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의 복음서(마태복음) 28장 16~20절 후대 창작인가?

종교경전/신약성경 2014. 2. 18. 04:46

마태오의 복음서(마태복음) 28장 16~20절 후대 창작인가?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이 구절에 대한 주석과 설교들은 대부분이 예수는 부활하여 종말의 때까지 항상 함께 하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결국 ‘선교 열심히 합시다’ 로 귀결된다.


본문(공동번역)


-1부

16 열한 제자는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갈릴래아에 있는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거기에서 예수를 뵙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8ㄱ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부

18ㄴ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ㄱ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19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ㄱ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20ㄴ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1부

일단 16,17,18ㄱ 은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가필이다.


<16절>마태오는 사도 중에 한명인데 자신을 거기에 집어넣지 않고 3인칭 보도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의심하는 사람들’에 속했을 리는 더더욱 없다.


<17절> ‘절하였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원형 ‘προσκυνέω(프로스퀴네오)’는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15회, 마르코의 복음서 저자가 2회, 루가의 복음서(+사도행전) 저자가 7회, 요한의 복음서 저자가 7회 사용하는 단어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애용하는 단어이다. 엎드려 절한 상황도 가필했다.


<18절ㄱ>더군다나 '가까이 오셔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합성어 ‘προσέρχομαι(프로스에르코마이)’는 신약성경에서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57회, 나머지가 37회 사용하는 단어로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즐겨 쓰는 단어이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καὶ προσελθὼν ὁ Ἰησοῦς + αὐτῶν, αὐτοῖς)’는 마태오의 복음서 17장 7절에서 변모 사건에도 있는데, 이는 마르코 복음서에서 베낀 것이고, 루가의 복음서 저자도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베꼈다.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는 변모 사건을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베끼면서 17장 7절(예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일어나라." 하고 말씀하셨다.) 를 가필했다. 즉,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문체다.


-2부

18ㄴ~20 은 마태오의 복음서가 만들어진 시리아 교회 공동체의 전승 및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가필이다.


<18절ㄴ> 세 개의 절에 세 개의 ‘모든’ 이 등장한다. ‘모든’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19절ㄱ> 선교의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에서 모든 사람으로 진화하였다. 이는 예수의 행적, 삶,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는 15장에 나오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 대하여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베끼면서 24절(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를 가필했다. 이것을 가필한 이유는 초대교회가 이스라엘에게 메시아인 예수를 믿게 하는 것에 대하여 한계가 왔기 때문에, 선교의 대상을 이방인으로 눈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예수의 삶이 이스라엘에게만 이루어져 이방인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차마 그 이야기를 창작해 내진 못하고, 이방여자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에 가필하고 맨 마지막 부활이야기에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라는 것으로 창작 및 가필하여 정당화 하는 것이다.


<19절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는 신약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온다. 루가 공동체 및 초대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줬고, 파울로스도 마찬가지다. 초대교회 문서 디다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되어있으며 ‘주님의 기도’ 또한 마태오의 복음서에서 그대로 베껴왔다. 뿐만 아니라 기타 다른 부분들 까지도 베껴온 것이 명백하다. 이 문서는 시리아 교회에서 있던 것이므로, 이 문서보다 살짝 앞선 연대의 마태오의 복음서는 분명 시리아 교회에서 제작된 것이다. 이는 원형인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로 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시리아 교회 공동체의 창작이자 전승이다.


<20절ㄱ> <19절ㄱ>에 이어진다. 가르침은 산상설교를 필두로 하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20절ㄴ> ‘너희와 함께 있겠다(ἐγὼ μεθ ὑμῶν εἰμι)’는 LXX 하까이서 1장 13절의 후반부 ‘ἐγώ εἰμι μεθ ὑμῶν’를 베낀 것이다.


따라서, 간단히 생각하자면 1부는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가필, 2부는 시리아 교회 공동체의 창작 및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가필이다.

요한의 묵시록(요한계시록 13장 18절, 짐승의 숫자)

종교경전/본문비평 2014. 1. 25. 13:27

요한의 묵시록(요한계시록 13장 18절, 짐승의 숫자)


(1)666

666은 많은 그리스어 사본에 ἑξακόσιοι(헥사코시오이,600) ἑξήκοντα(헥시콘타,60) ἕξ(헥스,6)라 쓰여있고, 줄여서 쓸 경우엔 χξς(600,60,6)이라 쓰고 상단에 줄을 긋습니다.


지지사본은 코덱스 시나이티쿠스(א), 코덱스 알렉산드리아누스(A), 소문자사본 2377과 다수 본문들(비잔틴본문들), P 1006 1841 1854 2053(추정)


χξς(600,60,6) 라고 줄여쓰고 줄을 위에 그은 사본들은 A P47 051 M 과 2세기 교부 이레네우스, 3세기 교부 히폴리투스 입니다.



(2)616

한편, 신약성서 사본학에서 우수한 대문자사본인 에프라임 재생사본(C)은 ἑξήκοντα(헥시콘타,60) 대신에 δεκα(데카,10)라고 되어있습니다. 


ἑξακόσιοι(헥사코시오이,600) δεκα(데카,10) ἕξ(헥스,6). 그리고 616이라 적힌 많은 사본들을 알고 있던 2세기 교부 이레니우스의 증언이 뒷받침 됩니다. 또 라틴 교부이자 요한의 묵시록을 해석한 타이코니우스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χῖς(600,10,6) 라고 줄여쓰고 줄을 위에 그은 사본은 파피루스 115입니다.



(3)665

또 한편, 11세기 소문자사본 2344는 ἕξ(헥스,6) 대신에 πεντε(판테,5)라고 되어있습니다. 

ἑξακόσιοι(헥사코시오이,600) ἑξήκοντα(헥시콘타,60) πεντε(판테,5)


두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데, 666이 네로황제 임은 알겠으나, 배우기 어려운 시대의 한계상 히브리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발음이 NRHN QSR가 아닐까 하고 게마트리아를 해보니, 665가 나오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또는 그 지역에서는 네로 황제를 NRHN QSR라고 칭했을 수도 있습니다. 두가지 모두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래 로마의 공용어는 2개(그리스어, 라틴어)이고, 2가지 방식으로 읽혔기 때문에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원본문 추정시 요한의 묵시록이 그리스어로 쓰였기 때문에 666이 원래 본문일 것으로 추정하나, 1세기 말에 쓰인 요한의 묵시록이 2세기 필사본과 번역본 부터 라틴어 지역에선 잘못 쓰였다며 616으로 고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נרהן קסר, נרו קסר, נרון קסר 의 차이이지요. 네로 카이사르와 네론 카이사르. 히브리어 '눈 nun(N)'이 있고 없고는 라틴어->히브리어 변환과, 그리스어->히브리어 변환에 'N' 이 1개 차이나기 때문에 'N'에 해당하는 '50'이 있고 없고에 따라 616에서 616+50=666 이 됩니다. 맨 마지막의 것은 네론(ㅎ발음을 넣어서) 카이사르라고 적은 것을 게마트리아 한 결과 665가 됩니다. 그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 로마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נרון קסר> NRWN QSR

200,60,100,50,6,200,50

합 666


<נרו קסר> NRW[N] QSR

200,60,100,[히브리어 Nun 생략-값 50],6,200,50

합 616


<נרהן קסר> NR(H)N QSR

200,60,100,50,(히브리어 Vau 대신 He-값 5),200,50

합 665



즉, 그리스어 사본의 숫자는 666,616,665 3가지나 됩니다. 더구나, 최소 2가지(666,616)를 만족시키는 것은 '네로 황제' 밖에 없거니와, 최대 3가지(666,616,665)를 만족시키는 것도 역시 '네로 황제' 뿐이므로 이외의 성서주석은 주석자의 권위를 막론하고 '쓰레기' 되겠습니다.




변종길 교수의 '성경 사본학의 현재와 미래'를 반박함

종교경전/본문비평 2014. 1. 21. 19:46

이 글은 '개혁신학과 교회 6(1996), pp.67-94.'에 실렸던 글이라며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예장고신, 국내3위 교파로 1위 교파인 예장합동과 합친 것과 다름없는 곳이다.) 신약학 변종길 교수가 자랑스레 올린 글이다.


변종길 교수는 

서울대학교(B.A.)

고려신학대학원(M.Div.)

화란 캄펜개혁교회신학대학원(Drs.)

화란 캄펜개혁교회신학대학원(Th.D.)


을 나왔다고 한다.

'->'와 '진한 글씨' '큰 글씨(10pt)'는 "전투적무신론"의 반론과 강조이다.

변 교수의 원문은 '작은 글씨(8pt)'로 되어있다.


※변 교수의 원 글과 나의 반론은 성서사본학(본문비평)의 지식이 없다면 읽고 이해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 점을 독자들은 감안하며 읽어야 한다.


성경 사본학의 현재와 미래 - 


사람들은 “학자”(學者)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한다. 여러 가지로 때묻고 혼탁한 세상에서 그래도 학자는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정직하게 진리를 가르쳐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비록 권세도 없고 부귀도 못 누리는 학자이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존경을 표하게 되고 그의 말은 비록 다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특별한 가치를 두고 경청하려고 애를 쓴다. 왜냐하면 학자는 그 신분상, 사회나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참된 진리를 말해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크게 실망하게 된다. 특히 우리가 믿고 신뢰했던 분들에게서 그 기대가 깨어질 때에 우리의 실망은 더욱 크게 된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 중에는 “신학자”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바로 이 신학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편견과 불공평이 있는가를 깨닫고 나면 그 실망은 참으로 클 것이며, 이 실망은 나아가서 분노로 바뀌게 될 것이다.


소위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이라 불리는 “사본학”(寫本學)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소위 “본문 비평”이라고 하는 것이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영미의 전통을 따라 “본문 비평”을 “하등 비평”(lower criticism)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은 보수주의 신학자나 자유주의 신학자나 똑같이 받아들이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학문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한국의 자유주의 진영의 신학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보수주의, 개혁주의 진영의 신학교에서도 현대 사본학자들의 이론을 아무런 비판이나 유보없이 그대로 가르쳐 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본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도대체 생각이라도 해보았던가? 또는 그런 것 외에 또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기라도 했던가? 그래서 “사본학”이라고 하면 으례히 메츠거(Bruce M. Metzger)의 책을 교과서로 삼고, 신약 원어 성경으로는 네슬레(Nestle) 판을 최고로 여기고 사용해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네슬레 26판을 가지고 있으면 마치 하나님의 말씀 원본을 소유한 양 좀 으시대던 것이 그 동안 우리 한국 신학계의 현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각성이 일어나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네슬레-알란트 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또는 현대 사본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듣지도 못한 상태로 지나고 있지만, 그래도 소수 일각에서 사본학의 현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막연하나마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그 중에는 너무 감정에 치우쳐 극단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올바른 사본학의 정립에 도리어 역작용을 불러일으키지 않나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대 사본학의 동향을 개괄적으로 훑어보면서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또한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기로 하겠다.


->개인적인 서론과 내용적인 서론. 본문비평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하는 바를 밝힌다.



I. 네슬레-알란트 판의 지배

현재 전 세계의 신약 원어 성경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네슬레-알란트(Nestle-Aland) 판”과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iceties) 판”이다. NA 판은 1979년에 26판이 나와서 범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다가 1993년에 이것을 다시 보완한 27판이 나왔다. 그리고 UBS 판은 1975년에 제 3판이 나와서 널리 사용되다가 1993년에 제 4판이 나오게 되었다. NA 판은 19세기말 이래로 전통이 있는 판이고, UBS 판은 성경 번역자들을 위하여 1966년에 처음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래서 UBS 판은 “각주”(apparatus) 안의 설명이 영어로 되어 있고 사본, 역본들의 기호가 이해하기 쉬운 장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NA 판은 기호가 많고 식별하기 어려우며 “각주” 안의 설명이 라틴어로 되어 있는 것 등,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이 두 판은 원리상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두 판의 편집진 5명이 똑같으며(NA 27판과 UBS 4판에서는 B. Aland, K. Aland, J. Karavidopoulos, C.M. Martini, B.M. Metzger), 또한 편집 원리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두 판은 각주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본문은 동일하다. 물론 이것은 그 이전 판에 이미 있었던 현상이다. 왜냐하면 UBS 3판의 수정판이 1983년에 나오면서 1979년에 나온 NA 26판을 따랐으며, UBS 4판과 NA 27판이 이 본문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문단 나눔과 구두점 정도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UBS 3/4판은 NA 26/27판과 같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NA 27판/UBS 4판은 크게 보아서 그 이전 판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현금의 NA 판이나 UBS 판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다섯 명의 현대 사본학자들인데, 이 중에서도 1994년에 작고한 쿠르트 알란트가 사실상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독일 뮌스터에 있는 「신약사본연구소」 소장을 오랫동안 맡아 오면서 네슬레 24판(1960) 이래 최근까지 희랍어 신약 편집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네슬레 26판은 사실상 알란트 판이라고 불릴 수 있으며, 그러한 경향은 27판에 와서 더욱 확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과거에 「공인 본문」(公認本文, Textus Receptus)이 누렸던 지위를 오늘날에는 알란트 판이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I. Karavidopoulos 요한네스 카라비도포울로스, 동방정교회의 테살로니키(*이른바 바울의 데살로니가 서신서가 이 도시의 가정교회에 보낸 것이다.)에 있는 대학의 교수로 NA-UBS 편집진이다. 이 사람은 시간전례(=성무일과, 성무일도)로 부터 본문비평을 하는 학자로 알란트 교수 부부나 메츠거 교수에 비해 학계 인지도가 훨씬 떨어진다. 변 교수는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위 내용 이외에는 거의 전무 하다시피 해, 이 사람을 무시한 채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다.



II. 「공인 본문」(TR)의 붕괴 과정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1516년에 에라스무스가 최초로 희랍어 신약 성경을 편집 출판한 이후로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가 새로운 신약 성경을 출판할 때까지 약 300여년 동안 구라파에서 사용된 원어 성경은 네슬레-알란트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소위 “공인 본문”(TR)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300여년간 구라파 교회가 사용한 것이며, 또한 독일의 “루터역”(1522), 영국의 “흠정역”(King James Version), 그리고 화란의 “국역”(Staten-vertaling, 1630년대) 등 수많은 번역 성경의 모체가 되었다.


->'구라파' '화란' 등의 단어를 쓰면서 뭔가 있어보이는 척 하지만, 1996년에 한국인 독자가 EuropeNetherlands를 읽을 줄 모를까봐 중국에서나 쓸법한 용어들을 쓰고 있다. 독일을 '독국'이라 하지 않음은 아마 몰라서가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공인 본문」(TR)이 붕괴하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그 당시 교회가 사용하고 있던 성경에 대한 집요한 도전이 계속되어 왔었다. 물론 그 중에는 순수한 학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도 있지만 수백 년간에 걸쳐 진행된 그 과정과 결과를 돌이켜 때, 때로는 소위 학문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해 봉사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17세기 후반에 살았던 존 밀(John Mill, 1645-1707)은 TR과 다른 3만여 개의 “상이독본”(相異讀本, variant reading)들을 모았으며, 이에 충격받은 벵겔(J.A. Bengel, 1687-1752)은 평생 동안 사본 연구에 몰두하였다. 물론 그는 경건한 학자로서 좋은 주석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본 연구의 주요 원리 몇 가지는 그 후의 학자들에게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곧 “본문의 증거력은 사본의 숫자를 셀 것이 아니라 그 비중을 달아보아야 한다”는 것과 “필사자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원리에 의해 사본을 “그룹”(계통)으로 나누게 되었으며, 두번째 원리에 의해 사본상 어떤 구절에 쉬운 독본과 어려운 독본이 있을 때에 그 중에서 어려운 독본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 두 원리는 그 후로 사본학계에서 마치 지극히 당연한 “공리”(公理)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연시되는 이 원리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벵겔. 이 학자로 인해 본문비평의 발전이 시작된다. 그 원칙의 기본 틀은 지금까지도 사용된다. 아마 변 교수는 본문비평이 '성서'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나보다. 모든 고대의 작품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본문비평이 적용된다.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면 문학 본문비평(그 안에 성서가 있다) 전체를 공격해야 할 터인데 아마 변 교수 개인의 지식으로는 모자라는 것은 당연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학파'가 몰두해도 먼지만한 흠집도 못낼 것이다.



그 후에 그리스바하(J.J. Griesbach, 1745-1812)는 사본들을 다음과 같이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곧, “알렉산드리안 그룹”과 “웨스턴 그룹”과 “비잔틴 그룹”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의 본문 선택 원리를 살펴보면 그의 사본학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이것을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생각하는데, 첫째로 “짧은 것이 더 어렵고 불확실하고 애매하고 이상할 때에는 짧은 독본이 긴 독본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긴 독본이 불확실하고 거칠고 부연 설명하고 이상하고 역설적이고 불경건하게 들리고 오류적일 경우에는 긴 독본이 짧은 독본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를 잘 살펴보면 결국 하나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사본상 서로 다른 독본들이 있을 경우, 그 가운데서 어쨌든 “더 어렵고 애매하고 이상하고 심지어는 불경건하게 들리고 오류적인 것”을 원본으로 봐야 한다는 원리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리에 의해 편집된 신약 성경이 우리 앞에 놓여진다면 그것은 매우 어색하고 문장이 잘 안 통하는 본문이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다른 비평 학자인 라흐만(K. Lachmann, 1793-1851)은 1831년에 소문자 사본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지 몇 개의 초기 대문자 사본과 고대 라틴어 역본, 그리고 벌게이트와 교부들 인용을 사용하여 희랍어 신약 성경을 편집, 출판하였다. 물론 그의 목적은 4세기에 동방 교회에서 통용되던 사본을 재구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로써 대부분의 소문자 사본과 후기 대문자 사본들이 취하고 있는 본문 형태인 “비잔틴 본문”(Byzantine text)이 제외 당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티쉔도르프(L.F.C. von Tischendorf, 1815-1872), 트레겔레스(S.P. Tregelles, 1813-1875), 알포드(H. Alford, 1810-1871) 등의 노력이 있었으나, 현대 사본학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은 1881년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동료 교수인 웨스트코트(B.F. Westcott)와 홀트(F.J.A. Hort)가 두 권의 희랍어 신약 성경(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을 출판한 사건이었다. 표면상으로는 두 사람의 공동 작품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젊었을 때에 카톨릭의 예수회 회원으로 훈련받은 바 있는 홀트가 주로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희랍어 신약 성경의 제 2권은 「서론」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서론」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본 이론을 체계적으로 진술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여태까지의 TR의 기본이 되었던 비잔틴 사본들은 가치 없는 것으로 배격되고 새로운 사본들, 곧 바티칸 사본(B)과 시내산 사본(א)을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바티칸 사본을 주로 따랐는데, 웨스트코트-홀트의 성경은 몇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바티칸 사본을 수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웨스트코트-호르트(WH 라고 줄여 표현하는게 일반적이다)의 성서본문비평 이론 중 'א,B' 이른바 중립본문의 시작이다. 현대의 성서 본문비평에서는 이 표현을 쓰지도 않으며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새로운 신약 편집판에 대해 그 당시 교회로부터 거센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차 구라파에서 그 뿌리를 내려갔다. 에버하르트 네슬레(Eberhard Nestle)는 1898년에 독일의 “뷔르템베르크 성서공회”를 통해 간편한 희랍어 신약 성경을 출판했다. 이것은 새로운 사본 연구나 이론을 가지고 편집한 것이 아니라 이미 출판되어 있던 티쉔도르프(Tischendorf) 판과 웨스트코트-홀트(Westcott-Hort) 판과 웨이마우쓰(Weymouth) 판 가운데서 다수 독본을 취하는 방식을 따랐다. 이 중 웨이마우쓰 판은 제 3판부터 봐이스(Weiss)판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면 이 네슬레 판의 성격이 어떠했겠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티쉔도르프 판은 잘 알려진 대로 그가 시내산 수도원에서 발견한 “시내산 사본”(א)을 중심으로 편집된 것이다. 그래서 이 티쉔도르프 판은 “시내산 사본”을 지나치게 선호했다고 종종 비판받고 있다. 그리고 웨스트코트-홀트 판은 앞에서 말한 대로 “바티칸 사본”의 대변자이다. 또한 베른하르트 봐이스가 소위 주석적 근거에서 편집했다고 하는 봐이스 판도 결과적으로는 “바티칸 사본”에 근접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고 말았다. 그렇다면 네슬레 판이 어떠한 성격을 띠게 될지는 자명하다. 네슬레 판은 그 작업 원리상 애초부터 “바티칸 사본”을 주로 채택한 편집판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거기다가 “시내산 사본”이 약간씩 추가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그 후에도 계속되다가 제 17판부터 위 “다수 본문”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주로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전에는 참고할 수 없었던 파피루스 사본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 중심의 기조는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1960년의 제 24판부터는 독일 뮌스터의 “신약사본연구소”의 소장을 맡은 알란트가 책임을 맡아 편집하고 있는데, 그의 주도 아래 네슬레 판은 많은 자료가 보강되었다. 그러나 그 기본 원리에 있어서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래로 큰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알란트 판이 주로 채택하는 사본도 역시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 그리고 몇몇 “파피루스 사본들”이며, 수많은 소문자 사본들과 대문자 사본들, 그리고 렉시오나리아(lectionaria) 증거들이 무시 또는 경시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27판에 와서 더욱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곡이다. 여기서부터 헛소리가 시작된다. 그 지루한 사본학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진정한 문제점 주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현대 본문비평의 결정판 NA-UBS 는 알렉산드리아계 사본의 중립본문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더군다나 소문자 사본을 무시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성무일도(아마 렉시오나리아는 변 교수가 공부했던 네덜란드어 일 것이다. 영어 lectionary는 성무일도.)를 무시한 적도 없다. NA-UBS는 모든 사본, 교부인용, 시간전례(성서일과,성무일도),번역본의 이문을 적고 있다. 그야 말로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NA-UBS에 대해 비난(비판이 아님)만 할 줄 알았지, 읽을 줄을 모르던지, 아니면 책이 없어서 사용해본 적이 없던지 둘 중 하나다.




III.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의 문제점


그렇다면 TR을 붕괴시키고 현재의 NA 시대를 열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여전히 오늘날 사본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의 주요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이론을 크게 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그의 “계보론적 방법”(genealogical method)이다. 그는 벵겔(Bengel), 제믈러(Semler), 그리스바하(Griesbach) 등의 방법을 따라, 사본들의 수적 우세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사본들을 네 그룹으로 나누었다. 곧 “수리아 본문”(Syrian text), “서방 본문”(Western text), “알렉산드리아 본문”(Alexandrian text), 그리고 “중립 본문”(Neutral text)으로 나누었다.


->변 교수의 눈이 문제가 있는지, Syrian을 어떻게 ‘수리아’로 읽는지 의심스럽다. 그 잘난 네덜란드에서 공부한 사람의 언어 수준이 시리아를 수리아로 읽는다는 말인가? 물론 이는 개역성경에 시리아를 수리아로 잘못 적은 것을 습관처럼 사용하는 것일 것이다.



이 중에서 “서방 본문”과 “알렉산드리아 본문”은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에서 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웨스트코트-홀트가 주로 표적을 삼은 것은 “수리아 본문” 곧 “비잔틴 본문”이다. 이 본문에 속하는 것은 대다수의 소문자 사본들과 후기 대문자 사본들, 그리고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사본”(A) 등인데, 그들은 이것을 4세기의 편집자(들)이 편집한 본문으로 보았으며 매끈하고 쉽고 온전하게 만든 “혼합 본문”(mixed text)이라고 하였다. 이 본문의 특성은 “명료성”(lucidity)과 “온전성”(completeness)이며, 이렇게 수정, 편집된 본문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서 비잔틴 제국 안에 널리 펴졌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웨스트코트-홀트는 교회 안에 보존되어 온 거의 대부분의 사본들의 본문 형태를 4세기초의 어떤 편집자에 의해 수정, 편집된 결과로 돌려버림으로써 그 본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바, 4세기초에 안디옥의 “루키아누스”(Lucianus)가 비잔틴 본문을 편집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추측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검증되지 않은 “가설”(假說)에 근거한 이론을 가지고 수많은 사본들의 증거를 송두리째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비잔틴 본문,” 곧 대다수의 비잔틴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 형태를 가치가 적은 것으로 돌려버림으로써 그것을 기초로 하여 편집된 TR과 나아가서 그것을 모체로 하여 번역된 대부분의 성경들이 불신 받게 되었다.


->뭐가 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지 않는다는 건지 도저히 그 내용을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더구나 호르트 박사의 판단이 검증되지 않았다하여 비판한다 해도, 비잔틴 본문이 변형된 본문임은 변하지 않는다. 현대 사본학이 안티오키아의 루키아누스가 비잔틴 본문 편집의 시초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상당수 비잔틴 본문이 후기 형태일수록 변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우리 모두가 직접 보고 있지 않은가. 호르트 박사가 비잔틴 본문을 저평가한 이유가 겨우 ‘루키아누스’ 때문이라면 도대체 전세계 문학 본문비평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듣고 싶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바티칸 사본”(B)과 “시내산 사본”(א)을 후대의 부패와 혼합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그래서 원본에 가장 가까운 사본들로 보아 “중립 본문”이라고 불렀다. 이 “중립”이란 명칭 속에 그들이 이 두 사본을 얼마나 편애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강하게 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곧, 이 “중립 본문”이란 명칭이야말로 그들의 이론이 중립적이지 못함을 분명히 드러내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두 사본은 원본에서 멀지 않다고 보았으며, 이 중에서도 특히 “바티칸 사본”은 원본에서 바로 온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웨스트코트-홀트가 편집한 신약은 사실상 “바티칸 사본”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로써 1800여년 동안 교회에서 사용되어 오던 대다수 사본들의 증거는 무시되고 말았다.


->‘편애’ ‘편견’ ‘선입견’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중립본문이라 부르며 그것들을 고평가 한 것에 대해 변 교수는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와 코덱스 바티카누스 보다 오래되고, 보존 상태가 좋고, Vellum에 썼고, 필사자가 감정변화 없이 필사 한 것이 있는가? 변 교수의 억지를 들어보면 똑같은 말의 반복을 길게 적어놓은 것 뿐이라, 반박할 만한 내용조차 없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의 중립본문이라는 작업분류가 잘못되었다고 우기고 있는데, 문제는 지금은 그 분류를 쓰지 않으며, 변 교수의 지나친 걱정 및 억지주장과 달리 비잔틴 본문을 평가절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내용이라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러면 그들이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을 선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유로 그들은 이 두 사본을 그토록 칭찬하고 선호했을까?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소위 그들의 “내적 증거”(internal evidence) 이론이다. 사본들이 제공해 주는 객관적인 증거를 “외적 증거”(external evidence)라고 부르는데 반해, 본문 안에서 어떤 부분들의 “독본들”의 상호 비교에 의해 얻은 결론을 그들은 “내적 증거”라고 불렀다. 이 명칭에도 또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슨 객관적 “증거”가 아니라 사실은 사본학자들의 “주관적 판단” 또는 “개인적 확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을 객관적인 사본상의 증거인 “외적 증거”와 같은 차원에서 “내적 증거”라는 말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외적 증거”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면 그들의 “내적 증거”의 원리란 무엇인가? 이것을 여기서 지면을 통해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구절에서 사본상 서로 다른 두 독본이 나타난다고 하자. 한 독본은 매끄럽고 온전하며 뜻이 잘 통하는 것이고 다른 한 독본은 엉성하고 무언가 빠진 듯하며 뜻이 잘 안 통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럴 때 어느 독본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인데, 이 둘 중에서 뜻이 잘 통하지 않는 후자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웨스트코트-홀트의 “내적 증거”의 원리이다. 그 이유는 문장이 매끄럽고 온전하며 뜻이 잘 통하는 독본은 후대의 필사자들이 수정, 편집해서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소위 그들의 “동화”(同化, conflation) 이론이다. 즉, 필사자들은 원래의 거칠고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본문을 가능한 한 매끄럽고 온전하고 조화되도록 (곧 동화되도록) 수정해서 필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독본을 취하지 말고 거칠고 이상하고 어색한 독본을 취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어떻게 보면 매우 그럴 듯한 것처럼 보이며, 현대 사본학에 있어서 거의 모든 사람이 다 받아들이는 “기본 전제”처럼 되어 있다. 벵겔 이래로 거의 모든 사본학자들 의해 당연한 “공리”(公理)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소위 “어려운 독본”(lectio difficilior)이 쉬운 독본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며, 중대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위험한 이론이다. 왜냐하면 이 원칙은 소수의 필사자가 고의로 또는 실수로 잘못 필사했을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한 번 생각해 보자. 60명의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는 반에서 선생님이 어떤 문장을 불러 주고 학생들이 그것을 받아 적도록 했다고 하자. 그래서 선생님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불러 주었다고 하자. 58명의 학생은 정확하게 잘 받아 적었는데, 한 명은 띄어쓰기를 잘못해서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적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중간의 말을 듣지 못해 “아버지가 들어가신다”로 적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세 개의 “독본” 중에서 어느 것이 원본에 가깝다고 결론 내려야 할 것인가? 오늘날 현대 사본학의 이론을 따르자면 문장이 자연스럽고 잘 통하는 것은 후대의 필사자들이 수정, 편집했다고 보기 때문에 원본이 아니라고 판정하고, 문장의 흐름이 어색하고 뜻이 부자연스러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나 또는 뭔가 빼먹은 듯하고 이상한 “아버지가 들어가신다”를 원본으로 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대 사본학계의 진수를 잘 드러내 준다. 그래서 현대 사본학자들이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 곧 “내적 증거의 원리”에 의해 편집한 신약 성경은 자연히 문장의 흐름이 이상하며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하며 중간에 많이 빠진 듯한 모습을 취하게 된다.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가 편집한 신약 성경이 그러하며 오늘날의 NA 판과 UBS 판이 또한 그러하다.


->무식의 극치를 보여준다! 변 교수가 직접 예시를 만들어서 현대 본문비평이 마치 이런 것인 양 적었는데, 완전히 무식한 예시다. 이 이야기로 말미암아 변 교수가 사본학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변 교수를 비롯한 그리스도교인들이 신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신약성서를 1500년 간 필사하고 보존하는데에 든 예시는,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받아쓰기를 하는데 극소수의 어린 학생들이 띄어쓰기를 안했거나 단어를 못 적었다고 하여 읽기가 어려운 받아쓰기 본문이 나왔는데 이는 극소수의 학생이 문제였으며, 다수가 옳다는 것이다. 신의 말씀 필사를 겨우 어린이의 받아쓰기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신을 믿으며, 예수를 믿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어린이들의 소설 받아쓰기 내지는 베끼기 인데 말이다. 필사 작업에는 옆에 원본을 두고 베낀 것도 있고, 여러명의 필사자가 자리에 앉고 맨 앞에 필사할 본문을 불러주는 사람이 본문을 읽으면 다같이 필사한 것도 있다. 두가지의 경우 생기는 이문생성방식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인류가 보존하고 있는 사본은 그 중에서도 일부분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어느 정신나간 사람이나 기관이 질 떨어지는 사본을 보존하려 하는가? 더구나 우리는 한 순간에 10명씩 앉아서 필사한 본문의 10개의 본문 중 10개를 다 가지고 있지 않다. 또, 사본의 연대는 천차만별이라서 1000년 이상 차이나는 사본도 부지기수다. 후대의 필사자들은 필사원본에 수정을 가한경우도 수도 없다. 변 교수가 그렇게 평가절하 하고 싶어하는 사본에도 사본의 최초 생성일로부터 수백 년 단위로 수정자가 최소 3명(א, 코덱스 시나이티쿠스), 2명(B, 코덱스 바티카누스) 있다. ‘어려운 독법의 원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그저 ‘어린아이가 받아쓰기를 실수한 것일 뿐’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예시를 들고 있다. 내가 이 교수에게 반론으로써 ‘Lectio difficilior potior’를 알려주는 것 자체가 마치 ‘어린아이에게 받아쓰기를 시키는 것’ 같다.



이것을 실제로 성경의 한 구절을 예로 들어서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마태복음의 “주기도문”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익숙해 있다. 우리 “개역 한글판”에 그렇게 되어 있고 NA 판과 UBS 판에도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본상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기도문 중 한 군데만 살펴보면 누가복음 11:2에 NA/UBS 판은 그냥 “아버지여”라고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독본을 지지하는 주요 사본은 p75와 א B 정도에 불과하다. 대신에 A C D W 등의 초기 대문자 사본들과 E F G H P Δ Θ Ψ 등의 후기 대문자 사본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소문자 사본들과 렉시오나리아들이 마태복음 6:9에서와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NA/UBS 편집자들은 그들의 “내적 증거”의 원리를 따라, 수많은 객관적인 “사본상의 증거”를 무시하고 극소수 사본들의 증거를 취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11:2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가지고 있는 사본들은, 비록 그 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마태복음 6:9의 본문에 의해 “동화”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면 관계상 한 군데만 살펴보았지만 수많은 곳에서 이와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NA 판이나 UBS 판은 바로 이러한 “내적 증거”의 원리를 기초로 하여 편집된 성경이며, 이 점에 있어서 1881년의 웨스트코트-홀트 판과 편집 원리 면에 있어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내적 증거”의 원리를 따르는 편집판들은 결국 객관적인 사본상의 증거를 무시 또는 경시하고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을 따르는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현대 사본학계의 원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NA/UBS 판을 가지고 있으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의 원본을 가지고 있는 냥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쿠르트 알란트를 중심으로 한 다섯 명의 현대 사본학자들의 “비평적이고 주관적인 본문”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현재 NA 판이 제시하고 있는 “각주”의 증거가 비록 학적이고 인상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대부분은 어디까지나 자료의 제시에 그칠 뿐, 사실상 그 편집판은 B, א과 몇 개의 파피루스를 중심으로 그들의 “내적 증거”의 원리를 따라 만든 주관적 본문에 불과하다.


->자, 이 부분을 읽은 독자들은 왠지 주장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는 깜도 안되는 본문비평이다. 내가 본문비평 이론 중 한 부분만 사용하여 변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려 한다. '원본문이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이라면,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그저 필사자의 실수인가? 필사자의 실수라면 누가복음이 쓰인 저자를 아는 사람이 원본에서 첫번째 필사를 실수 가득히 필사 하고 원본이 없어져 버렸을 때 그 잘못된 첫번째 필사본이 쭉 우리에게 짧은 주기도문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몇 백년후에 그 사실을 아는 필사자들이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을 베껴와 누가복음에 써 넣었다면, 이는 충분한 가정이다. 과연 이 사실은 몇%의 확률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어떠한 이론보다 우등하고 합리적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IV. 웨스트코트-홀트 판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모색

그렇다면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의 새로운 사본학 이론에 기초한 신약 성경이 출판되었을 때 거기에 대한 비판은 없었는가? 아니다. 오늘날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은 별로 이의가 없는 정설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지만, 이미 그 당시 교회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문제점이 지적되었던 것이다. 특히 존 버건(John W. Burgon, 1813-88)은 그 당시에 웨스트코트-홀트의 새로운 이론과 그것에 바탕한 새로운 신약 성경(Revised Version이라고 불렸음)을 비교적 상세히 분석하고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비록 현대 사본학계를 대변하는 메츠거는 그를 “잃어버린 주장들과 불가능한 신념들을 옹호하는 챔피언”으로 악명 높다고 소개하면서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조롱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도리어 현대 사본학자들이 얼마나 객관적이지 못하며 편견에 빠져 있는가를 드러낼 뿐이다.


버건이 런던의 잡지에 발표한 세 편의 글들은 1883년에 The Revision Revised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버건은 웨스트코트-홀트의 “계보론적 방법”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선호한 א, B, D는 “현존하는 가장 부패한 사본들”(the most scandalously corrupt copies extant)이며, 그것들은 “가장 수치스럽게 절단된 본문들”(the most shamefully mutilated texts)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또한 이 사본들은 “조작된 독본들”(fabricated readings)과 “실수들”(blunders)과 “진리의 고의적인 왜곡”(intentional perversion of Truth)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스크리브너(F.H.A. Scrivener)도 1883년에 나온 그의 책에서 “홀트 박사의 이론은 역사적인 토대를 완전히 결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따라서 “그 이론의 토대는 교묘한 상상의 모래 땅 위에 놓여져 있다”고 하였다.


-> [※Westcott-Hort의 그리스어 성서에서 영국에서 영어번역을 하여 Revised Version(*1911년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대본)이 나왔다. 또 미국에서 영어번역을 하여 ASV가 나왔고 이것 역시 1911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대본이다. 한글 개역성경은 RV와 ASV의 영어-한국어 번역본이다.]


호르트 박사를 비판한 일은 영국에서 있었던 일로 존 버건은 흔히 딘 버건(Dean Burgon)으로 불린다. 변 교수는 버건의 책을 제대로 읽어봤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버건의 주장과 근거를 가지고 와야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고, 감정적인 대응(부패함, 수치스러움, 조작됨, 실수, 고의적인 왜곡)을 하는 단어들만 차용하여 글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Burgon(버건)의 주장은 무엇이었냐면, 교부들의 인용이 Traditional Text(전통 본문, Majority Text(다수 본문)는 곧 수용 본문(Textus Receptus)을 뜻한다)에서와의 일치는 2630건, Neologian(새로운 교리를 주창하는 사람, 비꼬아서 말한 이 사람은 Hort 박사를 뜻하고, 그 본문은 곧 Westcott-Hort의 편집본)과의 일치는 1753건 이며 3:2의 비율을 보인다고 Traditional Text of the Holy Gospels Vindicated and Established p.101(버건의 연구물을 다른 사람이 통계치 낸 것이다) 에 나온다. 사실 이 주장은 세세함을 알아보지 않고 단순히 통계를 낸 숫자놀음 이지만, 이 주장은 WH에서는 먹힐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립본문이라 부르며 א, B를 선호한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NA-UBS는 교부인용을 전부 싣고 있다. 그럼에도 WH를 까면서 그것을 계승한 NA-UBS를 까려는 변 교수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러나 대세는 웨스트코트-홀트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그 후로 학자들은 차차로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과 그들의 「수정본」 신약을 지지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수많은 네슬레 판이 거듭된 오늘날에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NA 판이 20세기의 TR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NA 판의 독주에 대해 비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동안에, 소수의 학자들과 목사들을 중심으로 이 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운동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그 뿌리는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흠정역”(KJV) 옹호 운동이다. KJV는 1611년에 번역되어 그 경건성과 아름다운 문체로 인하여 수백년간 사랑 받아 온 번역이다. 그러나 이것은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의 「수정본」(Revised Version)에 의해 근본적으로 도전 받게 되었다. 1901년에 이 RV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ASV가 출판되었다. 이것을 토대로 개정한 것이 NASB(1971)이다. 또한 RSV(1952), NEB(1961), NIV(1978)도 출판되었으며, 최근에는 NRSV도 나와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TR이 아니라, 웨스트코트-홀트의 편집판 또는 그 계승이라 할 수 있는 NA/UBS 판을 대본으로 사용하였다.


->사실이다.



이처럼 새로운 번역 성경들이 쏟아져 나오자 보수적 신앙을 가진 영미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뢰성이 손상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뿐만 아니라, 1611년 이래 400년 가까이 교회에서 사용되어 오고 있는 KJV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에 대해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보수적 신앙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KJV 옹호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의 Trinitarian Bible Society가 스크리브너(Scrivener)의 「희랍어 신약 성경」(1894, 21902)을 재출판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스크리브너 판은 KJV의 모체가 되었던 TR을 제공해 준다. KJV의 번역자들은 그 당시 베자(Theodore Beza)가 편집한 신약(그 중에서도 특히 1598년의 제 5판)을 주로 대본으로 사용했는데, 스크리브너 판은 이 베자 판과 미미한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다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말씀보존학회」가 1994년에 「한글 킹 제임스 성경」(신약 초판은 1990)을 내놓았는데, 오늘날의 많은 번역들이 잘못된 사본에 기초해 있음을 비판하고 전통적인 본문(TR)을 옹호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다소 감정이 앞서서 지나친 주장을 한 것들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오늘날 추적하기 어려운 사본들의 전수 역사에 대해 너무 자신 있게 단정하고 있으며, 또한 TR과 KJV을 지나치게 절대시하는 듯한 인상이 든다. 물론 KJV가 경건하고 좋은 것이긴 하나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KJV의 번역자들은 희랍어의 “시상”(時相, aspect)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이것은 그 당시의 학문 수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일례로 KJV는 사도행전 19:2와 에베소 1:13 등에서 “부정 시상 분사”(aorist participle)를 한 시제 앞선 것으로 잘못 번역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오순절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 그리고 로이드-존스 목사가 이 오역을 토대로 “믿음 후 성령받음”을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1982년에 나온 NKJV에는 이러한 오역들이 많이 시정되었다).


->TR에서 비롯된 KJV를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400년 묵은 영어 번역본인 KJV에 대한 비판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 대안으로 Majority Text 에서 번역한 NKJV를 옹호하고 있다. 웃길 일이다. (*물론 KJV 근본주의자들은 NKJV 역시 사탄에 의해 변개되었다고 맹비난한다.)



다른 또하나의 흐름은 차분하게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을 재평가하고 현대 사본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하는 학적 노력들이다. 주로 미국과 화란의 보수적인 학자들과 목사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인데, 미국 내의 보수적인 신앙의 사람들과 선교사들 사이에 그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피커링(Wilbur N. Pickering), 로빈슨(Maurice A. Robinson), 스터즈(Harry A. Sturz), 핫지스(Zane C. Hodges) 등이 전통적인 비잔틴 본문을 옹호하고 있다. 화란에서는 판 브루헌(J. van Bruggen) 교수가 1976년에 출판한 조그만 책(The Ancient Text of the New Testament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음)에서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의 문제점을 학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었으며, 전통적인 비잔틴 본문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그 제자 중의 하나인 뷔썰링크(W.F. Wisselink)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래 현대 사본학의 “공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동화” 이론에 대해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의 수많은 자료들을 컴퓨터로 처리해서 과연 그 이론이 타당한지 여부를 검증하였다. 그의 결론은 “비잔틴 본문 형태는 그것의 조화적 또는 동화적 성격 때문에 열등하다고 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건전한 토대 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은 1982년에 핫지스(Zane C. Hodges)와 팔스타드(Arthur L. Farstad)가 편집한 The Greek New Testament according to the Majority Text가 미국의 최대 성경 출판사인 토마스 넬슨(Thomas Nelson)사에 의해 출판됨으로써 구체적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 희랍어 신약 성경은 1985년에 제 2판이 나왔으며 현재 한국에도 조금씩 보급되고 있다. 이 신약 성경의 서문에 보면, 오늘날 가장 유명한 두 희랍어 신약 편집판인 UBS(3판)과 NA(26판)은 이집트에서 기원한 적은 수의 고대 사본에 매우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주로 B, א와 몇몇 파피루스들), 따라서 이 편집판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은 “이집트 본문”(Egyptian text)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소수의 몇몇 사본들의 증거에 반해 상당히 많은 대다수의 사본들은 그 본문이 거의 일치하게 전수되어 내려오고 있다. 이 대부분의 일치하는 사본들의 본문 형태는 “대다수 본문”(Majority Text)이라고 불리는데, 토마스 넬슨사가 출판한 희랍어 신약 성경은 바로 이 “대다수 본문”을 토대로 편집된 것이다.


->왜곡이다. 이름은 거창하게 ‘다수 본문에 따른 그리스어 신약성서’이지만, 따지고 보면 TR의 부활이다. 이 그리스어 신약성서로 NKJV가 번역되었으니까. 이 와중에 그 서문에서 NA-UBS가 이집트 본문에 매우 많이 기초하고 있다는 둥 하는데 헛소리다. 중립본문 이라는 용어 자체가 폐기된 이 시점에와서 NA-UBS를 까려고 든다. 몇번이나 언급하지만, 중립본문에 의존해 NA-UBS 비평본문을 만든게 아닐 뿐더러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비평본을 낸 것이다. NA-UBS는 전세계 최고의 성서 본문비평 학자들이 모여 앞선 증거를 취합해 회의하고 토론한 것이다. 변 교수처럼 TR과 KJV계열을 지지하는 인간들이 실오라기 만한 흠집도 못내는 곳이다.



물론 이 “대다수 본문”(다르게는 비잔틴 본문, 수리아 본문, 코이네 본문 등으로 불림)을 가지고 있는 사본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이집트 사본들보다 시기적으로 후대의 것임은 사실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식하기 쉬운 파피루스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곳은 건조한 기후 조건을 가진 이집트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다수 본문의 “본문 형태”는 바티칸 사본이나 시내산 사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2,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가는 수리아 역본들이 거의 비잔틴 본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당시에 비잔틴 본문 형태를 가진 희랍어 사본들이 이미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 수리아 역본들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새로이 발견된 파피루스들 중에는 놀랍게도 비잔틴 본문을 지지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예를 들어 p46). 나아가서 “대다수 본문” 형태를 가진 사본 또는 역본들은 고대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수리아, 비잔틴뿐만 아니라, 고딕,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심지어는 에티오피아에서도 발견된다. 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으면서 일치하는 수많은 사본, 역본들의 존재는 곧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서 전수되어 왔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대다수 본문”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심지어 현대 통계학 이론을 동원하여 “현재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는 사본들의 본문 형태가 가장 오래된 사본 전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정신승리도 가지가지 한다. 비잔틴 본문, 즉 다수 본문은 이름 그대로 그리스어 사용지역이었고, 당연히 성서도, 시간전례도, 성찬전례도, 심지어는 일상 생활도 그리스어로 하던 지역이다. 동로마제국인 비잔틴 제국이 망할 때까지 말이다. 그 사람들이 그리스어 본문을 많이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것들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스어 사용자들이기 때문에 내용이 자신의 지식의 한계, 또는 교리에 갇혀 이해하기 힘들 경우에는 본문을 수정해서 필사했고, 그것들이 점점 모여 최종에 이른 것이 비잔틴 본문의 후기형태이다. 또 코이네 그리스어인 신약성서 원문과 달리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비잔틴 그리스어로 시대가 달랐고 언어가 변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대 언어는 적절한 자신의 시대에 쓰는 단어로 치환하여 필사하고 이해했기 때문에 변화가 크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며, 무작정 비잔틴 본문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비잔틴 본문도 원문에 가까운 부분이 있다. NA-UBS는 그 점을 놓치지 않고 비잔틴 본문의 읽기가 맞을 때는 그것을 읽으라 지시한다. 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계 그리스어 본문이 높은 평가를 받았는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학문의 중심지로 ‘고대’에 이미 본문비평이 이루어진 곳이다. ‘고대’에 사본들을 가지고 본문비평을 하여 원본문을 확립하고 필사하여 보존한 곳으로 성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전수했다.




V. 우리의 방향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사본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현대의 NA, UBS 판이 웨스트코트-홀트의 잘못된 사본학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희랍어 성경을 택해야 할 것인가? 그냥 옛날의 TR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아니면 더 대안이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사본학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은 물론 쉽게 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을 위해 여기에 우리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해 보기로 하자.


1. 먼저 사본학과 관련하여서 커다란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사실 우리는 사본의 전수 과정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어떤 사본이 발견되었을 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 사본의 연대를 대략 추정할 수는 있지만, 누가 어디서 어떤 계기에 의해 필사했는지는 거의 알 수 없다. 특히 제일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어느 사본을 대본으로 해서 필사했는지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또한 필사자가 어느 정도의 조심성을 가지고 필사했는지, 그리고 필사 후에 다시 원본과 대조해서 점검했는지에 대해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알기 어렵다. 따라서 오늘날 사본에 대한 여러 이론들은 대개 불확실한 추측에 근거한 것이 많다. 뿐만 아니라 사본의 연대가 빠르다고 무조건 우수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2, 3세기의 파피루스라고 해서 너무 신뢰해서는 안되는데, 왜냐하면 파피루스는 그 당시에 비교적 값싼 종이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어떤 사람이 개인적 용도로 급하게 필사했을 경우에 많은 오자와 부정확한 것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9, 10세기의 소문자 사본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되는 것은 비록 후대의 사람이 필사했지만 초기의 좋은 사본에 근거해서 정성껏 필사하고 교정했다면, 그것은 4, 5세기의 대문자 사본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사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필자가 후대의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본의 필사 과정과 전수 과정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사본에 대해 말할 때는 고도의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웨스트코트-홀트와 그후의 사본학자들이 비잔틴 본문 형태를 가진 사본들을 너무 쉽사리 가치 없는 것이라고 배척해 버린 것은 큰 잘못이다.


2. 그러나 오늘날 지배하고 있는 NA 판과 UBS 판은 잘못된 사본학의 원리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전통적인 비잔틴 본문을 무조건 지지해서도 안되지만, NA 판과 UBS 판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오늘날의 NA/UBS판은 분명히 잘못된 사본학의 원리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불과 몇 개의 이집트 사본들을 토대로 만든 “지역판”이며, 2천년 가까이 교회에서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오던 대다수의 사본들의 증거를 불충분한 이유로 무시하고 있다. 대신에 그들은 소위 “내적 증거”라는 원칙 아래 서로 조화되는 독본들을 “동화”되었다는 구실로 가능한 한 배제하고 서로 조화되지 않고 어색한 독본들을 본문으로 많이 택하였다. 이러한 “동화” 이론의 배후에는, 그리스바하에게서 분명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성경의 원본은 가능한 한 조화되지 않는다는 “원본부조화가설”(原本不調和假說)이 놓여 있다. 그래서 서로 조화되는 독본은 후대의 필사자들이 가필해서 수정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배격해 버린다. 이것이 소위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현대 사본학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 하에 편집된 성경은 본문들 사이에 가능한 한 서로 충돌하고 맞지 아니하고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것들로 많이 차 있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사실은 NA 판과 UBS 판이 이런 부조화 본문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서 NA 판과 UBS 판은 역사적인 어떤 사본의 계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5명의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선택한 본문을 제공해 주고 있다. 물론 그들은 몇몇 대문자 사본들과 파피루스를 중요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위 “내적 증거”라고 부르는 것이며, 어느 것이 동화되었고 안 되었고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다섯 명의 편집자들이다. 그들 사이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결국 투표로 결정하였다. 물론 이것은 실제 작업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이로써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본문 결정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말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의 NA/UBS 판은 사실상, 역사적으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사본들의 “외적 증거”보다는 현대 사본학자들의 “주관적 판단”을 더 따른 것이다. 따라서 NA/UBS 판이 제시하는 본문은 현존하는 어떤 사본에도 근거하지 않은, 다섯 명의 사본학자들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편집진이 바뀌면 또다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가변적인 것이다. NA/UBS 판의 이러한 “주관주의”(subjectivism)와 “절충주의”(eclecticism)는 20세기의 현대 사본학이 외양적으로는 견고한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불확실한 토대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NA-UBS가 잘못된 사본학의 원리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주장하나, 그 근거는 없고, 그저 다수본문이 맞다고 생각하는 변 교수가 억지를 부리며 변증하고 있다. NA-UBS 편집진이 겨우 5명이라 생각하는 것부터가 억지의 시작이다. 사본의 편집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학자들은 없던 셈 치는 것이 되며, 논란이 있던 구절과 근거는 전부 등급도 매기고 []를 달기도 했다. NA-UBS가 어떤 사본에도 근거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현재 남아있는 사본중에 원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모든 사본들을 비교대조하여 만들어졌으므로, 당연히 비평본문은 창조물이다. 그건 TR도 마찬가지고, 변 교수가 억지를 부리면서 까지 지지하는 Majority Text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모든 고대 본문 비평된 문헌들에게 있는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변 교수가 무식한 것이 아닌가?



3. 이런 점에 있어서 1982년과 1985년에 나온 MT 판은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주가 되지 아니하고 역사적으로 교회에서 전수되어 내려오는 대다수의 일치하는 사본들의 독본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견고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20세기의 몇몇 사본학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본문을 따르는 것보다는 2천년 가까이 교회에서 사용되던 사본들의 본문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MT 판이 바로 원본의 말씀을 제공해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MT 판 편집자들도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편집판(1985)이 “예비적”(preliminary)이고 “준비적”(provisional)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현존하는 대다수의 희랍어 사본들의 가치와 권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MT 판은 아직도 많은 연구와 보완 작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주관적이고 비평적인 편집 원리에 의해 편집된 NA/UBS 판에 비해서는 훨씬 객관적이고 역사적 증거가 있는 본문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사본학과 관련하여서 아직도 많은 연구가 진전되어야 하겠지만, 현단계에서는 MT 편집판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사람들은 TR이 가장 나은 대안이 아닌가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TR도 비잔틴 사본들을 토대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TR과 MT는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TR 판들은 아직도 비잔틴 사본들의 자료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TR은 하나의 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판들(Erasmus, Stephan, Beza, Elzevier 판 등)을 묶어서 부르는 명칭인데, 300여년간 구라파 교회에서 받아들여서 사용한 희랍어 신약 성경의 본문 형태를 뜻한다. 그러나 최근의 MT 판은 TR 뿐만 아니라, 20세기초의 폰 조던(Von Soden)의 비잔틴 사본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대다수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을 좀 더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MT 판은 옛날의 TR보다 한 걸음 더 진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T 판에는 TR의 본문과 다를 경우에 밑의 “각주란”에 그것이 표시되어 있으며, 대다수 본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웃음 밖에 안 나오는 무식의 극치이다. Majority Text가 대안이라고 억지 주장하고 있다. 나는 여태 이 긴 글을 읽으며 그 지지근거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4. 사본학의 장래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사본학 분야는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것이라서 아직 결정적인 것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주로 독일 뮌스터의 “신약사본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문제는 그들의 사본학의 원리와 신학적 전제이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어도 많은 중요한 자료들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경시한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NA 26판(UBS 3판)에서 NA 27판(UBS 4판)으로의 진행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필자의 “UBS 4판과 NA 27판에 나타난 현대 사본학의 동향,” 「개혁 신학과 교회」 4호 (1994), pp.53-66 참조), 비록 더 많은 자료들이 참조되고 각주에 실리기는 했지만 그것들이 본문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전의 문제가 개선되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여러 군데에서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더 강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사본학의 발전을 위하여서는 올바른 믿음에 바로 선 학자들의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특히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며, 사본학의 기본 전제처럼 여겨지고 있는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과 “동화 이론”에 대해서도 비판적 검증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소문자 사본들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여태까지의 사본학은 주로 몇 개의 대문자 사본에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고 있는 방대한 소문자 사본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앞으로 많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렉시오나리아(lectionaria)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다. 교회에서 공적으로 낭독될 때 사용되었던 렉시오나리아 본문은 거의 모든 곳에서 비잔틴 본문과 일치하고 있는데, 렉시오나리아는 교회의 공예배시에 낭독된 것이기 때문에 그 성격상 보수성과 엄격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 자료들을 연구하고 참조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알란트는 NA 26판에서 이 자료를 거의 무시했으나, NA 27판과 UBS 4판에서 데살로니카의 렉시오나리아 연구소 소장인 까라비도뿔로스(J.Karavidopoulos)를 편집 위원으로 가담시킨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그 자료들이 본문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파피루스 사본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요구된다. 2, 3세기의 파피루스들은 웨스트코트-홀트의 기대를 뒤엎고 예상외로 비잔틴 본문 형태를 지지하고 있는 것도 많다(특히 p46).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파피루스들의 증거는 대개 웨스트코트-홀트의 “중립 본문”을 지지하는 것과 “비잔틴 본문”을 지지하는 것이 나뉘어지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앞으로 파피루스에 대한 더 많은 연구는 사본 전수 과정에 대해 좀 더 밝은 빛을 비춰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오늘날 발견되는 파피루스들이 이집트 지역에 치우쳐 있다는 것과, 또한 파피루스가 값싼 재질이기 때문에 조심성 없이 필사한 파피루스들은 오히려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수리아 역본, 아르메니아 역본, 고대 슬라브어 역본, 에티오피아 역본 등에 대한 연구도 사본에 대한 좀 더 넓고 균형 잡힌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NA26 UBS3와 NA27 UBS4는 개정하면서 본문의 변화는 아예 없었고, 자료의 변화도 거의 없었다. 시간전례 본문을 연구하는 학자 중의 최고가 이미 NA-UBS 편집진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이전부터 시간전례 본문이 무시된 적은 없으나, 변 교수는 마치 앞선 단락에선 완전 무시된 것으로 여기고서는, 시간전례의 대학자가 들어왔으나 본문의 변화가 없었다며 마치 통탄할 일인 것 마냥 쓰고 있다. 그 학자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본문의 변화를 가져올 만큼의 증거가 편집진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없어서' 였을 뿐이다. 그의 의견이 NA-UBS에 심각한 도전을 가지고 왔다면 당연히 그 결과는 논란으로 라도 분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현 상태를 보인다. 변 교수는 NA-UBS가 마치 TR로 편집되기를 원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NA-UBS의 편집기준은 비잔틴 본문‘만’가지고 하는게 아니라 모든 사본 및 인용구와 번역본 까지 고려하여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Majority Text 처럼 주관적인 비평본문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 사본학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를 많이 지니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처럼 사본 문제와 관련하여 의견의 차이가 크고 전혀 다른 편집판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볼 때에, 자칫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본상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 국한되어 있거나 의미상 큰 차이가 없는 것들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인가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가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가 하는 정도의 차이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는 같은 의미이지만 단어가 다른 경우라든지, 또는 같은 단어인데 시상이 다른 경우도 제법 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뜻에 중요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사본상의 차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벵겔이 평생 동안 사본을 연구한 후에 내린 결론, 곧 “상이 독본은 생각했던 것보다 수가 적고 또한 복음적 교리의 어떠한 조항도 요동시키지 못한다”는 결론을 오늘날 우리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곧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필사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존되어 왔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5천여 희랍어 사본들 중 대다수의 사본들이 거의 일치하는 본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한 보존에 대해 감사드릴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끝>


->전투적무신론의 종합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이 글을 다 읽은 독자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 글은 쓸데없이 매우 긴 글로 역사나 읊다가 억지비난을 반복했다가 잘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용어들이 튀어나왔다가 하는 등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잘 모르는 독자들은 변 교수의 말이 사실인 것 인 양 들렸을 수 있다. 본인이 볼 때 변 교수는 본문비평에 대한 지식이 '성서(신약)'에만 한정되어 있다. 그는 원래 '본문비평'이 고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모든 문학작품에 쓰인다는 것을 모른다. NA-UBS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며, 본문비평을 할 줄도 모르는 듯 보인다. 다만 변 교수는 역사에 대해선 잘 꿰고 있다. 만약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주장들을 분리해 내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글은 '간략히 보는 사본학의 역사' 라는 제목으로 소일거리용 책의 한 챕터로 다룰만 하다.


더구나 변 교수가 하려했던 현대 본문비평학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반론해내지 못했고, 주장도 억지였던데다, 근거도 너무 빈약해 마치 '어린아이'의 기고글을 읽는 것 같았다.

심령이(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무엇인가?

종교경전/본문비평 2013. 11. 10. 22:40

'심령이(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무엇인가?'


-전투적무신론


차례

1. 들어가는 말

2. 본문비평 : 원본문 복원

3. 사해사본 : 해석과 주석

4. 주석자와 주석서의 권위

5. 한국어 번역판은 다 쓰레기

6. 결론



<들어가는 말>


나는 대한민국의 (목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 신학대학 교수들을 우습게 여긴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외국까지도 넓힐 수 있다.

나는 '어느 교수는 ~한 입장인데, ~한 해석을 하는데' 같은 쓰레기 주장을 제일 한심한 주장으로 본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쓰레기 설교이자 한심한 주석을 내놓는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5:3)

공동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새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개역개정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난 이 구절에 대한 전국의 모든 쓰레기 주석, 설교, 강의를 다 까고자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 대한 부분으로,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워낙 찬송가에서도 많이 쓰는 표현이기에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마음이 가난하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참 낯설다.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표현은 1세기에서나 쓰였을 법한 말이고 지금은 2000년이 지났다. 마태복음 5:3을 제외하고는 이런표현을 볼 수가 없다.


이를 주먹구구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개신교 개역성경은 영어 'spirit'을 심령(心靈)이라 번역하였는데, 심지어 어느 해석 중에는 개역성경이 진리이고 원문인 줄 알았는지 심(心)과 영(靈)이라는 글자를 분석한 해석도 있었다.


"돈 많아도 괜찮아요~예수님은 마음의 가난을 중요시 여겼어요~자발적인 가난이 중요합니다~돈 내세요" 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룬다.


이 구절은 번역 자체가 쓰레기다! 공동번역, 새번역 조차도 쓰레기 번역이다.


나는 그리스어를 할줄 아는 흉내만 내는 놈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본문비평' 까지 해주겠다.




<본문비평 : 원본문 복원>



마태복음 5:13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복되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것이다. 하늘나라가.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원문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평행구절이 있으니 누가복음 6:20이다.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ί ὅτι ὑμετέρα ἐστὶν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복되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예수는 분명 1번만 말했을 텐데 도대체 무엇이 원본문인가?

마태복음은 자신만의 어휘로 범벅되어있다. 우라노스와 바실레이아를 동시에 쓰면서 데우스와 바실레이아를 같이 쓰진 않는다. 하지만 다른 복음서는 데우스와 바실레이아를 같이 쓴다. 어려운가? 다른 성경은 '하느님의 나라'라고 표현하는데 마태복음만 '하늘나라'라고 표현한다. 


누가는 제자들이 듣는 한편, 마태는 제자들과 군중이 듣는다. 그러면서 마태는 도덕교사가 말하는 정도의 내용으로 탈바꿈 시켜 그런 도덕적인 사람들(그들, 아우톤)이 복되다고 표현한다.


더구나 프뉴마티(영)는 누가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원본문은 누가이며, 마태는 개작했다. 자료비평으로 보면, 출처는 Q source.



<원본문>누가 6:20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ί

ὅτι ὑμετέρα ἐστὶν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마카리오이 호이 프토코이

호티 휘메테라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복되다! 가난한 사람들!

너희의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개작>마태 5:3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마카리오이 호이 프토코이 토 프뉴마티

호티 아우톤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복되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것이다

(하늘)나라가


[]는 아예 첨가한 것이고 ()는 수정한 것이다.


즉, 예수는 (진짜로)가난한 사람들이 미래에 올 하느님의 나라에서 복되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마음이 가난하다는 둥 하면서 도덕교사의 말로 탈바꿈 시켜 해석하려하는 건 쓰레기 짓이다. 애초에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영으로 가난한 사람'은 애초에 없다. 이 구절에 대한 예수의 진의는 '없다'이다. 다른 사람이 조작한 말에 원작가의 의미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 구절은 마태가 지어낸 것이므로, 1세기 내지는 비슷한 시기에 썼던 글에서 찾아보아야 하는데 그동안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간 수많은 교부들과 유명한 학자들과 종교개혁자들 주석가들이 주석을 달았지만 전부 쓰레기다. 그러다 20세기 중반 사해사본이 발견되면서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 2군데에서 나옴으로써 해석에 대한 가능성이 열렸다. 그때부터 이 구절에 주석을 달 수 있게 되었다. 착각하지 마라.




<사해사본 : 해석과 주석>


아쉽게도 2개중 1개인 찬미가(호다욧)의 '영으로 가난한 사람'은 앞뒤 문맥이 없다. 이건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전쟁 두루마리 14:7 는 한 구 정도가 구멍이고 나머지는 있다.


14:7 (...)Among the poor in spirit [...] a hard heart, and by those whose way is perfect shall all wicked nations come to an end;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로 인해 [...] 완고한 마음이, 그리고 온전한 길을 걷는 사람들로 인해 악한 국가들이 종말을 맞을 것이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란 '완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는 반대의 뜻 , '온전한 길을 걷는 사람들' 과는 유사한 뜻 이다.


이와 거의 유사한 구절은


Ibid. 11:10 You will ignite the humble of spirit like a fiery torch of fire in a sheaf, consuming the wicked.


당신은 영의 겸손을 점화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곡식 단 속에서 불타는 횃불처럼 될 것이고, 악한 것은 소멸된다.

-> '곡식 단 속에서 불타는 횃불처럼' 이라는 표현은 Zechariah(즈카리야) 12:6 에서 따온 것이다.




<주석자와 주석서의 권위>


앞서 말했다 시피 주석자와 주석서의 권위는 없다. 고대 교부 누구가 주석을 썼든, 종교개혁가 누구가 주석을 썼든지간에, 그것은 BCE 1세기~CE 1세기 사이에 쓰인 쿰란문헌보다 권위 있을 수 없다. 예수와 동시대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런 사람이라 칭하며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문맥으로 뜻을 밝혀낼 수 있고(그 당시에는 사전이 없다. 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많다.), 그마저도 쿰란문헌이 세상에 공개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누구는 주석하기를.." 이라며 구절에 대한 해석을 들이민다면, 그 사람이 1세기 유대인이 아닌이상 더 권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마음껏 비웃고 욕해도 좋다.




<한국어 번역판은 다 쓰레기>


해당 문장을 내가 직역했을 때 '복되다!' 하는 선언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 문장은 예수가 익히 듣고 공부했었을 시편에 집중적으로 나오면서도 문장의 가장 첫번째 단어이다. 즉, 당시 민중이 시편을 들었을 때는 복되다는 선언이 먼저이고 내용이 나중이다. 예수는 그 문장을 본따서 선언하고 있으므로, 역시 복되다는 선언이 먼저이고 내용이 나중이다. 이는 예수의 아람어 말을 번역한 그리스어 신약본문에도 마찬가지로, 그리스어인 (μακάριοι 마카리오이)가 먼저 나오고 내용이 나온다. 시편은 히브리어인 (אשרי 아셰레-(이))가 먼저 나오고 내용이 나온다. 물론 내용도 '~한 사람'이 먼저 나오는게 이 문장의 특징이다.


최근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대부터 시작된 번역인 라틴어 불가타, 영어 KJV 들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 번역판은 복되다는 선언이 문장의 맨 마지막에 위치해버려서, 민중이 직접 들었을 가슴 뛰는 문장을 도덕 교과서로 만들어버렸다!


번역 원칙이 어찌되었든, 이 부분은 문장을 깨어서 번역해야 한다.

가톨릭의 '성경'과, 개신교의 '두란노 우리말 성경'은 문장의 힘을 살려서 올바르게 번역하였다.


개역성경은 원래가 중국어 성경과 RV,ASV를 어설프게 번역한 것이니 원래 쓰레기니까 그렇다고 치고(그마저도 RV와 ASV에 대한 모욕이다), 공동번역은 당시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하나만 할 줄 알아도 대단한 실력자였기에 이정도는 그렇다고 친다해도, 훨씬 최근에 나온 개신교 표준새번역 과 그 개정판 등이 그 따위 번역을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맨날 히브리어 그리스어 언급하면서 원문번역 해야한다고 한 번역이 표준새번역을 번역했는데, 서로 번역원칙이 하나도 안 맞는다. 시편번역만 봐도 얼마나 대충했는지 보여진다. 그러면서 제일 나은 그 원문번역본은 버리고 병신번역 개역으로 설교하고 논문쓰면서 원문 언급하고 있다. 하여간 정신이 나갔다.




<결론>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느꼈겠지만, 이것보다 올바르고 자세한 주석 및 논문이 있으면 가지고 와보기 바란다. 무신론자보다도 훨씬 못한 크리스천 신학자들의 수준을 보라. 칼동사니 완료니 남성형이니 복수형이니 외국 학자들이 문법번역 다 해놓은 것을 줄줄이 읽는 수준은, 동시대 히브리어 문헌들에 대해 읽을 줄도 모르며 알지도 못한다는 것은 그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과 해석은 박사학위 이상의 신학교수들도 헛소리 잘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목회학 석사의 목사들은 낄 자리 조차 없다. 사해사본 만한 또 다른 엄청난 발견으로 인해 새로운 내용으로 논문을 써서 논리와 근거로 반박하지 않는 이상 반박은 불가능할 것이다.

조병수 교수의 'Q문서 평가'를 반박함

종교경전/고등비평 2013. 9. 19. 01:06

조병수 교수가 직접 쓴 'Q문서 평가'를 반박함. 

'->'와 '굵은 글씨'는 전투적무신론의 글 및 강조이며, 작은 글씨(8pt)는 조병수 교수의 글이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직접 올린 글로 교수의 프로필 부터 시작한다.


조병수 목사 

총신대 (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M.Div.) 

독일 뮌스터 대학교 (Westfaelische Wilhelms-Universitaet) 신학부 신학박사 (Dr. theol.) 신약학

독일 Aachen 한인교회 목회(1988-1990)

독일 Wuppertal 한인교회 목회 (1991-1994) 

염광교회 담임목사 (1995-2001)

現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직접 확인해본 결과 현재 예장합신 신학대학원의 신약학 교수이고, 현재 예장합신 신대원 총장이다.


Q문서 평가 (2008.7.6. 합동소식)


최근에 소위 Q문서를 기초로 하여 기독교를 다시 정의하자는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 이때 Q문서의 허와 실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Q란 무엇인가? Q는 근원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Quelle)의 약자이다. Q의 내용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공통적으로 나오지만 마가복음에는 들어있지 않는 본문들이다. 예를 들면, 겨자씨 같은 믿음에 관한 말씀이다(마 17:20/눅 17:5f.). 복음서들을 언급할 때 사선 / 또는 이중사선 //은 병행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로 이루어진 어록 수집이라고 한다. Q란 표현은 지난 19세기에 공관복음서 연구에서 두 자료 설이 주장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공관복음서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종합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서 같은 조망을 가지고 기록된 복음서들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두 자료 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과 또 어떤 자료(소위 Q)를 사용해서 기록했다고 추정하는 이론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각각 마가복음과 어떤 자료가 공통적으로 들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외에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각자에게만 독특한 내용들이 있다. 따라서 두 자료 설은 필연적으로 한편으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보다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다는 마가복음 우선설에 근거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의존한 것으로 간주되는 어떤 자료(소위 Q)를 가정하는 Q자료 설에 근거한다.


Q자료 설은 20세기 초엽부터 양식사라고 불리는 성경연구방식이 활개를 치면서 공관복음서연구 분야를 삽시간에 장악했다. 물론 이에 대하여 거센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신약학자들이 Q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Q자료라고 부르던 것이 Q전승 또는 Q문서라는 표현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아예 Q복음이라는 표현을 공공연히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고, Q공동체라든가 Q신학이라는 용어들도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국제적인 Q 프로젝트 위원회가 구성되어 Q문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서론으로 Q문서에 관해 압축하여 배경지식으로 제시한 부분으로, 내용은 어느 정도 맞다. 중간중간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리고 Q는 1800년대 초반에 등장한 것으로 20세기가 아닌 '19세기'다. 더구나 양식비평이 아니고 '자료비평'이다. 



이렇게 역사가 흐르면서 소위 Q문서와 관련하여 가설이 정설로 변했다. 우스운 말이지만 가설도 자꾸 연구하다보면 정설이 되는 것 같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학문의 오류일 수도 있다.


->여기부터 헛소리가 시작된다. 수많은 가설들이 연구되다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다른 것들보다 월등히 설명할 수 있을 때 정설이라 표현되고 증거들이 뒷받침 된다면 이론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설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시작한다. 사전을 1회라도 찾아봤을까?



그러면 Q문서 이론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있을까? 놀랍게도 Q문서를 주제로 삼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이에 대한 문제점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를 감춘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닐 성 싶다. 학자들이 구태여 숨겨두고 싶어 하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들추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Q문서와 관련된 역사적인 문제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역사상에 Q문서는 없었다는 것이다. 만일에 Q문서가 존재했다면 두 가지 현상이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과 마찬가지로 이런 어록 수집을 전승하는 사본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본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하나는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다른 복음서들을 언급하는 것처럼 이런 어록 수집을 언급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언급 역시 전무하다. 사본의 부재와 교부들의 침묵은 Q문서란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Q자료 설을 지지하는 어떤 학자의 솔직한 고백을 따르자면, Q란 단지 학자들의 합의(a scholarly convention)에 지나지 않는다.


->‘교부들의 언급이 없고, 사본이 없으므로 없었다’ 는 주장은 Q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나타낸다. Q 공동체는 갈릴래아 촌동네에서 유대-그리스도인 들이 만든 것으로 압도적 증거들로 추정되고 있다. 그곳에 교부언급이니 사본필사니 하는 주장은 그저 헛소리다. 그런 언급이 가능했던 이유는 로마 제국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그것을 필사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10%가 채 안되지만, 그마저도 모였다는 도시에서 진행된 일이다. 그러나 Q공동체는 속국의 촌동네로 자기네 사용어인 아람어도 겨우 말하던 곳이다. 그 공동체는 묻혔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자가 교수고 신학대학원의 총장이니까, 저자 스스로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 했기에 본인(전투적무신론)이 이렇게 반박할 수 있는 것이지, 어디 아프리카 시골에 5명 출석하는 교회 목사가 입으로 주장했다면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더구나 Q문서의 시대는 2세기부터 시작된 교부시대가 아니라 1세기 사도시대 이다. Q문서는 최소 50~60년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사도들이 다 살아있을 시점이다. 교부의 언급은 당연히 없다. 왜냐? 사도시대니까. ‘강력한 증거’ ‘학자’ 운운 하면서 무슨 시대인지도 판단을 못하고 있다.



둘째로 Q문서와 관련된 내용적인 문제점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담고 있는 어록집이다. 사실상 학자들은 Q문서에 세례자 요한의 말도 일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마 3:7-12/눅 3:7-9,16-17). 따라서 Q문서에는 치병이나 이적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이 언급되지 않는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록만을 담고 있는 도마복음을 중요한 예로 제시한다. Q문서는 도마복음을 닮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간단히 말해서 시대착오적이며 탈선적이다. 왜냐하면 도마복음은 후기문서인데다가 초대교회에 의하여 이단시된 문서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을 빼먹은 채 어록만으로 복음서를 작성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후에 이단들이나 하는 행위였다.


->Q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씨부린 헛소리다. Q에 세례자 요한에 관한 부분은 분명 들어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독일어 Quelle ‘원천, 근원’ 이라 부르고 그것이 복음서에서 분리해낸 것이기에 대부분이 예수의 어록이니까 우리는 그냥 ‘예수 어록’ 이라 부르는 것을 교수는 심히 착각하고 있다. ‘Q=예수어록’ 이 아니고, ‘Q≒예수어록’ 이다. 허나 이 교수는 ‘어록이 아닌 부분이 나왔으니 거짓’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 본인이 제안하건대 ‘정경복음서 이전의 예수연관문서’ 라는 표현으로 Q를 대신한다면 아마 입도 뻥긋 못할 것이다. 이 교수는 Q가 무슨 뜻인지 서론에 직접 제시해 놓고, Q는 어록이라고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이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첫째는 단어의 뜻을 잘못 외웠던지, 둘째는 서론을 베껴왔던지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나는 후자에 걸겠다.


더구나, Q에는 예수의 기적이 2개나 나온다. 구체적으로 '로마 백인대장의 종을 말만으로 고친 기적이야기'와, '귀신을 내쫒은 것을 보고 예수를 바알세불과 한편으로 몰아간 기적이야기'로 2개씩이나 나오는데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헛소리다. Q를 1회도 정독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뭔지도 모르면서 없다고 주장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도마복음을 중요한 예로 제시하는 것은 맞지만, 후기문서니 이단문서니 언급은 그냥 웃길 뿐이다. 초대교회에 ‘정통’은 없다. 문자주의도 영지주의도, 마르키온파도 에비온파도, 그 누구도 정통도 이단도 아니었으며, 최초의 정경목록을 짠 사람은 원-정통 기독교(proto-orthodox christianity)가 후대에 주류집단이 되어 이단으로 정죄한 마르키온파이다.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마르키온의 정경목록을 늘려서 신약성경 만들어 놓고는 현대에 들어서 마르키온의 판단이 더 정확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는 시점에 그냥 헛소리다. 마르키온은 누가복음+바울서신으로 정경을 짰고, 바울 목회서신 3개와 공동서신은 물론이고 계시록과 다른 복음서 까지도 비정경이라 주장한 인물이다. 그의 판단은 적중하여 현대신학에서 목회서신은 물론 공동서신 까지도 의심할 바 없는 차명서신으로 분류된다. (마르키온이 목회서신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목회서신이 만들어지기 이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게 여겨지기도 한다. 2세기의 인물이 목회서신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바울이 살아있는 동안 쓰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나저러나 위경이다.) 


도마복음의 최초 원본은 1세기 중반~2세기 초 쯤에 생성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며(교부들의 언급을 포함한 최종 결론), 지금 남아있는 사본은 2~3세기의 것이다. 몇몇 보수주의 학자들이 2세기 후반이라는 둥 헛소리를 떨지만, 지금 남아있는 사본이 원본이라고 백번 양보해 가정해도 2세기 중반을 못넘어간다. 어쨌든 그때까지도 이 문서는 살아남아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로 이단이었기에 작성조차 허용하지 않고 탄압했다는 주장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더구나 정경인 베드로후서보다 앞선 시대거나 동시대에 지어졌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아주 우스꽝스러운 주장이다. 로마에서 종교로 인정받고 후에 국교로 인정되자 정통이 된 주류가 이단이라 명명한 집단을 일방적으로 탄압하고 그들의 문서를 불태운 사례는 있다.



게다가 Q문서의 내용적인 문제점에서 결정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수난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 빠진 것은 물론이고 수난을 예고하는 말씀도 없다. 최근에 이런 점에 착상하여 기독교를 수난 없는 기독교로 다시 정의하겠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말하지 않는 것은 복음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초대교회의 복음규칙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말하지 않는 Q문서는 존재했다고 볼 수 없고, 이에 근거하여 수난 없는 기독교를 제시하겠다는 시도는 역사상의 어떤 이단보다도 못한 시도이다. 심지어 아주 치명적인 이단들 가운데 수난을 재해석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수난을 생략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예수의 수난이 없으면 복음이 아니며 정통이 아니라는 주장은, 근본주의 변증론을 맛만 본 변론이다. 재정의니, 복음규칙이니, 이단이니 하는 소리로 보아 반박 가치 없다. 그래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쓰자면, Q문서에 수난이 없는 이유는 50년대에 지어 졌다고 여겨지는 이 문서의 공동체가 ‘목격자들과 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들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니까. 수난 내용은 예수가 살던 갈릴래아의 40~50년대에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쓸 필요가 없지만, 예수의 행적과 말은 한 세대가 지나 없어져 가고 있으니까. '갈릴래아 촌동네의 (예수를 직접 경험했거나 들은) 사람들이 모였던 50년대의 유대교 나자렛 메시아파' 가 이 공동체다. 



Q문서의 내용적인 문제점과 관련하여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학자들이 정리해놓은 Q문서의 구절목록이 그 존재에 의심을 품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Q문서에는 묶음으로 나타나는 구절들도 있지만, 한 두 절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구절도 있다. 예를 들면 마 15:14/눅 6:39, 마 13:16f./눅 10:23f., 마 17:20/눅 17:5f., 마 19:28/눅 22:28-30 같은 구절들이다. 이 구절들을 살펴보면 속담이나 격언처럼 너무나 유명한 단문들이기 때문에 이런 정도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암송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얼른 알아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신 순간부터 사람들이 바로 암송하여 구전으로 널리 회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볼 때 이 구절들이 반드시 Q문서와 같은 어떤 문서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큰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유명한 짧은 구절에 기초가 되는 Q문서가 있었다고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구전이 뭔지, 속담이 뭔지, 격언이 뭔지에 대한 단어 정의도 모르는 듯 보이며, 전승과정은 어떠한지에 대한 생각을 단 1회도 해보지 않은 말이다. 즉 아무 의미가 없는 허공에 짖는 소리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한 구절들을 일일이 살펴본 결과 내 생각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는 우리속담 마저도 이해를 못했을 것이다. 내가 역질문 할 수 있는 부분은 "단문은 Q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묶음은 Q라고 주장 하는거요, 아닌거요?" 이다.



이와 더불어 Q문서의 문제점에 부수적인 것을 한 가지 첨가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소위 Q문서를 재구성하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어려움은 두 복음서에 공통적인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생각처럼 자구마다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Q문서를 사용하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왜 차이가 생겼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쓴다. Q문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간단히 해결될 것을.


->저자의 정신승리가 돋보인다. ‘아니라 말하면 될 것을’ 은 ‘믿음이라 말하면 될 것을’ 하는 투의 말이다. 전형적인 개신교(혹자는 개독이라 부르는)스러운 답이다. '그냥 아니라 부인하면 돼'. 그럼 내가 이 교수에게 역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은, "Q가 아닌, 또 다른 '공관복음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시오" 이다. 아마 무슨 대답을 할지 기대된다. 예상 답변은 '믿음' 이 아닐까?



정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학자들이 재구성한 Q문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연속적인 흐름(a continuous narrative)으로 담고 있지 않다. 이 현상을 바꾸어 말하자면 Q문서의 기록자는 아무런 논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수집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묻고 싶은 질문은 과연 초대교회에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누가 감히 그런 일을 시도했을까, 그런 시도가 초대교회에서 용인되었을까, 그런 시도에서 나온 문서를 과연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 기꺼이 사용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허망한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복원한 Q문서를 단 ‘1회’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논리도 없고, 뭐가 들어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게 있었다고 하는게 초대교회에서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하는 말은 교수인 저자가 스스로 ‘나는 모르오’ 하고 말하는 꼴이다.



*전투적무신론의 총평 : Q문서에 대해 언급하고 반박하려 하지만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알맹이 없는 주장이다. Q문서를 단 ‘1회’도 정독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실천신학 따위의 허접한 학문으로 박사학위 받은 사람이 이런 주장을 했다면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신약학으로 독일까지 가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예비 목사들에게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너무 어이가 없다. 독일에서 나온 Q문서설(Quelle 는 독일어다)을 독일에서 배우지 않았다는 것인가?


원본글 : http://gensdei.org/zboard/view.php?id=poem&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5

이 글을 2600명 이상이 읽었으며, 다른 홈페이지에서도 복사해가고, 소식지에 실렸었다는 것도 정말 어이가 없다. 

크리스천이 못하는 메시아론 변증 - 다윗의 후손

종교경전/신약성경 2013. 6. 30. 23:48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아(히브리어:메시아, 그리스어:크리스토스) 왕이 되었고, 그에 대한 전설 등으로 인해 다윗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나온다는 성경구절을 제시하면서, 다윗이 태어난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나기 까지 한다고 써있다.


쉽게 말해, 메시아의 조건에 '다윗의 후손'은 필수이다. 그리고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었다고 주장되었다.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 불린 사실은 공관복음서+사도행전 이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유주의와 무신론 까지 인정하는 바울 친서 '로마서 1:3' 에서도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라 주장되고 있다. 심지어 메시아론 변증과 아무 상관없는 요한복음 조차도 이를 알고 있었다. 예수 스스로 '나는 다윗의 후손이다'며 명백히 하진 않았지만, 복음서 저자들과 군중들은 예수를 다윗의 후손이라 칭했다.


유대교에서는 부계혈통상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오는 것도 맞고,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라 칭함 받은 것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서에서 다윗의 후손이라 적힌 부계혈통의 증거를 들이민 것도 다 인정한다. 문제는 마태와 누가에 의하면, 예수는 처녀잉태로 태어났으므로 아버지가 없다.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은 예수 탄생에 아무것도 기여한 것이 없으니 그 족보의 근거는 무시된다. 요셉이 다윗의 후손임이 틀림이 없더라도, 예수를 낳도록 한 것은 요셉이 아니므로(마리아와 성령이다), 따라서 예수가 다윗의 후손임은 아직 입증되지 못했다.


더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그리고 마태와 누가의 족보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태복음 족보는 양아버지 요셉의 족보이고, 누가복음 족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족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었으나, 유대교는 물론이고 그리스도교에서도 엄청난 비판을 불러왔다. 당시 유대교는 여자는 물건과 동일시 되었던 시절이라 모계혈통은 싹 무시되었기에 근거로 쓸 수 없고, 그리스도교에서는 누가가 부계혈통 다윗의 후손을 변증한 것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마태는 요셉의 족보에서 일부러 누락시켜 14대를 맞춰 썼고, 누가는 그냥 길게 썼다. 두 복음서 작가의 족보의 근거는 달랐다.


더구나 마리아는 레위지파일 가능성도 있다.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과 그의 남편 스갸랴와 그의 아들 세례자 요한은 레위지파다. 하지만 마리아가 어디지파 출신인지 자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설일 뿐이다. 친척이라는 단어로 몇 촌 관계냐를 따진다면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기 때문에, 마리아는 유다지파일 가능성 역시 존재하며 그것이 맞다고 여겨지더라도 여자의 족보는 근거로 쓰일 수 없다. 그것을 가지고 마리아 족보네 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못하고, 그 근본을 모르니까 떠드는 헛소리다. (이 마리아 족보라는 잘못된 해석이, 설명하는데 편하고 믿는데 편하니까 너도나도 이유는 모른채 설명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있다)


두 족보에서 다른 점을 살펴봐야 할 부분은 다윗의 친아들(마태-솔로몬, 누가-나단),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의 아버지(즉, 예수의 친 할아버지. 마태-마탄, 누가-엘리) 부분 뿐이다. 이는 두 족보는 같은 자료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며, 누구 한명의 잘못도 아니다. 이것을 가지고 마리아 족보설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요셉이 마리아의 아버지(예수의 외할아버지)에게 혈통을 잇도록 족보를 이었네 어쩌네 하는 주장을 펼쳤었다.


족보에 관한 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역시 셀 수 없는 가정을 토대로 경우의 수를 나열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 헛된 주장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두 족보의 이야기는 '부계혈통상 다윗의 후손' 이라는 메시아의 조건을 변증하기 위한 자료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태복음서의 아브라함-다윗-(요셉)-예수 로 이어지는 족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유다지파 다윗 왕의 후손인 예수는 메시아 라고 변증하기 위한 족보이고,

누가복음서의 아담-아브라함-다윗-(요셉)-예수 로 이어지는 족보는, 신의 첫 작품 아담의 후손이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유다지파 다윗 왕의 후손인 예수는 메시아라고 변증하기 위한 족보이다.


복음서의 족보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 전부다.

허나, 공교롭게도 유대교로 부터 비판을 받는 '친아버지가 없다'는 부분에서, 마태와 누가 만이 족보를 전했고, 이 두 복음서만이 처녀잉태를 전한다.


마가복음은 마태,누가복음 보다 먼저 지어졌는데, 마가복음은 예수의 족보는 없지만, 거지가 소리치는 부분(마가10:47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마가복음만 있었다면 유대교에서 족보의 유무논쟁만 불러일으켰겠지만, 마태와 누가복음이 족보를 실으면서 처녀잉태를 동시에 실었기 때문에 변증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를 마치 다윗의 후손이 아무 것도 아닌 양, 예수는 신이며 삼위일체 라며 아는체 하는 소리는 그냥 무시하면 되겠다.

예수가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족보를 실을 필요가 전혀 없으며, 다윗의 후손 여부도 아무 상관이 없다.

요한계시록이 예수의 계시가 아닌 이유와 대안

종교경전/고등비평 2013. 5. 1. 04:15

<요한계시록이 예수의 계시가 아닌 이유와 대안>

1)요한계시록에 예수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한다(1:8,21:6,22:13)

알파와 오메가란 그리스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를 말하는데, 그 뒷 구절에 설명되었듯,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리스어를 할 줄 몰랐다. 예수는 아람어 사용자이며, 그리스어를 설령 알았다고 한들 계시를 그리스어로 주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계시를 받는 사람이 사도 요한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2)요한계시록의 저자를 흔히 사도 요한이라 이야기 한다
이는 1:1도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이다. 1:1에는 '종 요한'이라고 했지 자신이 사도라는 단어조차 없다.

요한계시록을 사도 요한이 썼다고 치더라도, 그는 100세 가까이 살았다는 이야기 인데, 이는 신빙성이 없다. 조선시대 왕이나 산해진미 먹어도 평균 46세 면 죽었는데 그보다 1300~1800년 앞선 요한이 100세 까지 살았다? 고려시대에도 왕의 평균 수명이 42세.
요한보다 200년 전 사람인 중국의 진 시황제도 안 죽으려고 발악을 했는데 49세에 죽었다. 예수와 사도 요한이 살았던 시대 ±100년 정도의 로마 '황제'가 암살을 빼고 최장수해봤자 70대.

즉,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지은 것이 아니라 어느 '요한'이 지은 것이며, 요한이란 이름은 철수와 영희같은 이름이다. 신약성경에 세례자 요한, 요한 마가(마가복음의 저자라고 불린 사람), 사도 요한, 베드로의 아버지 요한만 해도 4명이며, 야고보도 4명이다. (번외 이야기지만 예수라는 이름은 원래는 여호수아,예수아,예슈아 이며 구약성경에 널렸다.)

사도 요한이 AD 100년 정도까지 살았다는 전설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 교부는, 소문이나 몇 번 건너 듣는 이야기를 엄청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사실은 알고 제시하는 것인가? 더구나 요한은 흔한 이름이었으므로(당시에는 성이 없었기에 이름이 다 똑같았다) 헷갈렸을 가능성이 훨씬 많다.

설령 사도 요한이라 치자. 사도 요한은 시골촌뜨기 어부였으며 아람어 사용자였다. 예수가 사도 요한에게 들려준 말은 아람어 였을 것이지 그리스어로 들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요한이든 베드로든 예수든 촌놈들이라고 불렸다(복음서의 내용).

3)계시록의 언어 문제
계시록에서 요한이 말하는 부분과, 예수가 말하는 부분이 아람어라면, 24장로가 야훼에게 말하는 말은 어떤 언어이며, 천사가 외치는 말은 어떤 언어인가?

환상속에서 예수가 요한에게 직접 다 적으라면서, 심지어 요한은 계시록 맨 마지막에 여기서 단어 하나라도 더하거나 빼면 저주를 받을 거라고 필사자에게 협박까지 하는데,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으므로 모두 그리스어로 말했을 것이다. 예수가 아람어로 말했는데 요한이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적었다면 일단 1차 왜곡이 있었으므로 계시에 오류가 생긴다. 그러므로 모두 그리스어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사상 모순이다.

24장로는 원래 없는 존재이고 천사는 (예수시대-신약성경-에는 아람어, 그 전 시대-구약성경-에는 히브리어)를 썼을 것이며-사실 천사의 언어가 변한 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만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까지 그리스어를 쓸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당시 여자는 물건 취급 당했으며, 글을 배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아마도 아람어를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사는 아람어로 이야기 해야지만 마리아에게 잉태를 전할 수 있었다. 한편 그 잉태 이야기를 쓴 누가복음은 그리스어로 쓰였다.

마태복음에서 요셉에게 말한 천사 역시 아람어로 말했을 것이며, 요셉은 목수(일용직 막노동꾼)였으므로 자기네 말도 잘 몰랐을 것이다. 역시 그 이야기를 쓴 마태복음은 그리스어로 쓰였다.

더 나아가 구약성경에서 천사가 성경의 인물들에게 말하는 구절 역시 전부 히브리어로 적혔으므로, 히브리어로 말했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언어는 변할 수도 있지.."라는 주장은 요한계시록이 작성된 이후의 모든 계시는 -예수의 계시니 마리아의 계시니 자신들의 언어로 계시를 받았다는 내용을- 전부 계시로 인정해야 한다. 그건 정경이 아니지 않냐 할지 모르는데, 예수가 AD 100년 경에만 계시를 한번 주고 약 300년 지나 정경 확정된 이후 계시를 주지 않았다는 주장을 감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의 뜻을 인간이 어찌 안다고 계시를 부정하나?

AD 100~400년 사이의 계시는 다 가짜이며, 그 이후의 계시도 다 가짜라면 요한계시록도 가짜라고 주장되는 것은 당연한 순리 아닌가?

4)예수는 영으로 요한과 말하고 있다
예수는 영으로 등장한 적이 없으며, 부활 후 사도들에게 육체를 가지고 나타났다. '육신의 부활', 만약 이것이 거짓이라면 예수교는 무너진다. (그래서 신약성경 거의 모든 권이 부활에 대해 다루고 있다.)

더구나 예수 자신이 영으로 오겠다고 한 적이 없다. 부활 후 영으로 부활한다는 이야기도 한적이 없다. 사두개인들과의 부활여부 논쟁(공관복음서 모두)에 있어서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표현은 천사 처럼 영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천사 처럼 성욕도 없어서 자식을 키울 부부관계는 필요없으며, 다시 죽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천사처럼 질병과 고통 또한 없다. 이것이 메시아의 사명이다.

"사도 바울이 영으로 된 예수를 보지 않았는가?"라고 주장할 지 모르나, 그것은 사도행전 딱 1군데 에서만 나타나는 기록일 뿐이며, 심지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직접 쓴 편지에서 예수를 어떤 에피소드로 어떠하게 만났다는 단어 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개신교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유일하게 직접적인 저자로 인정받고 혼자서 여러권을 쓴데다, 철저한 검증에서도 7권이나 살아남은 사도 바울이 나는 예수를 이러이러하게 봤다고 이야기 한 적이 없다. 사도행전을 제일 빨리 잡은 연도가 바울편지(AD 50년대 초반)보다 최소 30~40년 후의 작품이다. 즉, 본인도 말하지 않은 사실을 다른 사람이 주장하고 있는 꼴.

예수의 육신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교는 존재 이유가 없으므로, 서양에서는 '예수는 정말로 죽고 부활하였는가?' 라는 주제로 1:1 맞짱토론이 심심찮게 벌어지며 무신론이고 이슬람교고 물불 가리지 않는다. 이 부분에 있어서 예수교 철학자이자 변증론자 윌리엄 크레이그는 이 주제 하나만 가지고 여러번 토론해대고 부활이 진짜라고 주장했다. 그 크레이그는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와 토론을 못해 안달병이 났을 정도로 부활에 목숨 걸고 있다. 왜? 부활이 거짓이면 예수교는 가짜니까. 그래서 변증론자들은 이슬람교와도 토론에 나선다. 이슬람교는 예수가 직접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고 믿지 않으니까. 예수는 알라가 천국으로 보내주고 예수 인것처럼 감쪽같이 속인 배신자 유다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주장하니까.

5)요한계시록이 비정경이라고 비판받은 적이 있다.
무신론자들의 비판이 아니라 초대 교회에서부터 정통이라 불리는 집단에서조차 이것은 예수의 계시가 아니라며 정경이 아니라 했을 뿐더러, 정경을 확정지은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 까지도 이것은 정경이 아니라며 치고박고 싸웠다.

결국 당시 교회(지금의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밀고나가서 정경이 되었으나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다시 부정되었다.

정작 요한계시록을 정경이라고 밀어붙인 원조 집단은 계시로 보지 않고 묵시문학작품으로 보는 반면, 원조의 이단격인 개신교가(대부분 근본주의) 진짜 계시라며 일일이 구절과 단어를 쓰인 이후의 사건들에 맞추어 해석하려 들고 있다.

정통이 된 집단이 이단 정죄한 소위 '초대 교회 이단들' 또한 요한계시록은 정경 축에도 끼워주지 않았다. 번외 이야기지만, 사도의 저작이라 주장되었던 베드로,야고보,히브리 서신 등은 물론이고 바울 목회서신(디모데전서,후서,디도서)도 정경에 끼워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이단들'의 주장은 1800년 후 적중하여 바울 목회서신은 물론 베드로 서신도 의심할 바 없는 차명서신으로 분류된다.

6)요한계시록이 정경이 되었다면, 베드로계시록도 정경이 되었어야 한다

계시록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베드로계시록도 만만치 않은 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에 비해 분량은 작지만 그리 작성연대가 차이나지도 않을 뿐더러 초대 교회는 이것도 사도가 쓴 계시록으로 읽었다. 베드로계시록도 예수가 말하고 있다. 그래서 두 계시록은 둘 다 정경이라고 주장되거나, 둘 다 비정경이라고 주장되었지, 어느 한 쪽 만이 정경이라 하지 않았다.

7)예수는 열매를 강조했다.(공관복음서 모두)
예수와 바울 역시 종말론자였다. 하지만 예수의 종말론과 바울의 종말론으로 나쁜 열매를 맺은 것에 비해, 특히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은 열매가 좋지 못하다. 요한계시록 만큼은 쓰인 직후부터 종교 사기가 1900년 동안 벌어졌다. 요한계시록으로 종말이 언제라고 주장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 종말론으로 사람들의 모든 재산과 인생을 헌납하게 한 사례는 셀 수 없다. 이는 나쁜 열매이다. 분명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예수와 바울의 종말론인데, 듣도 보도 못한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이 더 진짜인 양 행세를 하고 있으며 이는 거짓이다.

만약 요한계시록이 빠진 26권이 신약성경이었다면 예수와 바울의 종말론에 의해 '언젠간 오겠지, 내가 죽기 전에 오겠지' 정도의 무한한 기다림만 있었을 것이지, 언제 무슨 일이 있고를 정확하게 찝어내진 못했을 것이다.

8)예수의 말이 복음서와 달라졌다(1)-예수는 자신이 계시를 나중에 준다는 얘기를 한적이 없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라 하면서 나올 것이며 거짓 예언자들이 설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인자가 올때에 이러이러 할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갑작스러운 재림을 주장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예수 사후 최소 60년 후에 등장하면서 은밀하게 섬에서 유배받고 있던 요한 한명에게 슬쩍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예수의 뜻인가? 복음서보다 계시록이 우선인가? 복음서는 육체를 가진 예수가 땅에서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계시록은 환상 속에서 영인 예수가 한명에게 이야기 하고 보여주고 있다. 다시 한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9)예수의 말이 복음서와 달라졌다(2)
2:20에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는데 이것은 죄라고 표현된다. 이는 예수의 뜻과도, 바울의 뜻과도 어긋나는 가르침이다. 예수도 바울도 음식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 구절은 비유니 어쩌니 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왜냐하면 근처의 말은 과거의 사람에 빗댄 비유이지만 이 말은 비유가 아니다.

이사벨로 비유한 이유는, 이사벨이 이스라엘에게 섬기게한 이방신 바알과 대결해 승리한 전설적인 예언자, 신약성경에서도 두 명(세례자 요한,예수)이나 그 사람이라고 칭함 받은 사람, 불수레 타고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예언자의 대표 엘리야다.

그런 이사벨 같은놈이 지금 두아디라 교회에 있는데,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신자들과 같이 먹고 있으니 그 제물 같이 먹는 사람 가만 안둔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예배에 먹지? 하는 생각을 가지겠으나, 초대 교회에서는 예배 자체가 그냥 식사에 가까웠다. 빵과 포도주를 메인으로 한. 가톨릭에서 매주 하는 조그만 면병 주는게 성만찬이 아니었다. 개신교에서 몇달에 한번 하는 떡이나 빵 조각에 포도즙(주?) 한 스푼에 가까운 양의 컵으로 하는 성찬은 더더욱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다 같이 식탁 차려놓고 빵 쌓아두고, 포도주를 박스채로 갖다 놓고 예수의 몸과 피를 생각하며 먹고 마신거였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못 먹은 사람을 위해 좀 기다리면서 배고프면 식사 미리 하고 오라는 둥 이야기 하고 있다.

10)예수의 말이 복음서와 달라졌다(3)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고, 이웃은 물론이고 원수도 사랑하면서, 사도 요한이 벌을 주자고 제안했을 때 사도를 꾸짖은 예수가 계시록에 와서는 교회에 심판을 내려 죽이겠다고 무자비하게 폭력적으로 변한다. 요한계시록이 '예수가 사도 요한에게 준 계시'라면서 사도 요한에게 육체로 있을 떄와 영으로 보여줬을 때의 말이 다르다? 이는 사도 요한이 쓰지 않았다는 증거 이기도 하다.

요한계시록이 정경된 이유는 '사도'의 글이라는 것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그것이 정경의 기준이니까), 사도의 글이 아니거나 사칭한 것이라면 정경목록에서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그리스도교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어떠한 대안이 있는가?>

1)진짜 계시가 아닌 묵시문학적 작품으로 바라 본다면 문제는 일단락 지어진다.
이미 AD 397년에 정경 된 상황에 현대 신학에 맞추어 비정경으로 요한계시록 1권이라도 들어냈다간 나머지 26권 중에서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절반 이상 들어내야 한다.

묵시문학적 작품이라면 그것이 사도 요한이 썼네 안썼네, 실제 일이 벌어지네 아니네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지고, 당시의 상황, 즉 '그 만큼 힘든 이 시기에 지금의 박해를 참고 견디면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 는 주제만 남게 되므로 그리스도교는 유지될 수 있다.

2)묵시문학적 작품으로 바라보아 요한계시록이 진짜 종말묘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종말론에는 변함이 없다
설령 또 다른 종교 개혁이 일어나 요한계시록을 들어낸다 하더라도 예수와 바울의 종말론에는 변함 없으며, 교회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종교 개혁 당시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들어내려고 시도 했던 것이다.

루터회의 창시자, 종교개혁자의 대표 마르틴 루터는 "사도의 것도 아니고, 예언도 아니고, 지킬 것도 없고, 무슨 말 하려는지도 모르겠고.." 라는 평을 했다. 루터의 생각은 현대신학에 들어 적중했다.

3)묵시문학적 작품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유대교에서는 이미 1900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다니엘서를 예언서에 분류해 놓고 예언인 양 끼워 맞추려는 노력을 했으나(주로 근본주의 개신교), AD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확정되고 지금까지도 다니엘서는 '성문서', 잠언이나 시편 같은 문학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유대교가 무너졌는가? 지금까지도 유대교는 살아남았다.

구약경전의 소유자인 유대교에서 조차 다니엘서가 예언이 아니며 문학작품이고, BC 500년대에 지어진게 아니며 BC 100년대에 지어진 것이라 이야기하는데, 근본주의 개신교에서 진짜 다니엘이 BC 500년 대에 지은 것이며 예언서라고 우기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예수의 계시가 아님을 10가지로 증명했고, 그 대안으로 묵시문학적 작품으로 바라보아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3가지로 보였다.
이는 본인 전투적무신론의 생각이지 어느 책에 나온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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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2장 18~19절(공동번역)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말해 둡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벌하실 때에 이 책에 기록된 재난도 덧붙여서 주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떼어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의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하느님께서 떼어버리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 책에 뭔가를 더하거나 빼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는 글귀'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는 누군가가 더한 구절이 있다.


요한계시록 16장 14~16절(공동번역)
14절 : 그것들은 악마들의 영으로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자들이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을 위해서 온 세계의 왕들을 모으려고 나간 자들입니다.
15절 : 그 때에 "잘 들어라. 내가 도둑같이 오겠다. 벌거벗고 다니는 부끄러운 꼴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리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6절 : 그 세 악령은 히브리 말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14절과 16절은 연결되는 부분이고 15절은 전혀 엉뚱한 내용이다. 15절을 삭제하고 읽으면 더욱 문맥에 맞는다.

요한계시록이 무오하며 정말 예수의 계시라는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고한다.

'이미 요한계시록은 수정/첨가/삭제가 이루어졌으며, 예수의 계시가 절대 아니다'

고대필사오류1, 예수에 의하면 형제는 몇번 용서해야하는가?

종교경전/본문비평 2013. 4. 17. 00:50

마태(마태오)복음 18장 22절

21절 : (공동번역)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22절 : (번역에 상관없이)예수는 몇번이고 상관없이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이다. 


이 구절을 몇 회인지 세어 율법화 시켜 78회 부터, 491회 부터는 정죄해도 된다고 이해하는 놈은 미친놈이다.

그러나 몇 회인지에 대해 번역본 별로 다르다.



70 X 7 = 490회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개역한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새번역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현대인의성경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곱 번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KJV        Jesus saith unto him, I say not unto thee, Until seven times: but, Until seventy times seven.

NKJV Jesus said to him, “I do not say to you, up to seven times, but up to seventy times seven.

DRA Jesus saith to him: I say not to thee, till seven times; but till seventy times seven times.

NASB Jesus said to him, “I do not say to you, up to seven times, but up to seventy times seven.



77회

천주교성경(2005)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NIV        Jesus answered, "I tell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NRSV Jesus said to him, ‘Not seven times, but, I tell you, seventy-seven times.

Catholic NJB  Jesus answered, 'Not seven, I tell you, but seventy-seven times.


*천주교 성경(2005)은 77회에 주석을 달기를 490회라 적힌 것도 있다고 적었다.



77회가 타당하다

-> 창세기 4:24에서도 7회와 77회를 동시 언급하고 있다.


490회가 타당하다

-> 7 x 70은(7은 완전수, 70은 온세상 민족 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로 갈려있다. 


누군가가 이해를 잘못해서 다르게 적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필사하는데 힘들었던 어느 사람이 헷갈려서 잘못 적었을 수도 있다.

개신교 성경의 역사 - 공동번역성서(개신교의 유일한 노력)

종교경전/번역성경 2013. 4. 11. 03:14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공동번역성서(1977)


개신교에서 고유명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천주교와 함께한 공동번역성서가 최초이자 마지막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개신교측 번역자는 문익환 목사인데, 이분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죠. 민주화 운동하다 투옥되신. 


공동번역성서는 그동안 사용했던 성경과는 완전히 다른 버전(구약은 히브리어 BHK, 신약은 그리스어 GNT, 제2경전(외경) LXX(Septuaginta))으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고유명사를 원래 발음과 비슷하게 하자고 합의하였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기로 하였으며, 몇몇 한글 고유명사는 통일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어 Paul의 경우, 그리스어는 파울로스인데,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바울로 라고 합의합니다.

개신교의 하나님과 천주교의 천주님 둘다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고 표준어에 맞는 하느님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개신교의 여호와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야훼로 고쳤고요.

따옴표와 쉼표와 물음표 등을 사용하기도 했고요. (1911부터 시작되어 제일 나중에 나왔다는 개역개정판(1998)조차 따옴표와 쉼표와 물음표가 없습니다.)


그렇게 공동번역성서가 나오고 나서는 천주교의 공식 성서가 되었고, 정교회와 성공회 등에서도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신교인데, 개신교의 소수종파만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고 다수는 반대를 하였습니다.

이유는 어처구니 없게도 '너무 읽기 쉽다' '성경의 경전성이 떨어진다' '하나님이란 단어를 포기할 수 없다' 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지금 들어도 웃음만 나올 뿐이죠. 성경도 모르는 것들이.


수 많은 번역을 거친 영어버전을 번역해 수 많은 오역과 이해하기 난해한 구절과 이상한 고유명사를 사용한 성경이 진짜라는 투로 말하고 ,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번역한 성경은 가짜라는 투로 말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나오죠.


따옴표와 쉼표와 물음표 조차 없는 성경이 경전성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신교 거의 전부가 개역한글판 그대로 갑니다.


가장 웃긴 것은, 공동번역성서의 판권은 대한성서공회에 있었는데 대한성서공회는 개신교 단체였고, 천주교 등 에는 돈 한푼 안 줬습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전부 공동번역성서를 샀습니다.


열린 사고를 했던 문익환 목사와는 달리 기존 개신교 사람들은 전부 그 뜻에 반발하여 조선시대 이름을 100년이 넘게 가지고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