경에 의하면 '십일조'는 교회에선 존재자체가 없어진 것이므로 비성경적인 사이비의 주장이다.

예장합동은 그동안 이단판정을 자신들 마음대로 내리고 있는데, 스스로가 사이비(이단이 아님)의 짓을 하고 있다.



*예장통합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66856

2013년 9월 12일

예장통합은 정기총회에서 '세습방지법(담임목사직 대물림)'을 논의하였다.

장로들은 '헌법개정은 절차가 필요한데다 개정한지 얼마 안되었고, 개교회가 정해야할 문제' 라고 반대를 주장했으나 오히려 목사들이 '무조건 찬성'을 외치면서 회의장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84%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으며, 헌법개정은 나중에 하도록 하기로 하고 세습방지를 즉각시행하기로 하였다.



->예장합동이 변명을 늘어놓기를, 총회에서 2/3 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노회에서 찬성해야 해서 교단헌법개정까지 총 2~3년이 걸린다며 안될 가능성도 있다고 구구절절 이야기 할때, 예장통합은 구체적 법안도 없고 헌법개정도 안했지만 통과했으니 즉각시행하고 교단헌법개정은 추후에 하기로 한다고 이야기 했다.


만약 당신이 개신교인이라면, 어느 교단, 어느 교회, 어느 목사를 신뢰해야 할 것인가?

요한계시록의 오류 - 수정/첨가/삭제가 이루어진 구절

종교경전/본문비평 2013. 4. 24. 03:13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공동번역)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말해 둡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벌하실 때에 이 책에 기록된 재난도 덧붙여서 주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떼어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의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하느님께서 떼어버리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 책에 뭔가를 더하거나 빼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는 글귀'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는 누군가가 더한 구절이 있다.


요한계시록 16장 14~16절(공동번역)
14절 : 그것들은 악마들의 영으로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자들이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을 위해서 온 세계의 왕들을 모으려고 나간 자들입니다.
15절 : 그 때에 "잘 들어라. 내가 도둑같이 오겠다. 벌거벗고 다니는 부끄러운 꼴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6절 : 그 세 악령은 히브리 말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14절과 16절은 연결되는 부분이고 15절은 전혀 엉뚱한 내용이다. 15절을 삭제하고 읽으면 더욱 문맥에 맞는다.

요한계시록이 무오하며 정말 예수의 계시라는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고한다.

'이미 요한계시록은 수정/첨가/삭제가 이루어졌으며, 예수의 계시가 절대 아니다'

개신교의 성경 외부에서 잘못 사용되는 신조어 1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4. 24. 03:06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일단 이 단어는 어느 사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신조어이기 때문에 의미를 생각하고 사용예시를 통하여 뜻을 풀어보아야 한다.

-개신교의 성경 외부에서 잘못 사용되는 신조어 1

소천(召天) 
부를 소, 하늘 천

사용예시)"아무개 목사님이 x년x월x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셨다"

개신교에서 이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의도한 바는, 목사가 죽어서 하늘나라(천국)에 들어갔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사실 수 많은 상식있는 목회자들은 이 단어를 꾸준히 비판해왔다.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에, 어법에도 맞지 않는다.

사람은 죽어서 자신이 직접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신이 천국행에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불러올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 양 적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천을 사용한다고 치더라도 "소천되셨다" 라고 표현함이 옳다.

더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라는 표현을 집어 넣기도 하는데, 이는 의미의 중복을 가져와 어법에 맞지 않다. 소천 자체에 이미 하나님이 불렀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으므로 이는 '겹말(첩어)'에 해당한다. 겹말의 대표적 예시로는 알라신(뜻은 신신), 역전앞(뜻은 역앞앞) 등이 있다.

아마 이 단어의 형성과정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승천 (昇天) 1. 하늘에 오름.
소명 (召命) 2. <기독교>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 ‘부름’으로 순화.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두 단어를 비교하여 보면, 아마 승천과 소명을 즐겨쓰는 개신교의 특성상 두 단어를 조합했을 것이다. 어쨌든 잘못된 단어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개신교의 성경 내부에서 잘못 사용되는 신조어 1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4. 24. 03:02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일단 이 단어는 어느 사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신조어이기 때문에 의미를 생각하고 사용예시를 통하여 뜻을 풀어보아야 한다.

-개신교의 성경 내부에서 잘못 사용되는 신조어 1

기묘자(奇妙者) : ‘기묘하다(생김새 따위가 이상하고 묘하다)’의 어근 + 사람 자(者)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사용예시) 
이 단어는 개신교 성경에 2번 등장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중국어' 성경에 해당 부분은 기묘(奇妙)라 번역되었고 한국어 개신교 개역성경 번역자들이 그것을 베끼다 시피하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일단 별로 중요하지 않은 구절부터 보자.

사사기 13:18 개정판은 '사람 자(者)'를 기묘 뒤에 붙였다
(개역개정)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개역한글)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자기의 이름은 비밀(공동번역, 개신교 새번역), 그것은 신비한 것(가톨릭 성경),  It is beyond understanding(NIV), seeing it is wonderful(NASB,RV,ASV), seeing it is secret(KJV), It is a name of wonder(NJB).

문맥으로 보아 쓸데없는 이름 묻기를 하고 있으므로 천사는 대강 대답해주는 부분이다. 자신의 이름은 비밀이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경이롭다 정도의 표현을 쓰고 있다. 느낌이 오는가? 기묘 혹은 기묘자와는 어감 차이가 크다. 더구나 천사의 이름 자체를 '기묘자'로 오인할 소지가 있다.


다음 구절은 그리스도교에서 흔히 메시아 예언 구절이라고 부르는 구절이다.

이사야 9:6 개정판은 '띄어쓰기'를 고쳤다
(개역개정)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개역한글)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탁월한 경륜가(공동번역), 놀라우신 조언자(개신교 새번역), 놀라운 경륜가(가톨릭 성경), Wonderful Counselor(NIV,NASB,RV), Wonder-Counsellor(NJB), Wonderful, Counsellor(KJV,ASV).

이 사람은 놀랍고 경이로운 상담가 조언자 정도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상하고 묘한 사람 정도의 뜻인 기묘자와는 거리가 있다. 개역성경의 모체인 1911구역성경 자체가 일부분은 중국어성경의 번역이었고 후에 선교사들의 영어성경을 번역한 것이며, 개역한글판은 흔히 RV나 ASV를 번역했다고 한다. 더구나 이 표현은 아마도 ASV를 따랐을 것인데, 그 이유는 기묘자와 모사(謀士, 꾀를 써서 일이 잘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 남을 도와 꾀를 내는 사람)를 따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KJV과 ASV는 쉼표를 찍어 두 단어를 따로 쓰고 있는 반면, 다른 성경은 두 단어를 같이 쓰고 있다. 사실 모사 자체도 상담가,조언자,경륜가와는 거리가 멀다.

표현도, 만들어진 방식도, 번역도 참으로 기묘하기 짝이 없다.

조선의 개신교 초기 상황을 알 수 있는 글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4. 17. 00:54

1917년 발표된 소설가 이광수의 무정 中 일부


※참고 : 약 100년전 한국어인 까닭에 지금과 맞춤법과 표현이 일부 다르다. 소설에서 퍼온 것이므로 본인이 작성한 것이 아니다. 단지 조선의 개신교 초기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어떠한지를 제시할 뿐. 1885년 개신교 선교사들의 입국 후 약 30년 후에 발표된 소설이다.


79

김장로의 서재는 양식으로 되었다. 그가 일찍 미국 공사로 갔다 와서부터는 될 수 있는 대로 서양식 생활을 하려 한다.

방바닥에는 붉은 모란 무늬 있는 모전을 깔고 사벽에는 화액(畵額)에 넣은 그림을 걸었다. 그림은 대개 종교화다. 북편 벽으로 제일 큰 화액에는 겟세마네에는 기도하는 예수의 화상이 있고 두어 자 동쪽에는 그보다 조금 작은 화액에 구유에 누인 예수를 그린 것이요, 서편 벽에는 자기의 반신상이 걸렸다. 다른 나라 신사 같으면, 종교화 밖에도 한두 장 세계 명화를 걸었으련마는, 김장로는 아직 미술의 취미가 없고 또 가치도 모른다. 그는 그림이라 하면 종교에 관한 것이라야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고, 기타에는 옛날 산수 풍경이며 지란매죽 같은 그림은 얼마큼 귀하에 여기되, 이러한 그림은 서양식으로 차려 놓은 방에는 부적당한 줄로 안다. 그러고 서양식 인물화라든지 그중에도 미인화, 나체화(裸體畵) 같은 것은 별로 보지도 못하였거니와 보려고도 아니하고 본다 하더라도 아무 가치를 인정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는 미술이라는 말도 잘 알지 못하거니와, 대체 그림 같은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한다. 더구나 조각(彫刻) 같은 것은 아마도 그의 오십 년 생활에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 사람들이 종교와 같이 귀중히 여기는 예술(藝術)도 그의 눈에는 거의 한푼 어치 가치도 아니 보일 것이다. 서양 사람의 생각으로 그를 비평할진대 '예술을 모르고 어떻게 문명 인사(文明人士)가 되나' 하고 의심할 것이다. 실로 문명 인사치고 예술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김장로는 방을 서양식으로 꾸밀 뿐더러 옷도 양복을 많이 입고, 잘 때에도 서양식 침상에서 잔다. 그는 서양, 그 중에도 미국을 존경한다. 그래서 모든 것에 서양을 본받으려 한다. 그는 과연 이십여 년 서양을 본받았다. 그가 예수를 믿는 것도 처음에는 아마 서양을 본받기 위함인지 모른다. 그리하고 그는 자기는 서양을 잘 알고 잘 본받은 줄로 생각한다. 더구나 자기가 외교관이 되어 (미국 서울) 워싱턴에 주재하였으므로 서양 사정은 자기보다 더 자세히 아는 이가 없거니 한다. 그러므로 서양에 관하여서는 더 들을 필요도 없고 더 배울 필요는 무론 없는 줄로 생각한다. 그는 조선에 있어서는 가장 진보한 문명 인사로 자임한다. 교회 안에서와 세상에서도 그렇게 인정한다. 그러나 다만 그렇게 인정하지 아니하는 한 방면이 있다. 그것은 서양 선교사들이라. 선교사들은 김장로가 서양 문명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줄을 안다. 김장로는 과학(科學)을 모르고, 철학(哲學)과 예술(藝術)과 경제(經濟)와 산업(産業)을 모르는 줄을 안다. 그가 종교를 아노라 하건마는 그는 조선식 예수교의 신앙을 알 따름이요, 예수교의 진수(眞髓)가 무엇이며, 예수교와 인류와의 관계 또는 예수와 조선 사람과의 관계는 무론 생각도 하여 본 적이 없다.


문명이라 하면 과학, 철학, 종교, 예술, 정치, 경제, 산업, 사회 제도 등을 총칭하는 것이라. 서양의 문명을 이해(理解)한다 함은, 즉 위에 말한 내용을 이해한다는 뜻이니, 김장로는 무엇으로 서양을 알았노라 하는고. 서양 선교사들은 이러함을 안다. 그러므로 그네는 김장로를 서양을 흉내내는 사람이라 한다. 이는 결코 김장로를 비방하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김장로의 참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서양 사람의 문명의 내용은 모르면서 서양 옷을 입고, 서양식 집을 짓고, 서양식 풍속을 따름을 흉내가 아니라면 무엇이라 하리요. 다만 용서할 점은 김장로는 결코 경박하여, 또는 일정한 주견이 없어서, 또 다만 허영심으로 서양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서양이 우리보다 우승함과, 따라서 우리도 불가불 서양을 본받아야 할 줄을 믿음― 깨달음이 아니요― 이니 무식하여 그러는 것을 우리는 책망할 수가 없는 것이라. 그는 과연 무식하다. 그가 들으면 성도 내려니와 그는 무식하다. 그는 눈으로 슬쩍 보아 가지고 서양 문명을 깨달을 줄로 안다. 하기는 그에게는 그 밖에 더 좋은 방법이 없다. 그러나 눈으로 슬쩍 보아 가지고 서양 문명을 알 수가 있을까. 십 년 이십 년 책을 보고, 선생께 듣고, 제가 생각하여도 특별히 재주가 있고, 부지런하고, 눈이 밝은 사람이라야 처음 보는 남의 문명을 깨달을 동 말 동하거든, 김장로가 아무리 천질이 명민하다 한들 책 한 권 아니 보고 무슨 재주에 복잡한 신문명의 참뜻을 깨달으리요.


그러나 김장로는 그 자녀를 학교에 보낸다. 학교에서 어떤 것을 배우는지 자기는 잘 모르면서도 서양 사람들이 다 그 자녀를 학교에 보내므로 자녀는 학교에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인 줄을 안다. 안다는 것보다 믿는다 함이 적당하겠다. 그러므로 그의 자녀는 마침내 문명을 알게 될 것이라. 이리하여 조선도 점점 신문명을 완전히 소화(消化)하게 될 것이다.


오직 한 가지 위험한 것이 있다. 그것은 김장로 같은 이가 자기의 지식을 너무 믿어 학교에서 배워 와 신문명을 깨달아 알게 되는 자녀의 사상을 간섭함이다. 자녀들은 잘 알고 하는 것이언마는 자기가 일찍 생각하지 않던 바를 자녀들이 생각하면 이는 무슨 이단(異端)같이 여겨서 기어이 박멸하려고 애를 쓴다. 이리하여 소위 신구 사상의 충돌이라는 신문명 들어올 때에 으레 있는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지 못하던 바를 생각함은 낡은 사람이 보기에 이단 같지마는 기실은 낡은 사람들이 모르던 새 진리를 안 것이라. 아들은 매양 아버지보다 나아야 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을 것이라. 그러나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이 자기 아는 이상 알기를 싫어하는 법이니 신구 사상 충돌의 비극은 그 책임이 흔히 낡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라.

기독교(그리스도교)에서 술,담배를 해도 되는가? ver 2.5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4. 8. 04:39

그리스도교에서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안되는지에 관련된 것에 있어 논란종결을 짓고자 하는데, 사실 이 글은 오직 '개신교'에 한정된 글이다. 왜냐하면 천주교 등 다른 어느 그리스도교에서도 술, 담배를 금하지 않을 뿐더러 문제 삼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이 논쟁은 낡은 논쟁이며, 대한민국에서만 논쟁거리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라는 제목의 앞글을 읽고 오면 더 좋을 것이다. 성경은 개신교 새번역을 사용하였다.


그리스도교(기독교, 예수교)는 예수와 야훼(여호와)의 관점이 제일 중요하다. 사도가 아니라. 


<술>

-야훼(여호와)


하나님이 의롭다고 평가한 사람, 직접 약속까지 맺을 사람이 술을 마신다

1.(창세기 9:21) 한 번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기 장막 안에서 아무것도 덮지 않고,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었다. 

->하나님이 의인이라 평한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다. 포도'즙'은 마신다고 절대로 취하지 못한다.

노아에 대한 평가-(창세기 6:9)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2.(창세기 27:25)이삭이 말하였다. "나의 아들아, 네가 사냥하여 온 것을 나에게 가져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서, 너에게 마음껏 복을 빌어 주겠다." 야곱이 이삭에게 그 요리한 것을 가져다가 주니, 이삭이 그것을 먹었다. 야곱이 또 포도주를 가져다가 따르니, 이삭이 그것을 마셨다. 

->하나님이 직접 아브라함에게 약속해서 태어난 아들이자, 이삭의 후손을 통해 12지파도 나오고 약속도 맺겠다고 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한 인물이 포도주를 마셨다.

이삭은 하나님이 직접 태어나게 한 것-(창세기 21:1~7 본문생략)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직접 약속한 이삭을 얻었다. 하나님이 직접 이삭을 통해서 12지파도 나오고 계약도 맺겠다(그리스도교 입장에서 구약)고 말한다.


포도주는 하나님의 축복

1.(창세기 27:28)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슬을 내려 주시고, 땅을 기름지게 하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가 너에게 넉넉하게 하실 것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는 장면이다. 포도주가 넉넉하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준다고 한다. 포도주를 싫어한다면 축복할리가 있는가?


2.(신명기 11:14)

주님께서 당신들 땅에 가을비와 봄비를 철 따라 내려 주셔서, 당신들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거두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이 철 따라 비를 내려줘서 포도주를 거두게 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술을 싫어했다면 포도주를 왜 만들도록 하는 것인가?


3.(출애굽기 22:29)너희는 곡식을 거두거나 포도주를 빚거나 올리브 기름을 짠 다음에는, 거기에서 얼마를 나에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 너희는 맏아들들을 나에게 바쳐야 한다. 

->포도주를 빚은 후에는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제물로 바치고 난 나머지는? (자신들이 마시는 것이다)



술에 대한 금지구절인가?

1.(레위기 10:9)"너의 아들들이 너와 함께 회막으로 들어올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라. 어기면 죽는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이다. 

->하나님이 직접 말하길 술 마시고 회막으로 들어오면 죽는다고 대단히 위협적으로 한 말이다. 이는 레위지파 제사장에게 한 말이지, 이스라엘 국민에게 말한게 아니다. 레위지파 제사장에게도 '회막에 들어올 때' 라는 조건을 달았다. 다른 조건일 때는? (마셔도 된다). 제사장이 술에 취해 제사를 대충 하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임은 상식적으로 알고있다. 지금 레위지파 제사장이 어디에 있는가? 현대 유대교에도 레위지파가 없어서 이 규례를 지킬 사람이 없다.


2.(민수기 6:3)

그는 포도주와 독한 술을 삼가야 한다. 포도주로 만든 시큼한 술이나 독한 술로 만든 시큼한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포도즙도 마시지 못한다. 날 것이든 마른 것이든, 포도도 먹어서는 안 된다. 

->포도주, 포도주로 만든 술, 독한 술, 포도즙, 건포도, 생포도 까지 일일이 구분해 가면서 마시거나 먹으면 안된다고 한다.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문자주의)에 의하면 술은 물론이거니와 '포도'도 먹어선 안된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왜 이런 구절은 입 다무는가? 아마 불리해서 일 것이다. 사실 이 말은 '나실인'에게 하는 말이며,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전부 봉헌하기로 서약한 사람들이다. 성경 속 유명한 나실인은 구약성경의 삼손과 사무엘, 신약성경의 세례자 요한이다.


삼손은 태어나기도 전 부터 하나님이 나실인으로 쓰려고 하면서 그의 어머니부터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한다-(사사기 13:4) 그러므로 이제부터 조심하여,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아라.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 대한 바리새인의 표현을 인용한다-(누가복음 7:33)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앞선 -삼손, 사무엘, 세례자 요한- 딱 3명 만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이 아이를 낳게 해준다는 약속으로 평생 하나님에게 봉헌된 나실인이었으며, 3명을 제외한 나머지 나실인은 일시적 나실인으로 서원기간 동안만 3가지 금지규례가 있었지 기간이 끝나면 술을 마셔도 되었다.


나실인 기간이 끝나면 술을 마셔도 된다-(민 6:20) 그것들을 흔들어서, 그것을 나 주에게 드리는 흔들어 바치는 제물이 되게 하여야 한다. 그것들은, 흔들어 바친 가슴 고기와 높이 들어올려 바친 넓적다리 고기와 함께, 제사장이 받을 거룩한 몫이다. 이런 절차가 다 끝나면, 그 나실 사람은 포도주를 마셔도 된다.


그리스도교인은 평생 나실인이 아니므로 이것은 부정 구절이 되지 못한다.



3.(신명기 29:5~6)나는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를 인도하였다. 그래서 너희 몸에 걸친 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너희 발에 신은 신이 닳지 않았다. 너희는 빵도 먹지 못했고, 포도주나 독한 술도 마시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서, 내가 바로 주 너희의 하나님임을, 너희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이다. 너희는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후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약속의 땅으로 간 다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어떻게 해준 다는 것인가? (먹게 해주겠다)


4.(신명기 32:33)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으로 담근 독한 술이요, 독사의 독이 그득한 술이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인가? 우상숭배자들이다. 이스라엘 국민이 아니다. 그들의 포도주는 독이 가득한 것이면, 우리들(이스라엘 국민)의 것은? (독이 없는 좋은 것).



술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적 평가

1.(신명기 14:25~26)당신들은 그것을 돈으로 바꿔서, 그 돈을 가지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십시오. 소든지 양이든지 포도주든지 독한 술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십시오. 

->2차 십일조이다('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글 참조). 포도주건 독주건 마음에 드는거 아무거나 사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같이 먹으라고 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은 술을 권하고 있다.


2.(민수기 28:7~8)이것과 함께 바칠 부어 드리는 제물은, 숫양 한 마리마다 사분의 일 힌으로 한다. 너는 거룩한 곳에서 독한 술을 나 주에게 부어 바쳐라. 저녁에 둘째 숫양을 바칠 때에도, 아침에 한 것처럼 그렇게 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쳐라. 이것은 향기로 주를 기쁘게 하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하나님께 봉헌하는 제사에 독한 술을 부어 바치라고 한다. 독한 술을 싫어했으면 왜 부어 바치라고 하겠는가?


전체적으로 종합해볼때 야훼는 구약의 제사에 포도주를 사용하도록 했고, 성서에 포도주는 야훼의 축복으로 비추어졌다. 고로 야훼(여호와)는 술에 대해 좋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유대교의 푸림(Purim, 부림)절 축제에서는 필름이 끊길때까지(정확하게는 모르드카이(Mordecai, 모르드개)의 축복과 하만(Haman)의 저주를 구별하지 못할정도까지) 술을 마시라고 가르치고, 실제로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예수

예수는 포도주를 마시고 만들기 까지 했다(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 잔치).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왜 당신과 제자들은 (음식)먹고 (술)마시느냐고 책망했다(공관복음서 3개 모두).

또 포도주는 자신의 피라며 모든 제자들에게 마시도록 했다(공관복음서 3개 모두, 성찬).

즐거울때 마신건 아니지만, 예수는 죽기전 신 포도주를 마셨다(4복음서 모두).


또 예수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 가르쳤다.(마태15:11, 마가7:15~16)


대표적으로 예수의 행동 2가지를 살펴보자.


예수의 포도주에 대한 행동

1.(누가복음 7:34)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바리새인이 예수를 비난하는 구절이다(결국 예수가 읊어주긴 했지만). "마구 먹어대는 자, 포도주를 마시는 자, 세리와 죄인의 친구" 라고 비난한다. 예수는 포도주를 마셨다. 이를 예수가 직접 바리새인의 비난을 인용하며 인정했다.


2.(요한복음 2:1~12 '가나의 혼인잔치' 본문생략)

->예수가 직접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이다. 더러 이 구절을 포도'즙'이라 주장하려 하나, 이는 끝까지 읽지 않은 과오를 범한 실수이다. 10절에서 '손님들이 취한 뒤에'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지금 잔칫집 손님들은 포도주에 취해있다. 그런데 맛 좋은 포도주가 나오자 놀라며 반문하고 있는 중이다. 포도'즙'은 절대로 취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종합해볼때 예수는 술을 즐겼으며, 좋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


*진짜 사도 바울의 편지(로마서,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 전서, 필리피서, 필레몬서)


진짜 사도 바울의 편지 고린도전서 8장에서는 음식은 야훼에게 가까이 가는 것과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으며(8절), 믿음이 약한 새신자가 내가 먹는 고기(주석-유대교는 특히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됨. 어떤 고기든 도축 과정도 신경써야함)때문에 흔들린다면 (사실은 먹어도 상관 없지만) 차라리 새신자를 위해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또다른 진짜 사도 바울의 편지 로마서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 가르침은 로마신자들에게 쓴 편지라는 편지 이름대로 로마의 술 문화처럼 취하지 말라는 말이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하루에 최소 0.5L 씩 포도주를 마셨고 종교행사에서는 필름이 끊길정도로 폭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이 문자그대로 몇잔 마셨을때 취기가 올라오는 것을 금하라는 것이 아니고 폭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


-> 사도 바울도 음식과 신은 상관이 없다고 느꼈고, 로마의 폭음문화를 경고했지 마시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결국 야훼(여호와),예수,바울의 의견을 살펴볼때 그리스도교에서는 술을 마셔도 되며, 그것은 전혀 죄가 아니다.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중에서 술을 금지하는 것은 이슬람교뿐이다.



-사도 바울 위서


*사도 바울 위서(에베소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후서, 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 디도서, 히브리서(전승))


디모데전서에는 술을 마시라와, 마시지 마라가 모순되게 등장한다. 어떤 해석을 덧붙이던간에 그것은 사도 바울 위작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사도의 권한조차 느껴서는 안되는 책이다. 더구나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감독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이지,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다. 편지의 목적부터 잊은 채 헛주장을 해서는 안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 5:18)라는 구절을 대어 반박할지 모르지만, 위작 중 골로새서 2:16은 먹거나 마시는 것으로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되어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그림자이고, 실체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인다.


위작에는 모순된 말들이 많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다 다른 사람들이 위작을 썼기 때문이다. 결국 진짜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


<담배>


담배는 성경이 쓰일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1500년대에나 조금 전해지고 1800년대 후반쯤에 와서야 활성화 되었다고 할까.


담배는 오로지 추측으로만 알 수 있다.


일단 예수의 구원이 고작 술 마시고 담배 피는거 여부로 결정된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자신들의 신인 예수를 쫌팽이로 만들고 있다.


술과 담배 금지는 영국 청교도 때문이다. 청교도가 영국에서 핍박받으니 미국으로 건너와서 미국을 세웠고, 그 청교도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생활을 했던 미국 개신교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대한민국에 들어와 자신들의 가르침을 똑같이 한국 사람한테 적용하려고 했으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정작 미국에서는 망했는데 한국에서는 흥했다.


한국 개신교는 술,담배 금지를 거의 11,12 계명으로 만들어 시키고 있으며 그것은 예수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말하는 바이다.


천주교는 술,담배를 금하지 않으며, 개신교를 만든 루터와 칼뱅 역시 술을 즐겼다.


아울러 개신교가 최고 지성으로 떠 받드는 근현대 인물들은 대부분 술과 담배를 즐겼다.


*찰스 스펄전 목사 - 설교의 황태자. 그의 설교는 지금까지도 설교학의 중심이다. 목사들의 설교 중에 스펄전의 설교를 베낀게 아주 많다. 어찌나 애연가 였던지 학생들과의 담배 농담도 많고, 심지어 당시에 스펄전의 유명세를 이용한 담배 광고 제목이 '스펄전의 담배' 였다.


*칼 바르트 - 개혁교회(장로회) 신정통주의 조직신학자. 한국에도 '바르트학회' 가 있을 정도. 지금 장로회에선 그의 로마서 주석으로 로마서 공부를 한다. 파이프 담배 애연가.


*존 웨슬리, 찰스 웨슬리 - 감리교 설립자. 술을 즐겼다.


*C.S.루이스 - 나니아 연대기, 순전한 기독교의 저자. 기독교 변증가. 반지의 제왕을 지은 J.R.R.톨킨의 친구. 톨킨이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를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데리고 왔다. 담배와 술은 10대때 부터 시작해 죽을 때 까지 했다.


*디트리히 본 회퍼 - 루터회 목사. 예언자적 행동으로 반나치운동을 하다 나치에 의해 사형. 담배를 즐겼음.


또 그리스도교인이 술을 마시면 절대 안된다고 주장하려면, 그리스도교 국가들을 봐야하는데, 독일의 맥주, 프랑스의 와인, 러시아의 보드카, 영국의 위스키 등 오히려 자신들이 술 만드는데에 앞장 서고 있다.


예수는 아마 담배를 피우며 제자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다음 설교장소는 어디로 할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3. 31. 04:24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일부러 하나님이라 적었다. 왜냐하면 천주교에서 "성경은 모든 구절의 일점일획이 다 하느님의 말씀이에요" 라는 멍청한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 누구가, 예언자 누구가, 예수님이, 주님이 등으로 누가 말하는지를 분명히 하며 말하기 때문이며 그 목적을 안다. 반면에 개신교는 사도의 말이건, 예수의 말이건, 예언자의 말이건, 심지어는 악인의 말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라 목회자부터가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 그에 교육받은 신자들 조차도 해당 성경의 작성목적은 잊은채 모든 구절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무신론/불가지론 등의 입장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일단 신이 없으므로 성경 전체는 모두 고대 사람들이 작성한 문서들을 집대성한 것일 뿐이며, 일부는 역사적 사실이거나 또 일부는 역사적으로 존재한 사람의 말을 적었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저자의 상상일 뿐이다. 꼭 어느 집단의 입장을 붙이지 않더라도 이는 사실이다. 허나 이 주장은 근본주의 개신교의 잘못된 통념을 바로 잡지는 못한다.

'성경은 근본주의 개신교가 생각하는 대로 일점 일획도 전부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다시 되짚어 보게 된 이유는 어느 음식점에서 본 것 때문이다. 그것은 맨 마지막에 다루겠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근거를 되짚어 본다.

1)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감동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등장하는 단골 구절이 있다.

디모데후서 3:16(새번역)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성경'은 '구약' 이지 '신약'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착각하는 것이 있다. 성경하니까 아주 당연스럽게 신구약성경을 이야기하는 줄 알지만,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다. 신약성경 목록은 4세기까지 박터지게 싸우다가 성립되었으므로 절대 신약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령 신약을 의미했다 치더라도 -백번양보해도 절대 그럴일은 없지만- 그 목록도 없고 신약이 완성되지도 않았을 시절이다.

더구나 여기서 말하는 성경, 즉 구약도 이 차명편지가 쓰여질 1세기 말 당시에 뭐가 정경인지 목록을 제정하던 때였다. 한편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죽기 얼마전에 쓴 것이므로 60년대 중반인데, 구약목록이 정립된 것은 AD 90년 얌니아 회의이다. 따라서 그들에 의하면 여기서 성경은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르는 단어인데다, 심지어 자신들이 보는 구약도 여기서 말하는 성경이 아니다.


2)하나님의 말씀에는 일점일획도 틀린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신의 말에 오류가 있고 모순이 있고, 앞뒤 말이 다르면 그게 신인가? 당연히 신이라면 일점일획의 오류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 말에는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신의 말이 '원본'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원본'은 히브리어이며 히브리어 '원본' 성경이 아니면 일점일획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원본'은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베끼는 와중에 글자 하나라도 잘못 표기 했다면 이미 오류가 생긴 것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신은 히브리어로만 말을 했을 것이며(그게 기록 언어니까), 그리스어로는 말한적이 없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신)이라 말한 적이 없으며, 신이라 하더라도 그는 아람어를 사용했지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일점일획설을 들고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영어권에서는 KJV를, 한국어권에서는 개역한글판이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고 믿는다.

심지어 신약의 언어인 그리스어 조차도 신의 말씀이 아니므로 부정해야될 판에, 번역본이 오류가 없다는 소리는 그냥 헛소리다.


더구나, 모든 말이 하나님의 말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달리 하나님(신)의 말은 다 표기가 되어있다.
"나 주의 말이다" (새번역)
"야훼가 말한다"  (공동번역)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개역개정)

따라서 이 말만이 신의 말이다. 신이 말할때는 해당 구절로 운을 떼고, 말이 끝나면 닫는다.


흔히 사용하는 잘못된 예시)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어느 음식점에 걸어둔 성경구절이다. 우리가 앞서 말한바 대로 이것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욥기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누가 들어도 듣기 좋은 말이다. 그래서 아마도 달아놓았을 것이다. 개신교인들은 마치 이 구절을 "지금 사업장은 작지만 나중엔 커질 것이다"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선 욥기 전체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욥은 의로운 사람이나 하나님과 사탄이 얼마나 의인인지 시험삼아 보고 있는 대상으로,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잃어버리게 만든 후 세 친구(엘리바스,빌닷,소발)와의 대화형식으로 되어있다. 그 후 또 다른 사람(엘리후)의 말이 있고 결국 하나님은 욥을 의인으로 여기고 복을 준다는 내용이다.

이 구절은
첫째, 이 말은 하나님의 말이 아니라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하고 있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이면 써먹어도 괜찮겠지만, 사람의 말이다.

둘째, 욥기의 주제는 하나님은 욥이 진정한 의인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며 세 친구는 아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의인도 아닌 사람의 말을 갖다 쓰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마치, "그러므로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누가복음4:7) 라는 구절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면 모든걸 준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사실 이 구절은 사탄이 예수에게 한 말이다. 의인이 아닌 사람 또는 악인의 말을 갖다가 쓰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사탄의 말은 갖다 쓰지 못하면서, 의롭지 못한 사람의 말은 갖다 써도 괜찮은가?

셋째, 앞뒤 문맥과 수아 사람 빌닷의 특성상 아무데나 갖다 박을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 욥이 고난을 받자, 빌닷은 "이게 다 너의 죄 탓이며, 벌은 악인만 받는 것" 이라며 "지금이라도 회개하여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복 주실테니까, 아무 것도 없는 지금은 미약하지만(보잘것 없지만) 나중에는 창대해질거야(크게 될 거야)" 라고 말하는 구절이다. 사업장 번창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시를 하나 살펴보며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인용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따라서 개신교인들은 앞뒤 문맥,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한 말인지도 모른채 다 갖다 쓰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부터 바꾸어야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성경은 구절과 단어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국 개신교에서 사이비가 정말 많이 나왔다. 한 구절, 단어 떼어서 생각하는 것으로는 단연 최고이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이런 방식으로 6.25 전쟁 이후만 쳐도 수십명의 사이비교주들이 등장했다. 정통이라 주장하는 자들이 매번 이단판정 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잘못된 태도 탓에 벌어진 일이므로 그들은 할 말이 없다. 결국 개신교계 사이비종교는 현재 개신교의 각성으로 해치워야할 사회악이지, 일방적으로 이단 판정하면서 "저기 교회 가지마세요" 주장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개신교 성경의 역사 - 개역 이야기

종교경전/번역성경 2013. 3. 27. 23:33

대한민국의 천주교와 개신교는 중국에서 건너왔습니다. 이 글에선 개신교만 다룹니다. 보통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선교국에 들어와서 선교하면서 성경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좀 특이한 면을 보이는데, 선교사보다 성경이(복음서이긴 하지만) 더 먼저 들어왔습니다. 개신교 성경은 중국에 선교온 영국 선교사와 몇몇 조선인들에 의해 중국어 성경에서 일부 번역해서 들어왔고, 조선에 선교온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왔으므로 선교하면서 조선인들의 도움을 받아 영어 성경에서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이 개신교 성경의 시작입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의 인명이나 지명이 중국에서 가지고 온 것을 읽거나, 영어에서 읽긴 하지만 영어를 못하던 사람들이 듣고 한문 음역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중국사람들이 듣고 한문으로 적은 것이 기리사독(줄여서 기독)인데, 그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 처럼 말이지요.


마태,마가,누가,요한 같은 단어는 복음서였으니 중국어에서 가져온 것이고, 신약 서신서는 당연히 나중에 번역될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선교사들이 했는데, 바울을 예로 들면 바울은 영어로는 폴(Paul)인데, 선교사들이 pa 바 / ul 울 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문제점은 무엇이냐면, 선교사들은 한글을 제대로 몰랐고 조선인들은 영어를 제대로 몰랐다는 것입니다. 언어에 대한 이해도 없이 급하니까 얼른 번역해서 내놓은 조잡한 성경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신약(그중에서도 복음서)이 중요하니 신약이 먼저 나오고 구약이 나중에 나와서 「성경」의 꼴을 갖춥니다.「1911년 성경(흔히 구역이라 부름. 1938개역과 구분짓기위해)」이라 합시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겪고 시간이 흐르면서 맞춤법이 변화한 것과 몇가지 오류를 찾으니, 그에 맞추어 다시 출판한 것이「1938년 성경(흔히 개역)」입니다. 그나마도 한글을 보존하고 퍼뜨리신 주시경 선생이 맞춤법과 국문법을 제정해 둔 것을 후에 조선어학회가 맞춤법을 공표하였는데(1933), 그것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름과 지명은 바꿀 용기가 안나니 변화없이 그냥 갔습니다. 한마디로 자신들 맘대로 한거죠.


결국 주시경 선생이 주도했었던 한글 맞춤법과 국문법을 정부에서 인정하게 됩니다(1948). 그러다보니 당연히 맞춤법을 다시 개정해야하는 상황이 오게 되었습니다.


전쟁 후에 그나마 안정화가 되자, 맞춤법도 국가에서 인정한 것으로 해야지, 시간이 흘렀으니 다시 고쳐야지 하는 여러 이유 탓에 「1961년 성경(흔히 개역한글)」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세로쓰기에 옆에는 빨간 성경인데 보신적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나중에는 가로쓰기에 은,금색 칠해서 팔았지만요. 1911->1938->1961 을 고스란히 이어오는 성경이죠. 개역한글판이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보수적인 사람들에 의해 읽혀지고, 교회에서 사용되면서 아직까지 죽지 않았죠. 


사람들이 경제발전하고 개신교 인구가 늘면서 성경 구입이 늘어나고, 또 많이 읽다보니 번역 오류가 발견된 구절들이 쏟아져 나왔고, 쓰이지 않는 고어(가라사대, 풀무불 등), 지나친 한문사용, 국가에서 맞춤법을 개정한 이유로(1988), 그것에 맞추어 맞춤법 개정 10년후 또 「1998 성경(흔히 개역개정)」이 나왔습니다. 1998년에 나오긴 했지만 실질적인 출판은 조금 후에 이루어졌는데 이유는 다른 번역판을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번역판(표준새번역 개정판)이 출시되자 기존 교단들이 반발하면서 싸움을 하게되었습니다. 2004년 쯤 부터 많은 교단들이 이 성경을 쓰고 (새번역을 시장에서 누르도록) 성도들에게 구매하도록 하여 시장주도권을 개역개정에 주면서 2007~2008년 쯤 부터는 주도권도 확보하고 보급이 잘 되자 지금의 개신교회 상당수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 개신교 성경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채택하고 몇 년이 흘러「1998 성경(흔히 개역개정)」을 못마땅해 하면서 「1961년 성경(흔히 개역한글)」로 다시 돌아가기로 예장합동이 결의하면서 개신교 성경은 주도권 싸움만 하는게 실정입니다. 결국은 개역한글이든 개역개정이든 쓰레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정리하자면 「1911 성경(흔히 구역)」-> 「1938 성경(흔히 개역)」-> 「1961 성경(흔히 개역한글)」-> 「1998 성경(흔히 개역개정)」 으로 흘러온거고, 시대가 흐르면서 맞춤법과 오역이 일어난 구절을 조금 손질했을 뿐,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영문성경, 중국어성경을 번역한 것에 진짜 오류 몇개와 대부분의 맞춤법이 제정 될 때마다 고친채 100년 넘게 쓰고 있는 성경입니다. 전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쓰레기 성경이라고.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라고."


그런데 아직까지 개역한글판은 죽지 않았습니다. 한심한 개신교인들이 끝까지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죠. 신의 말씀을 본다는 건지 오역한 사람의 말씀을 본다는 건지.


중국어 성경과 영어 성경의 번역본으로 번역 원전도 훌륭하지 않았고, 번역한 사람들 자체도 훌륭하지 않았으며, 내용이해도 어렵게 써두고, 오역 투성이에, 의미없는 번역 투성이,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만들어내 번역하고, 문장부호도 없으며, 번역에 통일성도 없는 등 문제점만 가득한 성경입니다.

KJV(제임스 왕 흠정역 성경)의 역사와 의의와 문제점

종교경전/번역성경 2013. 3. 27. 23:19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역사

제임스 1세 왕은 스코틀랜드에서 원래 왕(제임스 6세)이었는데 기존 영국 연방 왕가의 대가 끊기자 영국 연방의 왕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았다. 그의 어머니는 영국 연방 여왕에서 폐위되었고, 자신이 왕이던 스코틀랜드의 스코틀랜드 장로회와는 원수지간에 가까웠으며, 죽은 여왕과 외사촌이긴 했으나 왕조가 바뀌어 버렸고, 유아 시절부터 왕이 된 그에게 대한 불만족스러움과,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폄하, 영국 성공회와 마찰, 의회와의 수 많은 마찰 등으로 말이 많았다. 


영국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각각 군주가 있었다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는 합쳐져 왕이 있었고 잉글랜드&아일랜드 왕과 스코틀랜드 왕이 있었다가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아일랜드 왕을 이어받게 되면서 잉글랜드&아일랜드&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1세 부터 3군데 왕을 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그에게는 정치적 목적으로 왕권강화의 필요성이 있었던데다, 영국 내부적으로 교회 자체가 분열되어 있어서 골머리를 앓았다. 종교개혁의 산물로 영국 성공회와 장로회(청교도)로 갈라져 싸움질이나 하고 있었고 국가를 하나로 모으는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임스 1세보다 약 100년 전의 영국 왕 헨리 8세는 혼인무효와 관련해 영국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교황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빼앗았으나 처음엔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던 것과는 별 상관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빼앗았다. 결국 얼마 못가 다시 로마 가톨릭 교회로 회귀 했다가, 제임스 1세의 전임 왕 엘리자베스 1세 때에야 비로소 다시 회귀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종교 개혁적 손질을 하여 영국 성공회 라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그걸 바라본 청교도들(스코틀랜드 장로회)은 로마 가톨릭의 냄새가 짙은 불완전한 종교 개혁이 무슨 종교 개혁이냐고 반발하면서 새롭게 다시 개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에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종교 일치와 성경 일치이다. 여담이지만 종교 일치를 위해 청교도들을 성공회로 이동시키려고 강압적으로 정치를 했고 그 결과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도망가 미국을 세운 것이다. (그들의 후배?(후손?)들이 결국 조선으로 선교하러 들어와 무혈입성하고 일제와 미국과 독재에 빌붙으며 성장한 대한민국 장로회가 되었고 그들이 우리나라를 주름잡은 것이다). 더구나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신정설)을 주장하여 엄청난 왕권을 꿈꿨다. 제임스 1세가 당시 시대에 앞장서 주장했고 성경과 종교일치도 결국은 자신이 절대왕권을 가지고자 한 것이다. 후에 진정한 왕권신수설을 이룬 사람은 태양왕 루이 14세이다.


어쨌든 성경의 번역을 둘이 함께 하면 둘 사이의 앙금도 해소될 겸, 분열이 아닌 통일을 할 수 있고, 왕권강화에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당시 성공회의 주교의 성경(Bishop's Bible)과 장로회(청교도)의 제네바 성경(Geneva Bible)과 틴데일 성경을 개정한 대성경(The Great Bible)이 경쟁하고 있었고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싸움의 대부분은 주교의 성경과 제네바 성경의 싸움이었다. 청교도의 제네바 성경은 책의 1/4은 주석이요 3/4는 본문으로 본문 한줄 읽고 난외 주석을 읽어야 하여 본문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들어 특히 제임스 1세가 싫어했다. 그래서 왕이 직접 명령하여 모든 교회에서 읽을 수 있고 난외주가 거의 없는 성경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KJV를 만드는데 7년 걸렸고 출판했다. 영국이 강대국이 되고 영어가 거의 공용어가 되면서 KJV은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400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살아남았다.



-의의

왕의 명령으로, 47명의 학자가 모여 만들었으며, 장로회와 성공회의 화합을 도모한 점, 짧고 굵게 리듬감을 주어 번역하여 읽을 때 힘이 난다는 점, 긴 역사를 거쳐 살아남은 점, 단일 역본으로 엄청나게 팔린 점 등이 거론된다.


또 KJV는 영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KJV 이후의 영문학을 공부하는데 KJV를 빼면 남는게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현재에도 영어권 국가의 회화나 글에서 어디에 빗대거나 표현을 할때에 툭 하면 KJV의 표현이 등장한다.



-문제점

구약은 그리스어 70인역이나 라틴어 불가타를 번역했고(히브리어 마소라도 참고는 했으나 우선적인 수용은 아니었다), 신약은 TR(수용본문)과 라틴어 불가타, 구약 외경(가톨릭 표현으론 제2경전)은 대체로 바티칸 사본을 참조한 그리스어 성경과 일부 라틴어 불가타를 사용했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설명한 대본을 사용하긴 했는데 대체로 KJV를 만드는 번역원칙에는 영어 성경(그중에도 주교의 성경)이 우선이었다. 더구나 문제는 기존 영어성경(구체적으로 제네바 성경)을 그대로 베끼기 까지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번역이 완벽하다면 베꼈다 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으나 그 부분이 상당하다. 웃긴 것은 성공회 번역자들이 장로회 성경을 그대로 베낀 것에 있겠지만 말이다.


더구나 KJV은 성경의 원문이 아닌 교리를 담은 성경이다. KJV을 달달 읽고 외우면 교리를 한번만 들어도 아 그렇구나 하게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킹 제임스 성경이 나오기 전의 교리들(물론 그것이 나름 정통교리이긴 하다)로 원문을 변형시켜서 갖다가 박은 것이다.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신학적 입장으로 바라보면 별로 좋지 않다. 역사와 의의와 문제점을 다 제쳐두고라도, 누가 되었든 간에 전체적 내용파악 하는데는 KJV이든 아니든 전혀 문제가 없다. 일반인에겐 이런 논쟁은 별로 중요치 않고, 신학논쟁에서만 의의를 얻는다. 한 단어까지 일일이 따져드는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엔 좋은 성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7년에 걸쳐 만들었으나 실질적으로 집필한 기간은 반도 안된다. 앞의 반은 개인연구하는데 시간을 들이고, 뒤에 일부는 얼른 써내기 바빴고, 교정작업을 하도록 보낸 후 몇 개월 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왜냐면 급했으니까. 왕권 강화 하려고 몇 십년을 기다리다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시 학자들의 언어적 이해도가 현대 학자들의 언어적 이해도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것은 웃기다. 지금은 컴퓨터로 단어 치면 의미와 예문까지 언어학적으로 분석한 것 까지 나오지만, 그 시절은 연구도 부족했으며 단어 하나의 의미 찾는데도 한참 걸리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KJV의 그리스어 신약 대본은 TR(수용본문)이었다. 이 당시에는 인쇄술로 찍어낸 최신이자 최초의 그리스어 성경이었지만 지금 TR은 엄청난 공격을 당했고 권위는 무너졌다. TR이 무너지면서 KJV 역시 같이 신학에선 권위가 무너져 버린 성경이 된 것이다.

바울과 사울의 이름 논쟁과 그에 의한 사건 해설

종교경전/신약성경 2013. 3. 27. 22:10

흔히 그리스도교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특히 개신교)


"1)예수 믿는 사람들(=나자렛 이단)을 박해하던 사울이 부활한 예수를 다마스쿠스(다메섹)에서 만나면서

2)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3)사울(큰 자)에서 바울(작은 자)로 개명하고 

4)예수를 전하다가 순교했다"


이 이야기는 나는 무식하다고 광고하는 이야기다. 목사가 가르쳐줬든 어쨌든.


일단 사울/바울은 Saul/Paul을 「1911년 성경」에서 선교사들이 사도행전을 번역하면서 영어이름 Sa/ul 사울, Pa/ul 바울 이라고 음역하면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부터가 잘못되었다. 


사울은 원래 히브리어로 샤울, 바울은 원래 그리스어로 파울로스다.

그래서 역사에서 나자렛 예수 전하던 바울을 나타내려면, '타르수스(Tar 다 /sus 소)의 파울로스' 이다.


하도 사람들이 바울/바울로/바오로/바우로 등으로 음역해 놓다 보니 우리나라만 뒤죽박죽이다. 영어만 보더라도 Paul 하나 밖에 없는데 말이다.


1)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파울로스 친서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있지 않다. 더러 그리스도교인들은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엄연히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 봐야한다. 파울로스 스스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린도전서 9:1)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했단 말입니까? 라는 언급 뿐이다. 어디에서 봤는지 정말 눈이 멀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러나 저러나 파울로스는 실존 예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다만 파울로스는 예수를 직접 보고 가르침을 얻진 못했지만 초기 추종자 중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2)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하는데, 파울로스의 다마스쿠스의 회심 사건은 그리스도교 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신약이 한줄도 안 쓰였다. 예수가 죽은지 얼마 안된 상태에서 예수가 메시아 라며 '나자렛 이단'이 갑자기 출몰하자 바리새인이자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던 샤울은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를 봐서 회심했으므로, 개종이 아니다. 스스로가 나자렛 이단세력에 끼어서 약 20년 후 자신에 의해 제일 처음 신약이 쓰여지고 AD 90년에 얌니아 회의를 통해 메시아 출현은 거짓이며 유대교가 맞다고 확정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갈라진 것이다.


더구나 그리스도교는 파울로스가 예수를 교조로 창시했다(본인이 원했든,원하지 않았든). 교리의 상당수는 자신이 세운 예수교회에 '이게 교리다' 라며 보낸 파울로스 편지에서 나오고 있으며 신약의 절반은 파울로스 편지라고 일컬어 진다. 자신이 창시한 종교에 웬 개종?


3) 사울/바울 이라고 적어두니까 왠지 한글자 차이에 우리나라 말로 보니 돌림자처럼 생겨서 개명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샤울(히브리어)/파울로스(그리스어)로 이름이 원래 두개이다. 왜냐하면 파울로스는 타르수스 라는 로마지역의 해외파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이 있다. 그리고 파울로스는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편지를 작성했으며, 편지 첫머리에 파울로스가(샤울이 아니고) 보낸다고 적고 있고, 당시에 그리스어는 공용어였다. 그래서 예수의 죄패에도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로 쓰였다.


파울로스는 '작은자' 라는 뜻이 있지만. 샤울은 동사 '요청하다(기도하다,간구하다)'에서 파생되어 '신께 요청한'의 뜻이다. 따라서 큰자에서 작은자로 개명했다는 이야기는 그냥 헛소리가 된다.


완벽히 똑같은 사례를 현실에서 찾아서 설명해주자면 골프선수 미셸 위(영어)/위성미(한국어) 가 있겠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갖는 문화(=여기서는 한국)의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 시민권이 있는 나라의 언어로 된 이름(=여기서는 미국)이 있는 것이다. 고로 개명이 아니고 당연히 두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격투기 선수 추성훈이 있겠다. 아키야마 요시히로와 추성훈은 둘 다 가지고 있는 이름이지, 개명이 아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근거로 봐도 예루살렘(이스라엘지역)에서의 활동(사도행전 ~12장)은 히브리 이름인 샤울이라고 적고 있고, 안티오키아(로마지역)에서의 활동(사도행전 13장~)부터는 전부 로마지역에서의 이야기 이므로 파울로스라고 적고 있다.


4) 외경과 전승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베드로의 역십자가형과 마찬가지로 파울로스는 참수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어떤 방법으로든 죽기는 죽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 안 나온다고 영생했을리는 없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