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뷰

무신론 2014. 3. 26. 23:31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뷰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1949-2011)

신은 위대하지 않다, 리딩, 논쟁, 인권 이펙트,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자비를 팔다, 키신저 재판 등의 책이 번역되어 우리에게 읽혀졌다.


히친스의 사망 후 그가 마지막으로 작성하였던 글들을 모아 출간된 책 'Mortality' 를 번역한 것이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 혹은 '자비를 팔다' 처럼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로 공격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삶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있었던 사색들을 담은 책이다. 그러므로 읽는 이에 따라서 다소 비판적인 논리나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그는 언론인이고 무신론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종교 토론도 서슴지 않고 했다. 우리는 무신론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다. 많은 종교인들이 생각하듯, 무신론자도 죽음 앞에서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 결국 신을 찾고 죽음을 맞게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 주장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 위해 그는 죽음 앞에서 글을 썼다.


그는 1장에서 설명하듯 무신론의 지조를 지키는지 아닌지를 사람들에게 테스트 당한다. 신을 믿는 종교인들은 그를 위해 기도를 해주겠다고 나서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회심을 하는지 안하는지 내기를 건다. 내 생각엔 아마도 이러한 행동은 안토니 플루(Antony Flew)의 회심(변심)에서 비롯된 듯 하다. 안토니 플루는 영국 철학자로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다가 죽기 전 신을 믿었다. 그러한 일에 무신론자들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고, 종교인들은 환영했다. 아무튼 이러한 내막 아래에서 히친스가 지조를 지키는지 아닌지는 아마도 초유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히친스는 결국 무신론의 지조를 지켰다.


2장부터 마지막 장인 8장 까지는 식도암과 폐렴 등의 병에 대해 고통스러우면서도 그 다운 담담한 어조로 그에 대해 설명하고 다소 농담섞인 말들을 타인과 주고 받았음에 대해 적고 있다.


맨 마지막은 후기로 히친스의 아내가 바라봤던 남편의 모습을 적은 것이다. 남편과의 편지 등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그리움과 남편이 '당당했음'을, 남편이 병마와 싸우는 과정을 지켜본 아내의 심정으로 글을 적은 것이다. 


히친스 다운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어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 히친스가 '병과 고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음'에 대해서는 얻을 것이 있는 책이나, 논쟁을 알고자 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역자에게 아쉬운 점이 몇가지 있다.

역자는 그의 장례에 참여했던 살만 루시디에 대해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갔다. 이미 종교와 무신론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책이나 언론을 통해 그를 접한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인지 알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냥 장례 참여자로써 넘어갈 것 같다. 살만 루시디는 '악마의 시' 라는 작품을 써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그의 목에는 현상금도 걸고, 그 작품과 관계된 사람들은 테러를 당해 부상 혹은 사망했다. 이를 적어주었다면 아마도 독자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 성서에 대한 인용은 다섯 구절 미만이지만 개역개정판을 사용한 것에 대해 나는 그렇게 좋지 못한 선택이라 본다. 나라면 공동번역으로 인용했을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마태복음) 28장 16~20절 후대 창작인가?

종교경전/신약성경 2014. 2. 18. 04:46

마태오의 복음서(마태복음) 28장 16~20절 후대 창작인가?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이 구절에 대한 주석과 설교들은 대부분이 예수는 부활하여 종말의 때까지 항상 함께 하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결국 ‘선교 열심히 합시다’ 로 귀결된다.


본문(공동번역)


-1부

16 열한 제자는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갈릴래아에 있는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거기에서 예수를 뵙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8ㄱ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부

18ㄴ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ㄱ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19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ㄱ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20ㄴ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1부

일단 16,17,18ㄱ 은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가필이다.


<16절>마태오는 사도 중에 한명인데 자신을 거기에 집어넣지 않고 3인칭 보도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의심하는 사람들’에 속했을 리는 더더욱 없다.


<17절> ‘절하였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원형 ‘προσκυνέω(프로스퀴네오)’는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15회, 마르코의 복음서 저자가 2회, 루가의 복음서(+사도행전) 저자가 7회, 요한의 복음서 저자가 7회 사용하는 단어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애용하는 단어이다. 엎드려 절한 상황도 가필했다.


<18절ㄱ>더군다나 '가까이 오셔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합성어 ‘προσέρχομαι(프로스에르코마이)’는 신약성경에서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57회, 나머지가 37회 사용하는 단어로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가 즐겨 쓰는 단어이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καὶ προσελθὼν ὁ Ἰησοῦς + αὐτῶν, αὐτοῖς)’는 마태오의 복음서 17장 7절에서 변모 사건에도 있는데, 이는 마르코 복음서에서 베낀 것이고, 루가의 복음서 저자도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베꼈다.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는 변모 사건을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베끼면서 17장 7절(예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일어나라." 하고 말씀하셨다.) 를 가필했다. 즉,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문체다.


-2부

18ㄴ~20 은 마태오의 복음서가 만들어진 시리아 교회 공동체의 전승 및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가필이다.


<18절ㄴ> 세 개의 절에 세 개의 ‘모든’ 이 등장한다. ‘모든’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19절ㄱ> 선교의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에서 모든 사람으로 진화하였다. 이는 예수의 행적, 삶,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는 15장에 나오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 대하여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베끼면서 24절(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를 가필했다. 이것을 가필한 이유는 초대교회가 이스라엘에게 메시아인 예수를 믿게 하는 것에 대하여 한계가 왔기 때문에, 선교의 대상을 이방인으로 눈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예수의 삶이 이스라엘에게만 이루어져 이방인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차마 그 이야기를 창작해 내진 못하고, 이방여자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에 가필하고 맨 마지막 부활이야기에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라는 것으로 창작 및 가필하여 정당화 하는 것이다.


<19절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는 신약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온다. 루가 공동체 및 초대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줬고, 파울로스도 마찬가지다. 초대교회 문서 디다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되어있으며 ‘주님의 기도’ 또한 마태오의 복음서에서 그대로 베껴왔다. 뿐만 아니라 기타 다른 부분들 까지도 베껴온 것이 명백하다. 이 문서는 시리아 교회에서 있던 것이므로, 이 문서보다 살짝 앞선 연대의 마태오의 복음서는 분명 시리아 교회에서 제작된 것이다. 이는 원형인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로 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시리아 교회 공동체의 창작이자 전승이다.


<20절ㄱ> <19절ㄱ>에 이어진다. 가르침은 산상설교를 필두로 하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20절ㄴ> ‘너희와 함께 있겠다(ἐγὼ μεθ ὑμῶν εἰμι)’는 LXX 하까이서 1장 13절의 후반부 ‘ἐγώ εἰμι μεθ ὑμῶν’를 베낀 것이다.


따라서, 간단히 생각하자면 1부는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가필, 2부는 시리아 교회 공동체의 창작 및 마태오의 복음서 저자의 가필이다.

1세기 이스라엘의 상황과 종교,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초대교회와 유다교

유대교 2014. 1. 30. 22:01

1세기 이스라엘의 상황과 종교,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초대교회와 유다교


*사용 용어는 대부분 공동번역을 따름.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고 이스라엘의 종교(유다교란 표현이 없다)는 하나였다.


(CE 1~30년대 초중반) 예수가 살던 1세기 전반부에는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혁명당(이 세 분파가 성전을 인정했다), 에세네파, 세례자 요한파(이 두 분파가 성전을 부패했다며 불인정했다)가 존재했다. 원래 이스라엘의 종교에는 분파는 있을지언정, 이단은 없다. 이 분파들은 각자 특색이 있었으나 공통점도 있었고 차이점도 적지 않았다. 물론 상당수 무지몽매한 평민들은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팔레스티나 지역의 갈릴래아 땅은 유다 땅보다 북쪽에 있던 사마리아 땅보다도 더 북쪽에 있는 곳이다. 즉, 갈릴래아가 북부, 사마리아가 중부, 유다가 남부이다.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예수는 태어나고 자랐다.


(CE 30년대 중후반) 식민지는 원래 수탈하라고 강제로 빼앗은 땅이지만, 특히 갈릴래아에서는 수탈이 극심했다. 먹고살기 바쁜 그 와중에 목수(번역은 목수이나 실은 석공에 가깝다. 결국 일용직 노동자)나 하던 무식한 자가 세례자 요한파에서 세례를 받고 배웠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정치범으로 사형 당한다. 배워봤자 얼마나 배웠다고 자신이 직접 토라(가르침, 율법)에 대해 떠든다. 갑자기 율법선생(랍비)이 되었다. 별거 아니던 놈이 율법에 대해 떠드니 갈릴래아 주민들은 무시하고 비웃는다. 더군다나 율법상 죄인들이나 소외된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식사를 같이 한다. 이를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 비유하자면, 양반과 여자와 노비가 같은 밥상에서 같은 음식을 같이 먹은 것이다. 파격적인 행보이다. 그러다 갈릴래아에서 더 이상 활동이 안 되니 떠돌이 설교자를 시작한다. 이곳저곳을 돌며 가르치는데 말과 행동이 파격적이다. 랍비처럼 제자들을 몰고 다니며 평민들이 주축이 된 소규모의 나자렛파를 형성했다. 예언자적 행동으로 종교와 성전과 성직자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을 가한다. 그에 화가난 지도자들은 예수가 몇 년간 활동하며 밉보인 것들을 다 트집잡아 식민지 지배국가인 로마에 고발한다. 죄목은 정치범, '국가의 왕(결국 이 국가는 하느님의 나라, 신정통치국가, 神國)'을 자처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정치범 최악의 형벌인 십자가형으로 사형당하자 나자렛파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CE 40년대~50년대 후반) 나자렛파를 이루었던 대부분의 평민들은 회당의 공적 예배와 더불어 집이 있는 사람의 집에서 예수가 했던 것처럼 같이 식사하면서 예수의 가르침을 전승했다. 이 전승모임 중 갈릴래아의 전승모임은 Q공동체라 불리는 집단으로 초기에는 예수를 직접 봤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초기 직접 목격자들이 사망해가자 Q복음서를 집필한다. 이 와중에 파울로스는 나자렛파를 박해하던 사람에서, 스스로 나자렛파에 들어가 나자렛파를 변호했다. 파울로스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도시들에 가정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가르침을 주었다. 


(CE 60년대~70년대) 그러다 파울로스는 참수형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혁명당은 독립전쟁(후에 역사가들은 제1차 유다독립전쟁이라 명명함)을 일으켜서 4년간 로마군과 전쟁을 벌였으나 실패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무너졌다. 예루살렘 성전은 곧 하느님인 야훼가 있는 곳으로 야훼와 동급으로 여겨졌다. 이스라엘의 신이 무너진 것이다. 성전의 무너짐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대 충격으로 다가왔고, 반 로마파인 에세네파와 나자렛파와 세례자 요한파가 갈망하던 세상의 종말인 '로마의 멸망과 신정국가의 회복'은 오지 않았다. 역시 반 로마파인 혁명당은 반란으로 낙인찍힌 역사에서 패배해 숙청되어 사라진다. 이에 더불어 성전이 타락했다며 사막으로 나가 생활했던 에세네파(쿰란 공동체) 역시 로마군에 의해 공격받아 사라진다. 사두가이파는 성전 제의에만 관심이 있었으므로 성전이 무너지고는 모든 것을 잃게 되어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이스라엘 밖 나자렛파에서 제2복음서(마르코 복음서)가 집필된다. 성전이 없어지고 나자 바리사이파는 회당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이것이 성전 유다교에서 랍비 유다교로의 전환이다. 


※번외 :  바리사이파가 전환시켜 이어가던 랍비 유다교는 CE 2세기에 입으로 전승되던 것들을 모아 미쉬나를 만들었고 이것이 탈무드의 토대이다.


(CE 80년대) 율법의 철저한 준수를 주장했던 바리사이파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는 나자렛파를 경멸했고 회당에서 내쫒았다. 이러는 와중에 제1복음서(마태오 복음서)와 제3복음서(루가 복음서)가 해외에서 제작되고, 가정교회에서 모이던 나자렛파는 자신들만의 교리문서(소위 파울로스 차명서신과, 공동 서신)를 쓰기 시작한다. 시리아의 나자렛파(제1복음서의 저작 장소)는 Q공동체와 세례자 요한파를 흡수하게 된다.


(CE 90년대) Q문서, 제1복음서, 제2복음서, 제3복음서 모두 그리스어로 제작되었고 그리스어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나자렛파는 그리스어 성경(LXX)을 썼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고집하면서 얌니아 회의를 연다. 나자렛파를 축출하기 위해 그들이 보는 그리스어 성경에 대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성경 목록을 짰다. 그리고 나자렛파에 대해 메시아는 오지 않았으며,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 하여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회당에서 내쫒는다. 이스라엘 종교 두 분파가 서로에게 욕설을 하며 갈라선다. 그렇게 한개의 종교는 두 분파에 의해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로 나뉘게 된다. 바리사이파는 회당 중심의 랍비 유다교를 이어가고 있었고, 회당을 떠나 가정교회에서 만찬과 예배를 하던 나자렛파는 그리스도교가 되어 자신들에게 필요한 문서들(소위 목회서신이라 불리는 것들)을 만들기 시작하고 조직화되었다. 이때 생겨난 복음서가 제4복음서(요한 복음서)이다. 나자렛파는 바리사이파와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겪으며 90년대 말,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한 요한의 묵시록이 작성된다.


이것이 1세기 이스라엘의 상황과 종교,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초대교회와 유다교의 상황이다.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의 하나이던 종교의 대부분의 분파를 없애고, 예수 한명을 보는 시각이 달랐던 두 분파는 두개의 종교로 갈라지게 된다.


요한의 묵시록(요한계시록 13장 18절, 짐승의 숫자)

종교경전/본문비평 2014. 1. 25. 13:27

요한의 묵시록(요한계시록 13장 18절, 짐승의 숫자)


(1)666

666은 많은 그리스어 사본에 ἑξακόσιοι(헥사코시오이,600) ἑξήκοντα(헥시콘타,60) ἕξ(헥스,6)라 쓰여있고, 줄여서 쓸 경우엔 χξς(600,60,6)이라 쓰고 상단에 줄을 긋습니다.


지지사본은 코덱스 시나이티쿠스(א), 코덱스 알렉산드리아누스(A), 소문자사본 2377과 다수 본문들(비잔틴본문들), P 1006 1841 1854 2053(추정)


χξς(600,60,6) 라고 줄여쓰고 줄을 위에 그은 사본들은 A P47 051 M 과 2세기 교부 이레네우스, 3세기 교부 히폴리투스 입니다.



(2)616

한편, 신약성서 사본학에서 우수한 대문자사본인 에프라임 재생사본(C)은 ἑξήκοντα(헥시콘타,60) 대신에 δεκα(데카,10)라고 되어있습니다. 


ἑξακόσιοι(헥사코시오이,600) δεκα(데카,10) ἕξ(헥스,6). 그리고 616이라 적힌 많은 사본들을 알고 있던 2세기 교부 이레니우스의 증언이 뒷받침 됩니다. 또 라틴 교부이자 요한의 묵시록을 해석한 타이코니우스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χῖς(600,10,6) 라고 줄여쓰고 줄을 위에 그은 사본은 파피루스 115입니다.



(3)665

또 한편, 11세기 소문자사본 2344는 ἕξ(헥스,6) 대신에 πεντε(판테,5)라고 되어있습니다. 

ἑξακόσιοι(헥사코시오이,600) ἑξήκοντα(헥시콘타,60) πεντε(판테,5)


두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데, 666이 네로황제 임은 알겠으나, 배우기 어려운 시대의 한계상 히브리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발음이 NRHN QSR가 아닐까 하고 게마트리아를 해보니, 665가 나오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또는 그 지역에서는 네로 황제를 NRHN QSR라고 칭했을 수도 있습니다. 두가지 모두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래 로마의 공용어는 2개(그리스어, 라틴어)이고, 2가지 방식으로 읽혔기 때문에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원본문 추정시 요한의 묵시록이 그리스어로 쓰였기 때문에 666이 원래 본문일 것으로 추정하나, 1세기 말에 쓰인 요한의 묵시록이 2세기 필사본과 번역본 부터 라틴어 지역에선 잘못 쓰였다며 616으로 고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נרהן קסר, נרו קסר, נרון קסר 의 차이이지요. 네로 카이사르와 네론 카이사르. 히브리어 '눈 nun(N)'이 있고 없고는 라틴어->히브리어 변환과, 그리스어->히브리어 변환에 'N' 이 1개 차이나기 때문에 'N'에 해당하는 '50'이 있고 없고에 따라 616에서 616+50=666 이 됩니다. 맨 마지막의 것은 네론(ㅎ발음을 넣어서) 카이사르라고 적은 것을 게마트리아 한 결과 665가 됩니다. 그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 로마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נרון קסר> NRWN QSR

200,60,100,50,6,200,50

합 666


<נרו קסר> NRW[N] QSR

200,60,100,[히브리어 Nun 생략-값 50],6,200,50

합 616


<נרהן קסר> NR(H)N QSR

200,60,100,50,(히브리어 Vau 대신 He-값 5),200,50

합 665



즉, 그리스어 사본의 숫자는 666,616,665 3가지나 됩니다. 더구나, 최소 2가지(666,616)를 만족시키는 것은 '네로 황제' 밖에 없거니와, 최대 3가지(666,616,665)를 만족시키는 것도 역시 '네로 황제' 뿐이므로 이외의 성서주석은 주석자의 권위를 막론하고 '쓰레기' 되겠습니다.




변종길 교수의 '성경 사본학의 현재와 미래'를 반박함

종교경전/본문비평 2014. 1. 21. 19:46

이 글은 '개혁신학과 교회 6(1996), pp.67-94.'에 실렸던 글이라며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예장고신, 국내3위 교파로 1위 교파인 예장합동과 합친 것과 다름없는 곳이다.) 신약학 변종길 교수가 자랑스레 올린 글이다.


변종길 교수는 

서울대학교(B.A.)

고려신학대학원(M.Div.)

화란 캄펜개혁교회신학대학원(Drs.)

화란 캄펜개혁교회신학대학원(Th.D.)


을 나왔다고 한다.

'->'와 '진한 글씨' '큰 글씨(10pt)'는 "전투적무신론"의 반론과 강조이다.

변 교수의 원문은 '작은 글씨(8pt)'로 되어있다.


※변 교수의 원 글과 나의 반론은 성서사본학(본문비평)의 지식이 없다면 읽고 이해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 점을 독자들은 감안하며 읽어야 한다.


성경 사본학의 현재와 미래 - 


사람들은 “학자”(學者)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한다. 여러 가지로 때묻고 혼탁한 세상에서 그래도 학자는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정직하게 진리를 가르쳐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비록 권세도 없고 부귀도 못 누리는 학자이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존경을 표하게 되고 그의 말은 비록 다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특별한 가치를 두고 경청하려고 애를 쓴다. 왜냐하면 학자는 그 신분상, 사회나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참된 진리를 말해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크게 실망하게 된다. 특히 우리가 믿고 신뢰했던 분들에게서 그 기대가 깨어질 때에 우리의 실망은 더욱 크게 된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 중에는 “신학자”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바로 이 신학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편견과 불공평이 있는가를 깨닫고 나면 그 실망은 참으로 클 것이며, 이 실망은 나아가서 분노로 바뀌게 될 것이다.


소위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이라 불리는 “사본학”(寫本學)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소위 “본문 비평”이라고 하는 것이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영미의 전통을 따라 “본문 비평”을 “하등 비평”(lower criticism)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은 보수주의 신학자나 자유주의 신학자나 똑같이 받아들이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학문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한국의 자유주의 진영의 신학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보수주의, 개혁주의 진영의 신학교에서도 현대 사본학자들의 이론을 아무런 비판이나 유보없이 그대로 가르쳐 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본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도대체 생각이라도 해보았던가? 또는 그런 것 외에 또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기라도 했던가? 그래서 “사본학”이라고 하면 으례히 메츠거(Bruce M. Metzger)의 책을 교과서로 삼고, 신약 원어 성경으로는 네슬레(Nestle) 판을 최고로 여기고 사용해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네슬레 26판을 가지고 있으면 마치 하나님의 말씀 원본을 소유한 양 좀 으시대던 것이 그 동안 우리 한국 신학계의 현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각성이 일어나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네슬레-알란트 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또는 현대 사본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듣지도 못한 상태로 지나고 있지만, 그래도 소수 일각에서 사본학의 현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막연하나마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그 중에는 너무 감정에 치우쳐 극단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올바른 사본학의 정립에 도리어 역작용을 불러일으키지 않나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대 사본학의 동향을 개괄적으로 훑어보면서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또한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기로 하겠다.


->개인적인 서론과 내용적인 서론. 본문비평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하는 바를 밝힌다.



I. 네슬레-알란트 판의 지배

현재 전 세계의 신약 원어 성경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네슬레-알란트(Nestle-Aland) 판”과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iceties) 판”이다. NA 판은 1979년에 26판이 나와서 범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다가 1993년에 이것을 다시 보완한 27판이 나왔다. 그리고 UBS 판은 1975년에 제 3판이 나와서 널리 사용되다가 1993년에 제 4판이 나오게 되었다. NA 판은 19세기말 이래로 전통이 있는 판이고, UBS 판은 성경 번역자들을 위하여 1966년에 처음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래서 UBS 판은 “각주”(apparatus) 안의 설명이 영어로 되어 있고 사본, 역본들의 기호가 이해하기 쉬운 장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NA 판은 기호가 많고 식별하기 어려우며 “각주” 안의 설명이 라틴어로 되어 있는 것 등,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이 두 판은 원리상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두 판의 편집진 5명이 똑같으며(NA 27판과 UBS 4판에서는 B. Aland, K. Aland, J. Karavidopoulos, C.M. Martini, B.M. Metzger), 또한 편집 원리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두 판은 각주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본문은 동일하다. 물론 이것은 그 이전 판에 이미 있었던 현상이다. 왜냐하면 UBS 3판의 수정판이 1983년에 나오면서 1979년에 나온 NA 26판을 따랐으며, UBS 4판과 NA 27판이 이 본문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문단 나눔과 구두점 정도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UBS 3/4판은 NA 26/27판과 같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NA 27판/UBS 4판은 크게 보아서 그 이전 판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현금의 NA 판이나 UBS 판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다섯 명의 현대 사본학자들인데, 이 중에서도 1994년에 작고한 쿠르트 알란트가 사실상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독일 뮌스터에 있는 「신약사본연구소」 소장을 오랫동안 맡아 오면서 네슬레 24판(1960) 이래 최근까지 희랍어 신약 편집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네슬레 26판은 사실상 알란트 판이라고 불릴 수 있으며, 그러한 경향은 27판에 와서 더욱 확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과거에 「공인 본문」(公認本文, Textus Receptus)이 누렸던 지위를 오늘날에는 알란트 판이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I. Karavidopoulos 요한네스 카라비도포울로스, 동방정교회의 테살로니키(*이른바 바울의 데살로니가 서신서가 이 도시의 가정교회에 보낸 것이다.)에 있는 대학의 교수로 NA-UBS 편집진이다. 이 사람은 시간전례(=성무일과, 성무일도)로 부터 본문비평을 하는 학자로 알란트 교수 부부나 메츠거 교수에 비해 학계 인지도가 훨씬 떨어진다. 변 교수는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위 내용 이외에는 거의 전무 하다시피 해, 이 사람을 무시한 채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다.



II. 「공인 본문」(TR)의 붕괴 과정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1516년에 에라스무스가 최초로 희랍어 신약 성경을 편집 출판한 이후로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가 새로운 신약 성경을 출판할 때까지 약 300여년 동안 구라파에서 사용된 원어 성경은 네슬레-알란트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소위 “공인 본문”(TR)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300여년간 구라파 교회가 사용한 것이며, 또한 독일의 “루터역”(1522), 영국의 “흠정역”(King James Version), 그리고 화란의 “국역”(Staten-vertaling, 1630년대) 등 수많은 번역 성경의 모체가 되었다.


->'구라파' '화란' 등의 단어를 쓰면서 뭔가 있어보이는 척 하지만, 1996년에 한국인 독자가 EuropeNetherlands를 읽을 줄 모를까봐 중국에서나 쓸법한 용어들을 쓰고 있다. 독일을 '독국'이라 하지 않음은 아마 몰라서가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공인 본문」(TR)이 붕괴하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그 당시 교회가 사용하고 있던 성경에 대한 집요한 도전이 계속되어 왔었다. 물론 그 중에는 순수한 학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도 있지만 수백 년간에 걸쳐 진행된 그 과정과 결과를 돌이켜 때, 때로는 소위 학문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해 봉사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17세기 후반에 살았던 존 밀(John Mill, 1645-1707)은 TR과 다른 3만여 개의 “상이독본”(相異讀本, variant reading)들을 모았으며, 이에 충격받은 벵겔(J.A. Bengel, 1687-1752)은 평생 동안 사본 연구에 몰두하였다. 물론 그는 경건한 학자로서 좋은 주석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본 연구의 주요 원리 몇 가지는 그 후의 학자들에게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곧 “본문의 증거력은 사본의 숫자를 셀 것이 아니라 그 비중을 달아보아야 한다”는 것과 “필사자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원리에 의해 사본을 “그룹”(계통)으로 나누게 되었으며, 두번째 원리에 의해 사본상 어떤 구절에 쉬운 독본과 어려운 독본이 있을 때에 그 중에서 어려운 독본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 두 원리는 그 후로 사본학계에서 마치 지극히 당연한 “공리”(公理)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연시되는 이 원리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벵겔. 이 학자로 인해 본문비평의 발전이 시작된다. 그 원칙의 기본 틀은 지금까지도 사용된다. 아마 변 교수는 본문비평이 '성서'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나보다. 모든 고대의 작품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본문비평이 적용된다.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면 문학 본문비평(그 안에 성서가 있다) 전체를 공격해야 할 터인데 아마 변 교수 개인의 지식으로는 모자라는 것은 당연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학파'가 몰두해도 먼지만한 흠집도 못낼 것이다.



그 후에 그리스바하(J.J. Griesbach, 1745-1812)는 사본들을 다음과 같이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곧, “알렉산드리안 그룹”과 “웨스턴 그룹”과 “비잔틴 그룹”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의 본문 선택 원리를 살펴보면 그의 사본학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이것을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생각하는데, 첫째로 “짧은 것이 더 어렵고 불확실하고 애매하고 이상할 때에는 짧은 독본이 긴 독본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긴 독본이 불확실하고 거칠고 부연 설명하고 이상하고 역설적이고 불경건하게 들리고 오류적일 경우에는 긴 독본이 짧은 독본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를 잘 살펴보면 결국 하나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사본상 서로 다른 독본들이 있을 경우, 그 가운데서 어쨌든 “더 어렵고 애매하고 이상하고 심지어는 불경건하게 들리고 오류적인 것”을 원본으로 봐야 한다는 원리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리에 의해 편집된 신약 성경이 우리 앞에 놓여진다면 그것은 매우 어색하고 문장이 잘 안 통하는 본문이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다른 비평 학자인 라흐만(K. Lachmann, 1793-1851)은 1831년에 소문자 사본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지 몇 개의 초기 대문자 사본과 고대 라틴어 역본, 그리고 벌게이트와 교부들 인용을 사용하여 희랍어 신약 성경을 편집, 출판하였다. 물론 그의 목적은 4세기에 동방 교회에서 통용되던 사본을 재구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로써 대부분의 소문자 사본과 후기 대문자 사본들이 취하고 있는 본문 형태인 “비잔틴 본문”(Byzantine text)이 제외 당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티쉔도르프(L.F.C. von Tischendorf, 1815-1872), 트레겔레스(S.P. Tregelles, 1813-1875), 알포드(H. Alford, 1810-1871) 등의 노력이 있었으나, 현대 사본학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은 1881년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동료 교수인 웨스트코트(B.F. Westcott)와 홀트(F.J.A. Hort)가 두 권의 희랍어 신약 성경(The New Testament in the Original Greek)을 출판한 사건이었다. 표면상으로는 두 사람의 공동 작품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젊었을 때에 카톨릭의 예수회 회원으로 훈련받은 바 있는 홀트가 주로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희랍어 신약 성경의 제 2권은 「서론」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서론」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본 이론을 체계적으로 진술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여태까지의 TR의 기본이 되었던 비잔틴 사본들은 가치 없는 것으로 배격되고 새로운 사본들, 곧 바티칸 사본(B)과 시내산 사본(א)을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바티칸 사본을 주로 따랐는데, 웨스트코트-홀트의 성경은 몇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바티칸 사본을 수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웨스트코트-호르트(WH 라고 줄여 표현하는게 일반적이다)의 성서본문비평 이론 중 'א,B' 이른바 중립본문의 시작이다. 현대의 성서 본문비평에서는 이 표현을 쓰지도 않으며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새로운 신약 편집판에 대해 그 당시 교회로부터 거센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차 구라파에서 그 뿌리를 내려갔다. 에버하르트 네슬레(Eberhard Nestle)는 1898년에 독일의 “뷔르템베르크 성서공회”를 통해 간편한 희랍어 신약 성경을 출판했다. 이것은 새로운 사본 연구나 이론을 가지고 편집한 것이 아니라 이미 출판되어 있던 티쉔도르프(Tischendorf) 판과 웨스트코트-홀트(Westcott-Hort) 판과 웨이마우쓰(Weymouth) 판 가운데서 다수 독본을 취하는 방식을 따랐다. 이 중 웨이마우쓰 판은 제 3판부터 봐이스(Weiss)판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면 이 네슬레 판의 성격이 어떠했겠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티쉔도르프 판은 잘 알려진 대로 그가 시내산 수도원에서 발견한 “시내산 사본”(א)을 중심으로 편집된 것이다. 그래서 이 티쉔도르프 판은 “시내산 사본”을 지나치게 선호했다고 종종 비판받고 있다. 그리고 웨스트코트-홀트 판은 앞에서 말한 대로 “바티칸 사본”의 대변자이다. 또한 베른하르트 봐이스가 소위 주석적 근거에서 편집했다고 하는 봐이스 판도 결과적으로는 “바티칸 사본”에 근접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고 말았다. 그렇다면 네슬레 판이 어떠한 성격을 띠게 될지는 자명하다. 네슬레 판은 그 작업 원리상 애초부터 “바티칸 사본”을 주로 채택한 편집판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거기다가 “시내산 사본”이 약간씩 추가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그 후에도 계속되다가 제 17판부터 위 “다수 본문”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주로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전에는 참고할 수 없었던 파피루스 사본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 중심의 기조는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1960년의 제 24판부터는 독일 뮌스터의 “신약사본연구소”의 소장을 맡은 알란트가 책임을 맡아 편집하고 있는데, 그의 주도 아래 네슬레 판은 많은 자료가 보강되었다. 그러나 그 기본 원리에 있어서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래로 큰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알란트 판이 주로 채택하는 사본도 역시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 그리고 몇몇 “파피루스 사본들”이며, 수많은 소문자 사본들과 대문자 사본들, 그리고 렉시오나리아(lectionaria) 증거들이 무시 또는 경시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27판에 와서 더욱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곡이다. 여기서부터 헛소리가 시작된다. 그 지루한 사본학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진정한 문제점 주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현대 본문비평의 결정판 NA-UBS 는 알렉산드리아계 사본의 중립본문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더군다나 소문자 사본을 무시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성무일도(아마 렉시오나리아는 변 교수가 공부했던 네덜란드어 일 것이다. 영어 lectionary는 성무일도.)를 무시한 적도 없다. NA-UBS는 모든 사본, 교부인용, 시간전례(성서일과,성무일도),번역본의 이문을 적고 있다. 그야 말로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NA-UBS에 대해 비난(비판이 아님)만 할 줄 알았지, 읽을 줄을 모르던지, 아니면 책이 없어서 사용해본 적이 없던지 둘 중 하나다.




III.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의 문제점


그렇다면 TR을 붕괴시키고 현재의 NA 시대를 열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여전히 오늘날 사본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의 주요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이론을 크게 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그의 “계보론적 방법”(genealogical method)이다. 그는 벵겔(Bengel), 제믈러(Semler), 그리스바하(Griesbach) 등의 방법을 따라, 사본들의 수적 우세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사본들을 네 그룹으로 나누었다. 곧 “수리아 본문”(Syrian text), “서방 본문”(Western text), “알렉산드리아 본문”(Alexandrian text), 그리고 “중립 본문”(Neutral text)으로 나누었다.


->변 교수의 눈이 문제가 있는지, Syrian을 어떻게 ‘수리아’로 읽는지 의심스럽다. 그 잘난 네덜란드에서 공부한 사람의 언어 수준이 시리아를 수리아로 읽는다는 말인가? 물론 이는 개역성경에 시리아를 수리아로 잘못 적은 것을 습관처럼 사용하는 것일 것이다.



이 중에서 “서방 본문”과 “알렉산드리아 본문”은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에서 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웨스트코트-홀트가 주로 표적을 삼은 것은 “수리아 본문” 곧 “비잔틴 본문”이다. 이 본문에 속하는 것은 대다수의 소문자 사본들과 후기 대문자 사본들, 그리고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사본”(A) 등인데, 그들은 이것을 4세기의 편집자(들)이 편집한 본문으로 보았으며 매끈하고 쉽고 온전하게 만든 “혼합 본문”(mixed text)이라고 하였다. 이 본문의 특성은 “명료성”(lucidity)과 “온전성”(completeness)이며, 이렇게 수정, 편집된 본문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서 비잔틴 제국 안에 널리 펴졌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웨스트코트-홀트는 교회 안에 보존되어 온 거의 대부분의 사본들의 본문 형태를 4세기초의 어떤 편집자에 의해 수정, 편집된 결과로 돌려버림으로써 그 본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바, 4세기초에 안디옥의 “루키아누스”(Lucianus)가 비잔틴 본문을 편집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추측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검증되지 않은 “가설”(假說)에 근거한 이론을 가지고 수많은 사본들의 증거를 송두리째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비잔틴 본문,” 곧 대다수의 비잔틴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 형태를 가치가 적은 것으로 돌려버림으로써 그것을 기초로 하여 편집된 TR과 나아가서 그것을 모체로 하여 번역된 대부분의 성경들이 불신 받게 되었다.


->뭐가 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지 않는다는 건지 도저히 그 내용을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더구나 호르트 박사의 판단이 검증되지 않았다하여 비판한다 해도, 비잔틴 본문이 변형된 본문임은 변하지 않는다. 현대 사본학이 안티오키아의 루키아누스가 비잔틴 본문 편집의 시초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상당수 비잔틴 본문이 후기 형태일수록 변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우리 모두가 직접 보고 있지 않은가. 호르트 박사가 비잔틴 본문을 저평가한 이유가 겨우 ‘루키아누스’ 때문이라면 도대체 전세계 문학 본문비평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듣고 싶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바티칸 사본”(B)과 “시내산 사본”(א)을 후대의 부패와 혼합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그래서 원본에 가장 가까운 사본들로 보아 “중립 본문”이라고 불렀다. 이 “중립”이란 명칭 속에 그들이 이 두 사본을 얼마나 편애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강하게 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곧, 이 “중립 본문”이란 명칭이야말로 그들의 이론이 중립적이지 못함을 분명히 드러내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두 사본은 원본에서 멀지 않다고 보았으며, 이 중에서도 특히 “바티칸 사본”은 원본에서 바로 온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웨스트코트-홀트가 편집한 신약은 사실상 “바티칸 사본”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로써 1800여년 동안 교회에서 사용되어 오던 대다수 사본들의 증거는 무시되고 말았다.


->‘편애’ ‘편견’ ‘선입견’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중립본문이라 부르며 그것들을 고평가 한 것에 대해 변 교수는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와 코덱스 바티카누스 보다 오래되고, 보존 상태가 좋고, Vellum에 썼고, 필사자가 감정변화 없이 필사 한 것이 있는가? 변 교수의 억지를 들어보면 똑같은 말의 반복을 길게 적어놓은 것 뿐이라, 반박할 만한 내용조차 없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의 중립본문이라는 작업분류가 잘못되었다고 우기고 있는데, 문제는 지금은 그 분류를 쓰지 않으며, 변 교수의 지나친 걱정 및 억지주장과 달리 비잔틴 본문을 평가절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내용이라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러면 그들이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을 선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유로 그들은 이 두 사본을 그토록 칭찬하고 선호했을까?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소위 그들의 “내적 증거”(internal evidence) 이론이다. 사본들이 제공해 주는 객관적인 증거를 “외적 증거”(external evidence)라고 부르는데 반해, 본문 안에서 어떤 부분들의 “독본들”의 상호 비교에 의해 얻은 결론을 그들은 “내적 증거”라고 불렀다. 이 명칭에도 또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슨 객관적 “증거”가 아니라 사실은 사본학자들의 “주관적 판단” 또는 “개인적 확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을 객관적인 사본상의 증거인 “외적 증거”와 같은 차원에서 “내적 증거”라는 말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외적 증거”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면 그들의 “내적 증거”의 원리란 무엇인가? 이것을 여기서 지면을 통해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구절에서 사본상 서로 다른 두 독본이 나타난다고 하자. 한 독본은 매끄럽고 온전하며 뜻이 잘 통하는 것이고 다른 한 독본은 엉성하고 무언가 빠진 듯하며 뜻이 잘 안 통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럴 때 어느 독본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인데, 이 둘 중에서 뜻이 잘 통하지 않는 후자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웨스트코트-홀트의 “내적 증거”의 원리이다. 그 이유는 문장이 매끄럽고 온전하며 뜻이 잘 통하는 독본은 후대의 필사자들이 수정, 편집해서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소위 그들의 “동화”(同化, conflation) 이론이다. 즉, 필사자들은 원래의 거칠고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본문을 가능한 한 매끄럽고 온전하고 조화되도록 (곧 동화되도록) 수정해서 필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독본을 취하지 말고 거칠고 이상하고 어색한 독본을 취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어떻게 보면 매우 그럴 듯한 것처럼 보이며, 현대 사본학에 있어서 거의 모든 사람이 다 받아들이는 “기본 전제”처럼 되어 있다. 벵겔 이래로 거의 모든 사본학자들 의해 당연한 “공리”(公理)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소위 “어려운 독본”(lectio difficilior)이 쉬운 독본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며, 중대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위험한 이론이다. 왜냐하면 이 원칙은 소수의 필사자가 고의로 또는 실수로 잘못 필사했을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한 번 생각해 보자. 60명의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는 반에서 선생님이 어떤 문장을 불러 주고 학생들이 그것을 받아 적도록 했다고 하자. 그래서 선생님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불러 주었다고 하자. 58명의 학생은 정확하게 잘 받아 적었는데, 한 명은 띄어쓰기를 잘못해서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적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중간의 말을 듣지 못해 “아버지가 들어가신다”로 적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세 개의 “독본” 중에서 어느 것이 원본에 가깝다고 결론 내려야 할 것인가? 오늘날 현대 사본학의 이론을 따르자면 문장이 자연스럽고 잘 통하는 것은 후대의 필사자들이 수정, 편집했다고 보기 때문에 원본이 아니라고 판정하고, 문장의 흐름이 어색하고 뜻이 부자연스러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나 또는 뭔가 빼먹은 듯하고 이상한 “아버지가 들어가신다”를 원본으로 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대 사본학계의 진수를 잘 드러내 준다. 그래서 현대 사본학자들이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 곧 “내적 증거의 원리”에 의해 편집한 신약 성경은 자연히 문장의 흐름이 이상하며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하며 중간에 많이 빠진 듯한 모습을 취하게 된다.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가 편집한 신약 성경이 그러하며 오늘날의 NA 판과 UBS 판이 또한 그러하다.


->무식의 극치를 보여준다! 변 교수가 직접 예시를 만들어서 현대 본문비평이 마치 이런 것인 양 적었는데, 완전히 무식한 예시다. 이 이야기로 말미암아 변 교수가 사본학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변 교수를 비롯한 그리스도교인들이 신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신약성서를 1500년 간 필사하고 보존하는데에 든 예시는,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받아쓰기를 하는데 극소수의 어린 학생들이 띄어쓰기를 안했거나 단어를 못 적었다고 하여 읽기가 어려운 받아쓰기 본문이 나왔는데 이는 극소수의 학생이 문제였으며, 다수가 옳다는 것이다. 신의 말씀 필사를 겨우 어린이의 받아쓰기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신을 믿으며, 예수를 믿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어린이들의 소설 받아쓰기 내지는 베끼기 인데 말이다. 필사 작업에는 옆에 원본을 두고 베낀 것도 있고, 여러명의 필사자가 자리에 앉고 맨 앞에 필사할 본문을 불러주는 사람이 본문을 읽으면 다같이 필사한 것도 있다. 두가지의 경우 생기는 이문생성방식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인류가 보존하고 있는 사본은 그 중에서도 일부분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어느 정신나간 사람이나 기관이 질 떨어지는 사본을 보존하려 하는가? 더구나 우리는 한 순간에 10명씩 앉아서 필사한 본문의 10개의 본문 중 10개를 다 가지고 있지 않다. 또, 사본의 연대는 천차만별이라서 1000년 이상 차이나는 사본도 부지기수다. 후대의 필사자들은 필사원본에 수정을 가한경우도 수도 없다. 변 교수가 그렇게 평가절하 하고 싶어하는 사본에도 사본의 최초 생성일로부터 수백 년 단위로 수정자가 최소 3명(א, 코덱스 시나이티쿠스), 2명(B, 코덱스 바티카누스) 있다. ‘어려운 독법의 원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그저 ‘어린아이가 받아쓰기를 실수한 것일 뿐’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예시를 들고 있다. 내가 이 교수에게 반론으로써 ‘Lectio difficilior potior’를 알려주는 것 자체가 마치 ‘어린아이에게 받아쓰기를 시키는 것’ 같다.



이것을 실제로 성경의 한 구절을 예로 들어서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마태복음의 “주기도문”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익숙해 있다. 우리 “개역 한글판”에 그렇게 되어 있고 NA 판과 UBS 판에도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본상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기도문 중 한 군데만 살펴보면 누가복음 11:2에 NA/UBS 판은 그냥 “아버지여”라고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독본을 지지하는 주요 사본은 p75와 א B 정도에 불과하다. 대신에 A C D W 등의 초기 대문자 사본들과 E F G H P Δ Θ Ψ 등의 후기 대문자 사본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소문자 사본들과 렉시오나리아들이 마태복음 6:9에서와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NA/UBS 편집자들은 그들의 “내적 증거”의 원리를 따라, 수많은 객관적인 “사본상의 증거”를 무시하고 극소수 사본들의 증거를 취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11:2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가지고 있는 사본들은, 비록 그 수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마태복음 6:9의 본문에 의해 “동화”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면 관계상 한 군데만 살펴보았지만 수많은 곳에서 이와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NA 판이나 UBS 판은 바로 이러한 “내적 증거”의 원리를 기초로 하여 편집된 성경이며, 이 점에 있어서 1881년의 웨스트코트-홀트 판과 편집 원리 면에 있어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내적 증거”의 원리를 따르는 편집판들은 결국 객관적인 사본상의 증거를 무시 또는 경시하고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을 따르는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현대 사본학계의 원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NA/UBS 판을 가지고 있으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의 원본을 가지고 있는 냥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쿠르트 알란트를 중심으로 한 다섯 명의 현대 사본학자들의 “비평적이고 주관적인 본문”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현재 NA 판이 제시하고 있는 “각주”의 증거가 비록 학적이고 인상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대부분은 어디까지나 자료의 제시에 그칠 뿐, 사실상 그 편집판은 B, א과 몇 개의 파피루스를 중심으로 그들의 “내적 증거”의 원리를 따라 만든 주관적 본문에 불과하다.


->자, 이 부분을 읽은 독자들은 왠지 주장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는 깜도 안되는 본문비평이다. 내가 본문비평 이론 중 한 부분만 사용하여 변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려 한다. '원본문이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이라면,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그저 필사자의 실수인가? 필사자의 실수라면 누가복음이 쓰인 저자를 아는 사람이 원본에서 첫번째 필사를 실수 가득히 필사 하고 원본이 없어져 버렸을 때 그 잘못된 첫번째 필사본이 쭉 우리에게 짧은 주기도문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몇 백년후에 그 사실을 아는 필사자들이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을 베껴와 누가복음에 써 넣었다면, 이는 충분한 가정이다. 과연 이 사실은 몇%의 확률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어떠한 이론보다 우등하고 합리적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IV. 웨스트코트-홀트 판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모색

그렇다면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의 새로운 사본학 이론에 기초한 신약 성경이 출판되었을 때 거기에 대한 비판은 없었는가? 아니다. 오늘날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은 별로 이의가 없는 정설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지만, 이미 그 당시 교회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문제점이 지적되었던 것이다. 특히 존 버건(John W. Burgon, 1813-88)은 그 당시에 웨스트코트-홀트의 새로운 이론과 그것에 바탕한 새로운 신약 성경(Revised Version이라고 불렸음)을 비교적 상세히 분석하고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비록 현대 사본학계를 대변하는 메츠거는 그를 “잃어버린 주장들과 불가능한 신념들을 옹호하는 챔피언”으로 악명 높다고 소개하면서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조롱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도리어 현대 사본학자들이 얼마나 객관적이지 못하며 편견에 빠져 있는가를 드러낼 뿐이다.


버건이 런던의 잡지에 발표한 세 편의 글들은 1883년에 The Revision Revised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버건은 웨스트코트-홀트의 “계보론적 방법”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선호한 א, B, D는 “현존하는 가장 부패한 사본들”(the most scandalously corrupt copies extant)이며, 그것들은 “가장 수치스럽게 절단된 본문들”(the most shamefully mutilated texts)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또한 이 사본들은 “조작된 독본들”(fabricated readings)과 “실수들”(blunders)과 “진리의 고의적인 왜곡”(intentional perversion of Truth)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스크리브너(F.H.A. Scrivener)도 1883년에 나온 그의 책에서 “홀트 박사의 이론은 역사적인 토대를 완전히 결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따라서 “그 이론의 토대는 교묘한 상상의 모래 땅 위에 놓여져 있다”고 하였다.


-> [※Westcott-Hort의 그리스어 성서에서 영국에서 영어번역을 하여 Revised Version(*1911년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대본)이 나왔다. 또 미국에서 영어번역을 하여 ASV가 나왔고 이것 역시 1911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대본이다. 한글 개역성경은 RV와 ASV의 영어-한국어 번역본이다.]


호르트 박사를 비판한 일은 영국에서 있었던 일로 존 버건은 흔히 딘 버건(Dean Burgon)으로 불린다. 변 교수는 버건의 책을 제대로 읽어봤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버건의 주장과 근거를 가지고 와야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고, 감정적인 대응(부패함, 수치스러움, 조작됨, 실수, 고의적인 왜곡)을 하는 단어들만 차용하여 글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Burgon(버건)의 주장은 무엇이었냐면, 교부들의 인용이 Traditional Text(전통 본문, Majority Text(다수 본문)는 곧 수용 본문(Textus Receptus)을 뜻한다)에서와의 일치는 2630건, Neologian(새로운 교리를 주창하는 사람, 비꼬아서 말한 이 사람은 Hort 박사를 뜻하고, 그 본문은 곧 Westcott-Hort의 편집본)과의 일치는 1753건 이며 3:2의 비율을 보인다고 Traditional Text of the Holy Gospels Vindicated and Established p.101(버건의 연구물을 다른 사람이 통계치 낸 것이다) 에 나온다. 사실 이 주장은 세세함을 알아보지 않고 단순히 통계를 낸 숫자놀음 이지만, 이 주장은 WH에서는 먹힐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립본문이라 부르며 א, B를 선호한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NA-UBS는 교부인용을 전부 싣고 있다. 그럼에도 WH를 까면서 그것을 계승한 NA-UBS를 까려는 변 교수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러나 대세는 웨스트코트-홀트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그 후로 학자들은 차차로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과 그들의 「수정본」 신약을 지지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수많은 네슬레 판이 거듭된 오늘날에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NA 판이 20세기의 TR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NA 판의 독주에 대해 비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동안에, 소수의 학자들과 목사들을 중심으로 이 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운동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그 뿌리는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흠정역”(KJV) 옹호 운동이다. KJV는 1611년에 번역되어 그 경건성과 아름다운 문체로 인하여 수백년간 사랑 받아 온 번역이다. 그러나 이것은 1881년에 웨스트코트-홀트의 「수정본」(Revised Version)에 의해 근본적으로 도전 받게 되었다. 1901년에 이 RV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ASV가 출판되었다. 이것을 토대로 개정한 것이 NASB(1971)이다. 또한 RSV(1952), NEB(1961), NIV(1978)도 출판되었으며, 최근에는 NRSV도 나와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TR이 아니라, 웨스트코트-홀트의 편집판 또는 그 계승이라 할 수 있는 NA/UBS 판을 대본으로 사용하였다.


->사실이다.



이처럼 새로운 번역 성경들이 쏟아져 나오자 보수적 신앙을 가진 영미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뢰성이 손상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뿐만 아니라, 1611년 이래 400년 가까이 교회에서 사용되어 오고 있는 KJV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에 대해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보수적 신앙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KJV 옹호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의 Trinitarian Bible Society가 스크리브너(Scrivener)의 「희랍어 신약 성경」(1894, 21902)을 재출판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스크리브너 판은 KJV의 모체가 되었던 TR을 제공해 준다. KJV의 번역자들은 그 당시 베자(Theodore Beza)가 편집한 신약(그 중에서도 특히 1598년의 제 5판)을 주로 대본으로 사용했는데, 스크리브너 판은 이 베자 판과 미미한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다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말씀보존학회」가 1994년에 「한글 킹 제임스 성경」(신약 초판은 1990)을 내놓았는데, 오늘날의 많은 번역들이 잘못된 사본에 기초해 있음을 비판하고 전통적인 본문(TR)을 옹호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다소 감정이 앞서서 지나친 주장을 한 것들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오늘날 추적하기 어려운 사본들의 전수 역사에 대해 너무 자신 있게 단정하고 있으며, 또한 TR과 KJV을 지나치게 절대시하는 듯한 인상이 든다. 물론 KJV가 경건하고 좋은 것이긴 하나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KJV의 번역자들은 희랍어의 “시상”(時相, aspect)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이것은 그 당시의 학문 수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일례로 KJV는 사도행전 19:2와 에베소 1:13 등에서 “부정 시상 분사”(aorist participle)를 한 시제 앞선 것으로 잘못 번역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오순절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 그리고 로이드-존스 목사가 이 오역을 토대로 “믿음 후 성령받음”을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1982년에 나온 NKJV에는 이러한 오역들이 많이 시정되었다).


->TR에서 비롯된 KJV를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400년 묵은 영어 번역본인 KJV에 대한 비판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 대안으로 Majority Text 에서 번역한 NKJV를 옹호하고 있다. 웃길 일이다. (*물론 KJV 근본주의자들은 NKJV 역시 사탄에 의해 변개되었다고 맹비난한다.)



다른 또하나의 흐름은 차분하게 웨스트코트-홀트의 이론을 재평가하고 현대 사본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하는 학적 노력들이다. 주로 미국과 화란의 보수적인 학자들과 목사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인데, 미국 내의 보수적인 신앙의 사람들과 선교사들 사이에 그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피커링(Wilbur N. Pickering), 로빈슨(Maurice A. Robinson), 스터즈(Harry A. Sturz), 핫지스(Zane C. Hodges) 등이 전통적인 비잔틴 본문을 옹호하고 있다. 화란에서는 판 브루헌(J. van Bruggen) 교수가 1976년에 출판한 조그만 책(The Ancient Text of the New Testament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음)에서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의 문제점을 학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었으며, 전통적인 비잔틴 본문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그 제자 중의 하나인 뷔썰링크(W.F. Wisselink)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래 현대 사본학의 “공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동화” 이론에 대해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의 수많은 자료들을 컴퓨터로 처리해서 과연 그 이론이 타당한지 여부를 검증하였다. 그의 결론은 “비잔틴 본문 형태는 그것의 조화적 또는 동화적 성격 때문에 열등하다고 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건전한 토대 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은 1982년에 핫지스(Zane C. Hodges)와 팔스타드(Arthur L. Farstad)가 편집한 The Greek New Testament according to the Majority Text가 미국의 최대 성경 출판사인 토마스 넬슨(Thomas Nelson)사에 의해 출판됨으로써 구체적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 희랍어 신약 성경은 1985년에 제 2판이 나왔으며 현재 한국에도 조금씩 보급되고 있다. 이 신약 성경의 서문에 보면, 오늘날 가장 유명한 두 희랍어 신약 편집판인 UBS(3판)과 NA(26판)은 이집트에서 기원한 적은 수의 고대 사본에 매우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주로 B, א와 몇몇 파피루스들), 따라서 이 편집판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은 “이집트 본문”(Egyptian text)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소수의 몇몇 사본들의 증거에 반해 상당히 많은 대다수의 사본들은 그 본문이 거의 일치하게 전수되어 내려오고 있다. 이 대부분의 일치하는 사본들의 본문 형태는 “대다수 본문”(Majority Text)이라고 불리는데, 토마스 넬슨사가 출판한 희랍어 신약 성경은 바로 이 “대다수 본문”을 토대로 편집된 것이다.


->왜곡이다. 이름은 거창하게 ‘다수 본문에 따른 그리스어 신약성서’이지만, 따지고 보면 TR의 부활이다. 이 그리스어 신약성서로 NKJV가 번역되었으니까. 이 와중에 그 서문에서 NA-UBS가 이집트 본문에 매우 많이 기초하고 있다는 둥 하는데 헛소리다. 중립본문 이라는 용어 자체가 폐기된 이 시점에와서 NA-UBS를 까려고 든다. 몇번이나 언급하지만, 중립본문에 의존해 NA-UBS 비평본문을 만든게 아닐 뿐더러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비평본을 낸 것이다. NA-UBS는 전세계 최고의 성서 본문비평 학자들이 모여 앞선 증거를 취합해 회의하고 토론한 것이다. 변 교수처럼 TR과 KJV계열을 지지하는 인간들이 실오라기 만한 흠집도 못내는 곳이다.



물론 이 “대다수 본문”(다르게는 비잔틴 본문, 수리아 본문, 코이네 본문 등으로 불림)을 가지고 있는 사본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이집트 사본들보다 시기적으로 후대의 것임은 사실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식하기 쉬운 파피루스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곳은 건조한 기후 조건을 가진 이집트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다수 본문의 “본문 형태”는 바티칸 사본이나 시내산 사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2,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가는 수리아 역본들이 거의 비잔틴 본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당시에 비잔틴 본문 형태를 가진 희랍어 사본들이 이미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 수리아 역본들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새로이 발견된 파피루스들 중에는 놀랍게도 비잔틴 본문을 지지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예를 들어 p46). 나아가서 “대다수 본문” 형태를 가진 사본 또는 역본들은 고대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수리아, 비잔틴뿐만 아니라, 고딕,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심지어는 에티오피아에서도 발견된다. 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으면서 일치하는 수많은 사본, 역본들의 존재는 곧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아주 오래된 사본들에서 전수되어 왔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대다수 본문”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심지어 현대 통계학 이론을 동원하여 “현재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는 사본들의 본문 형태가 가장 오래된 사본 전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정신승리도 가지가지 한다. 비잔틴 본문, 즉 다수 본문은 이름 그대로 그리스어 사용지역이었고, 당연히 성서도, 시간전례도, 성찬전례도, 심지어는 일상 생활도 그리스어로 하던 지역이다. 동로마제국인 비잔틴 제국이 망할 때까지 말이다. 그 사람들이 그리스어 본문을 많이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것들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스어 사용자들이기 때문에 내용이 자신의 지식의 한계, 또는 교리에 갇혀 이해하기 힘들 경우에는 본문을 수정해서 필사했고, 그것들이 점점 모여 최종에 이른 것이 비잔틴 본문의 후기형태이다. 또 코이네 그리스어인 신약성서 원문과 달리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비잔틴 그리스어로 시대가 달랐고 언어가 변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대 언어는 적절한 자신의 시대에 쓰는 단어로 치환하여 필사하고 이해했기 때문에 변화가 크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며, 무작정 비잔틴 본문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비잔틴 본문도 원문에 가까운 부분이 있다. NA-UBS는 그 점을 놓치지 않고 비잔틴 본문의 읽기가 맞을 때는 그것을 읽으라 지시한다. 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계 그리스어 본문이 높은 평가를 받았는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학문의 중심지로 ‘고대’에 이미 본문비평이 이루어진 곳이다. ‘고대’에 사본들을 가지고 본문비평을 하여 원본문을 확립하고 필사하여 보존한 곳으로 성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전수했다.




V. 우리의 방향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사본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현대의 NA, UBS 판이 웨스트코트-홀트의 잘못된 사본학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희랍어 성경을 택해야 할 것인가? 그냥 옛날의 TR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아니면 더 대안이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사본학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은 물론 쉽게 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을 위해 여기에 우리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해 보기로 하자.


1. 먼저 사본학과 관련하여서 커다란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사실 우리는 사본의 전수 과정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어떤 사본이 발견되었을 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 사본의 연대를 대략 추정할 수는 있지만, 누가 어디서 어떤 계기에 의해 필사했는지는 거의 알 수 없다. 특히 제일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어느 사본을 대본으로 해서 필사했는지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또한 필사자가 어느 정도의 조심성을 가지고 필사했는지, 그리고 필사 후에 다시 원본과 대조해서 점검했는지에 대해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알기 어렵다. 따라서 오늘날 사본에 대한 여러 이론들은 대개 불확실한 추측에 근거한 것이 많다. 뿐만 아니라 사본의 연대가 빠르다고 무조건 우수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2, 3세기의 파피루스라고 해서 너무 신뢰해서는 안되는데, 왜냐하면 파피루스는 그 당시에 비교적 값싼 종이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어떤 사람이 개인적 용도로 급하게 필사했을 경우에 많은 오자와 부정확한 것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9, 10세기의 소문자 사본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되는 것은 비록 후대의 사람이 필사했지만 초기의 좋은 사본에 근거해서 정성껏 필사하고 교정했다면, 그것은 4, 5세기의 대문자 사본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사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필자가 후대의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본의 필사 과정과 전수 과정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사본에 대해 말할 때는 고도의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웨스트코트-홀트와 그후의 사본학자들이 비잔틴 본문 형태를 가진 사본들을 너무 쉽사리 가치 없는 것이라고 배척해 버린 것은 큰 잘못이다.


2. 그러나 오늘날 지배하고 있는 NA 판과 UBS 판은 잘못된 사본학의 원리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전통적인 비잔틴 본문을 무조건 지지해서도 안되지만, NA 판과 UBS 판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오늘날의 NA/UBS판은 분명히 잘못된 사본학의 원리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불과 몇 개의 이집트 사본들을 토대로 만든 “지역판”이며, 2천년 가까이 교회에서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오던 대다수의 사본들의 증거를 불충분한 이유로 무시하고 있다. 대신에 그들은 소위 “내적 증거”라는 원칙 아래 서로 조화되는 독본들을 “동화”되었다는 구실로 가능한 한 배제하고 서로 조화되지 않고 어색한 독본들을 본문으로 많이 택하였다. 이러한 “동화” 이론의 배후에는, 그리스바하에게서 분명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성경의 원본은 가능한 한 조화되지 않는다는 “원본부조화가설”(原本不調和假說)이 놓여 있다. 그래서 서로 조화되는 독본은 후대의 필사자들이 가필해서 수정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배격해 버린다. 이것이 소위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현대 사본학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 하에 편집된 성경은 본문들 사이에 가능한 한 서로 충돌하고 맞지 아니하고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것들로 많이 차 있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사실은 NA 판과 UBS 판이 이런 부조화 본문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서 NA 판과 UBS 판은 역사적인 어떤 사본의 계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5명의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선택한 본문을 제공해 주고 있다. 물론 그들은 몇몇 대문자 사본들과 파피루스를 중요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위 “내적 증거”라고 부르는 것이며, 어느 것이 동화되었고 안 되었고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다섯 명의 편집자들이다. 그들 사이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결국 투표로 결정하였다. 물론 이것은 실제 작업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이로써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본문 결정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말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의 NA/UBS 판은 사실상, 역사적으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사본들의 “외적 증거”보다는 현대 사본학자들의 “주관적 판단”을 더 따른 것이다. 따라서 NA/UBS 판이 제시하는 본문은 현존하는 어떤 사본에도 근거하지 않은, 다섯 명의 사본학자들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편집진이 바뀌면 또다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가변적인 것이다. NA/UBS 판의 이러한 “주관주의”(subjectivism)와 “절충주의”(eclecticism)는 20세기의 현대 사본학이 외양적으로는 견고한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불확실한 토대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NA-UBS가 잘못된 사본학의 원리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주장하나, 그 근거는 없고, 그저 다수본문이 맞다고 생각하는 변 교수가 억지를 부리며 변증하고 있다. NA-UBS 편집진이 겨우 5명이라 생각하는 것부터가 억지의 시작이다. 사본의 편집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학자들은 없던 셈 치는 것이 되며, 논란이 있던 구절과 근거는 전부 등급도 매기고 []를 달기도 했다. NA-UBS가 어떤 사본에도 근거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현재 남아있는 사본중에 원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모든 사본들을 비교대조하여 만들어졌으므로, 당연히 비평본문은 창조물이다. 그건 TR도 마찬가지고, 변 교수가 억지를 부리면서 까지 지지하는 Majority Text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모든 고대 본문 비평된 문헌들에게 있는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변 교수가 무식한 것이 아닌가?



3. 이런 점에 있어서 1982년과 1985년에 나온 MT 판은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주가 되지 아니하고 역사적으로 교회에서 전수되어 내려오는 대다수의 일치하는 사본들의 독본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견고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20세기의 몇몇 사본학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본문을 따르는 것보다는 2천년 가까이 교회에서 사용되던 사본들의 본문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MT 판이 바로 원본의 말씀을 제공해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MT 판 편집자들도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편집판(1985)이 “예비적”(preliminary)이고 “준비적”(provisional)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현존하는 대다수의 희랍어 사본들의 가치와 권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MT 판은 아직도 많은 연구와 보완 작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주관적이고 비평적인 편집 원리에 의해 편집된 NA/UBS 판에 비해서는 훨씬 객관적이고 역사적 증거가 있는 본문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사본학과 관련하여서 아직도 많은 연구가 진전되어야 하겠지만, 현단계에서는 MT 편집판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사람들은 TR이 가장 나은 대안이 아닌가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TR도 비잔틴 사본들을 토대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TR과 MT는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TR 판들은 아직도 비잔틴 사본들의 자료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TR은 하나의 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판들(Erasmus, Stephan, Beza, Elzevier 판 등)을 묶어서 부르는 명칭인데, 300여년간 구라파 교회에서 받아들여서 사용한 희랍어 신약 성경의 본문 형태를 뜻한다. 그러나 최근의 MT 판은 TR 뿐만 아니라, 20세기초의 폰 조던(Von Soden)의 비잔틴 사본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대다수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을 좀 더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MT 판은 옛날의 TR보다 한 걸음 더 진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T 판에는 TR의 본문과 다를 경우에 밑의 “각주란”에 그것이 표시되어 있으며, 대다수 본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웃음 밖에 안 나오는 무식의 극치이다. Majority Text가 대안이라고 억지 주장하고 있다. 나는 여태 이 긴 글을 읽으며 그 지지근거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4. 사본학의 장래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사본학 분야는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것이라서 아직 결정적인 것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주로 독일 뮌스터의 “신약사본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문제는 그들의 사본학의 원리와 신학적 전제이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어도 많은 중요한 자료들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경시한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NA 26판(UBS 3판)에서 NA 27판(UBS 4판)으로의 진행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필자의 “UBS 4판과 NA 27판에 나타난 현대 사본학의 동향,” 「개혁 신학과 교회」 4호 (1994), pp.53-66 참조), 비록 더 많은 자료들이 참조되고 각주에 실리기는 했지만 그것들이 본문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전의 문제가 개선되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여러 군데에서 편집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더 강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사본학의 발전을 위하여서는 올바른 믿음에 바로 선 학자들의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특히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웨스트코트-홀트 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며, 사본학의 기본 전제처럼 여겨지고 있는 “어려운 독본 우선의 원칙”과 “동화 이론”에 대해서도 비판적 검증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소문자 사본들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여태까지의 사본학은 주로 몇 개의 대문자 사본에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고 있는 방대한 소문자 사본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앞으로 많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렉시오나리아(lectionaria)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다. 교회에서 공적으로 낭독될 때 사용되었던 렉시오나리아 본문은 거의 모든 곳에서 비잔틴 본문과 일치하고 있는데, 렉시오나리아는 교회의 공예배시에 낭독된 것이기 때문에 그 성격상 보수성과 엄격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 자료들을 연구하고 참조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알란트는 NA 26판에서 이 자료를 거의 무시했으나, NA 27판과 UBS 4판에서 데살로니카의 렉시오나리아 연구소 소장인 까라비도뿔로스(J.Karavidopoulos)를 편집 위원으로 가담시킨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그 자료들이 본문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파피루스 사본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요구된다. 2, 3세기의 파피루스들은 웨스트코트-홀트의 기대를 뒤엎고 예상외로 비잔틴 본문 형태를 지지하고 있는 것도 많다(특히 p46).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파피루스들의 증거는 대개 웨스트코트-홀트의 “중립 본문”을 지지하는 것과 “비잔틴 본문”을 지지하는 것이 나뉘어지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앞으로 파피루스에 대한 더 많은 연구는 사본 전수 과정에 대해 좀 더 밝은 빛을 비춰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오늘날 발견되는 파피루스들이 이집트 지역에 치우쳐 있다는 것과, 또한 파피루스가 값싼 재질이기 때문에 조심성 없이 필사한 파피루스들은 오히려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수리아 역본, 아르메니아 역본, 고대 슬라브어 역본, 에티오피아 역본 등에 대한 연구도 사본에 대한 좀 더 넓고 균형 잡힌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NA26 UBS3와 NA27 UBS4는 개정하면서 본문의 변화는 아예 없었고, 자료의 변화도 거의 없었다. 시간전례 본문을 연구하는 학자 중의 최고가 이미 NA-UBS 편집진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이전부터 시간전례 본문이 무시된 적은 없으나, 변 교수는 마치 앞선 단락에선 완전 무시된 것으로 여기고서는, 시간전례의 대학자가 들어왔으나 본문의 변화가 없었다며 마치 통탄할 일인 것 마냥 쓰고 있다. 그 학자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본문의 변화를 가져올 만큼의 증거가 편집진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없어서' 였을 뿐이다. 그의 의견이 NA-UBS에 심각한 도전을 가지고 왔다면 당연히 그 결과는 논란으로 라도 분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현 상태를 보인다. 변 교수는 NA-UBS가 마치 TR로 편집되기를 원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NA-UBS의 편집기준은 비잔틴 본문‘만’가지고 하는게 아니라 모든 사본 및 인용구와 번역본 까지 고려하여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Majority Text 처럼 주관적인 비평본문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 사본학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를 많이 지니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처럼 사본 문제와 관련하여 의견의 차이가 크고 전혀 다른 편집판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볼 때에, 자칫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본상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 국한되어 있거나 의미상 큰 차이가 없는 것들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인가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가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가 하는 정도의 차이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는 같은 의미이지만 단어가 다른 경우라든지, 또는 같은 단어인데 시상이 다른 경우도 제법 있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뜻에 중요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사본상의 차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벵겔이 평생 동안 사본을 연구한 후에 내린 결론, 곧 “상이 독본은 생각했던 것보다 수가 적고 또한 복음적 교리의 어떠한 조항도 요동시키지 못한다”는 결론을 오늘날 우리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곧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필사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존되어 왔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5천여 희랍어 사본들 중 대다수의 사본들이 거의 일치하는 본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한 보존에 대해 감사드릴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끝>


->전투적무신론의 종합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이 글을 다 읽은 독자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 글은 쓸데없이 매우 긴 글로 역사나 읊다가 억지비난을 반복했다가 잘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용어들이 튀어나왔다가 하는 등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잘 모르는 독자들은 변 교수의 말이 사실인 것 인 양 들렸을 수 있다. 본인이 볼 때 변 교수는 본문비평에 대한 지식이 '성서(신약)'에만 한정되어 있다. 그는 원래 '본문비평'이 고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모든 문학작품에 쓰인다는 것을 모른다. NA-UBS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며, 본문비평을 할 줄도 모르는 듯 보인다. 다만 변 교수는 역사에 대해선 잘 꿰고 있다. 만약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주장들을 분리해 내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글은 '간략히 보는 사본학의 역사' 라는 제목으로 소일거리용 책의 한 챕터로 다룰만 하다.


더구나 변 교수가 하려했던 현대 본문비평학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반론해내지 못했고, 주장도 억지였던데다, 근거도 너무 빈약해 마치 '어린아이'의 기고글을 읽는 것 같았다.

심령이(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무엇인가?

종교경전/본문비평 2013. 11. 10. 22:40

'심령이(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무엇인가?'


-전투적무신론


차례

1. 들어가는 말

2. 본문비평 : 원본문 복원

3. 사해사본 : 해석과 주석

4. 주석자와 주석서의 권위

5. 한국어 번역판은 다 쓰레기

6. 결론



<들어가는 말>


나는 대한민국의 (목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 신학대학 교수들을 우습게 여긴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외국까지도 넓힐 수 있다.

나는 '어느 교수는 ~한 입장인데, ~한 해석을 하는데' 같은 쓰레기 주장을 제일 한심한 주장으로 본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쓰레기 설교이자 한심한 주석을 내놓는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5:3)

공동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새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개역개정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난 이 구절에 대한 전국의 모든 쓰레기 주석, 설교, 강의를 다 까고자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 대한 부분으로,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워낙 찬송가에서도 많이 쓰는 표현이기에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마음이 가난하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참 낯설다.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표현은 1세기에서나 쓰였을 법한 말이고 지금은 2000년이 지났다. 마태복음 5:3을 제외하고는 이런표현을 볼 수가 없다.


이를 주먹구구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개신교 개역성경은 영어 'spirit'을 심령(心靈)이라 번역하였는데, 심지어 어느 해석 중에는 개역성경이 진리이고 원문인 줄 알았는지 심(心)과 영(靈)이라는 글자를 분석한 해석도 있었다.


"돈 많아도 괜찮아요~예수님은 마음의 가난을 중요시 여겼어요~자발적인 가난이 중요합니다~돈 내세요" 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룬다.


이 구절은 번역 자체가 쓰레기다! 공동번역, 새번역 조차도 쓰레기 번역이다.


나는 그리스어를 할줄 아는 흉내만 내는 놈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본문비평' 까지 해주겠다.




<본문비평 : 원본문 복원>



마태복음 5:13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복되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것이다. 하늘나라가.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원문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평행구절이 있으니 누가복음 6:20이다.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ί ὅτι ὑμετέρα ἐστὶν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복되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예수는 분명 1번만 말했을 텐데 도대체 무엇이 원본문인가?

마태복음은 자신만의 어휘로 범벅되어있다. 우라노스와 바실레이아를 동시에 쓰면서 데우스와 바실레이아를 같이 쓰진 않는다. 하지만 다른 복음서는 데우스와 바실레이아를 같이 쓴다. 어려운가? 다른 성경은 '하느님의 나라'라고 표현하는데 마태복음만 '하늘나라'라고 표현한다. 


누가는 제자들이 듣는 한편, 마태는 제자들과 군중이 듣는다. 그러면서 마태는 도덕교사가 말하는 정도의 내용으로 탈바꿈 시켜 그런 도덕적인 사람들(그들, 아우톤)이 복되다고 표현한다.


더구나 프뉴마티(영)는 누가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원본문은 누가이며, 마태는 개작했다. 자료비평으로 보면, 출처는 Q source.



<원본문>누가 6:20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ί

ὅτι ὑμετέρα ἐστὶν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마카리오이 호이 프토코이

호티 휘메테라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복되다! 가난한 사람들!

너희의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개작>마태 5:3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마카리오이 호이 프토코이 토 프뉴마티

호티 아우톤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복되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것이다

(하늘)나라가


[]는 아예 첨가한 것이고 ()는 수정한 것이다.


즉, 예수는 (진짜로)가난한 사람들이 미래에 올 하느님의 나라에서 복되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마음이 가난하다는 둥 하면서 도덕교사의 말로 탈바꿈 시켜 해석하려하는 건 쓰레기 짓이다. 애초에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영으로 가난한 사람'은 애초에 없다. 이 구절에 대한 예수의 진의는 '없다'이다. 다른 사람이 조작한 말에 원작가의 의미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 구절은 마태가 지어낸 것이므로, 1세기 내지는 비슷한 시기에 썼던 글에서 찾아보아야 하는데 그동안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간 수많은 교부들과 유명한 학자들과 종교개혁자들 주석가들이 주석을 달았지만 전부 쓰레기다. 그러다 20세기 중반 사해사본이 발견되면서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 2군데에서 나옴으로써 해석에 대한 가능성이 열렸다. 그때부터 이 구절에 주석을 달 수 있게 되었다. 착각하지 마라.




<사해사본 : 해석과 주석>


아쉽게도 2개중 1개인 찬미가(호다욧)의 '영으로 가난한 사람'은 앞뒤 문맥이 없다. 이건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전쟁 두루마리 14:7 는 한 구 정도가 구멍이고 나머지는 있다.


14:7 (...)Among the poor in spirit [...] a hard heart, and by those whose way is perfect shall all wicked nations come to an end;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로 인해 [...] 완고한 마음이, 그리고 온전한 길을 걷는 사람들로 인해 악한 국가들이 종말을 맞을 것이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란 '완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는 반대의 뜻 , '온전한 길을 걷는 사람들' 과는 유사한 뜻 이다.


이와 거의 유사한 구절은


Ibid. 11:10 You will ignite the humble of spirit like a fiery torch of fire in a sheaf, consuming the wicked.


당신은 영의 겸손을 점화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곡식 단 속에서 불타는 횃불처럼 될 것이고, 악한 것은 소멸된다.

-> '곡식 단 속에서 불타는 횃불처럼' 이라는 표현은 Zechariah(즈카리야) 12:6 에서 따온 것이다.




<주석자와 주석서의 권위>


앞서 말했다 시피 주석자와 주석서의 권위는 없다. 고대 교부 누구가 주석을 썼든, 종교개혁가 누구가 주석을 썼든지간에, 그것은 BCE 1세기~CE 1세기 사이에 쓰인 쿰란문헌보다 권위 있을 수 없다. 예수와 동시대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런 사람이라 칭하며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문맥으로 뜻을 밝혀낼 수 있고(그 당시에는 사전이 없다. 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많다.), 그마저도 쿰란문헌이 세상에 공개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누구는 주석하기를.." 이라며 구절에 대한 해석을 들이민다면, 그 사람이 1세기 유대인이 아닌이상 더 권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마음껏 비웃고 욕해도 좋다.




<한국어 번역판은 다 쓰레기>


해당 문장을 내가 직역했을 때 '복되다!' 하는 선언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 문장은 예수가 익히 듣고 공부했었을 시편에 집중적으로 나오면서도 문장의 가장 첫번째 단어이다. 즉, 당시 민중이 시편을 들었을 때는 복되다는 선언이 먼저이고 내용이 나중이다. 예수는 그 문장을 본따서 선언하고 있으므로, 역시 복되다는 선언이 먼저이고 내용이 나중이다. 이는 예수의 아람어 말을 번역한 그리스어 신약본문에도 마찬가지로, 그리스어인 (μακάριοι 마카리오이)가 먼저 나오고 내용이 나온다. 시편은 히브리어인 (אשרי 아셰레-(이))가 먼저 나오고 내용이 나온다. 물론 내용도 '~한 사람'이 먼저 나오는게 이 문장의 특징이다.


최근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대부터 시작된 번역인 라틴어 불가타, 영어 KJV 들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 번역판은 복되다는 선언이 문장의 맨 마지막에 위치해버려서, 민중이 직접 들었을 가슴 뛰는 문장을 도덕 교과서로 만들어버렸다!


번역 원칙이 어찌되었든, 이 부분은 문장을 깨어서 번역해야 한다.

가톨릭의 '성경'과, 개신교의 '두란노 우리말 성경'은 문장의 힘을 살려서 올바르게 번역하였다.


개역성경은 원래가 중국어 성경과 RV,ASV를 어설프게 번역한 것이니 원래 쓰레기니까 그렇다고 치고(그마저도 RV와 ASV에 대한 모욕이다), 공동번역은 당시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하나만 할 줄 알아도 대단한 실력자였기에 이정도는 그렇다고 친다해도, 훨씬 최근에 나온 개신교 표준새번역 과 그 개정판 등이 그 따위 번역을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맨날 히브리어 그리스어 언급하면서 원문번역 해야한다고 한 번역이 표준새번역을 번역했는데, 서로 번역원칙이 하나도 안 맞는다. 시편번역만 봐도 얼마나 대충했는지 보여진다. 그러면서 제일 나은 그 원문번역본은 버리고 병신번역 개역으로 설교하고 논문쓰면서 원문 언급하고 있다. 하여간 정신이 나갔다.




<결론>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느꼈겠지만, 이것보다 올바르고 자세한 주석 및 논문이 있으면 가지고 와보기 바란다. 무신론자보다도 훨씬 못한 크리스천 신학자들의 수준을 보라. 칼동사니 완료니 남성형이니 복수형이니 외국 학자들이 문법번역 다 해놓은 것을 줄줄이 읽는 수준은, 동시대 히브리어 문헌들에 대해 읽을 줄도 모르며 알지도 못한다는 것은 그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과 해석은 박사학위 이상의 신학교수들도 헛소리 잘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목회학 석사의 목사들은 낄 자리 조차 없다. 사해사본 만한 또 다른 엄청난 발견으로 인해 새로운 내용으로 논문을 써서 논리와 근거로 반박하지 않는 이상 반박은 불가능할 것이다.

과학자들중 무신론자/불가지론자 비율이 나온 근거

무신론 2013. 9. 21. 23:34

과학자들중 무신론자/불가지론자 비율이 나온 근거


http://www.creationists.org/response-to-nas-science-evolution-creationism-book.html


이 홈페이지는 젊은 지구 창조설 지지자들의 홈페이지이다.


그들은 NAS(미국국립과학협회) 회원의 93%는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라고 적고 있다.

나머지 7%는 인격신의 존재를 믿거나, 진짜 기독교인이 아니다(진화론과 타협한 사람이거나, 과학지식으로 신화를 부숴버리는데 사용하는 사람).


진화론 지지자 홈페이지에서 이 통계를 사용하면 자기네들 유리한것만 사용한다고 하겠지만

창조설 지지자 홈페이지에서 자신들이 불리한걸 알면서도 사용한다. 사실이기 때문에.


내가 일방적으로 과학자들은 믿지 않는다고 허공에 짖었으면 신빙성이 없겠지만, '젊은 지구 창조설자들(이른바 지구 역사는 6000년이라 주장)'이 직접 인용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의 목적은 젊은 지구 창조설이 진짜이며 그에 반하는 진화론자 욕은 물론이고, 7%의 배신자 집단까지 싸잡아 욕하고 반론하고 있다. "최고의 과학자 중 7%나 있어"라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참고로

http://www.discovery.org/a/10171

이곳에서 인용한 조사에서는 NAS의 거의 95%가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라고 적고 있다.


그 외의 기타 조사들을 봐도 무신론/불가지론자, 신을 부정하는 사람, 사후세계를 부정하는 사람 등의 비율이 높음을 알 수가 있다.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나온 예수

경전 외부자료 2013. 9. 21. 23:28

[63] Now there was about this time Jesus, a wise man, if it be lawful to call him a man; for he was a doer of wonderful works, a teacher of such men as receive the truth with pleasure. He drew over to him both many of the Jews and many of the Gentiles. He was [the] Christ. And when Pilate, at the suggestion of the principal men amongst us, had condemned him to the cross, those that loved him at the first did not forsake him; for he appeared to them alive again the third day; as the divine prophets had foretold these and ten thousand other wonderful things concerning him. And the tribe of Christians, so named from him, are not extinct at this day.


이때, 예수라는 현명한 사람이 있었다. [만약 그를 한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그는 믿기 힘든 대단한 일을 했고, 진리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의 스승이었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많은 이방인들(그리스-로마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그리스도(메시아) 였다]. 필라투스가 우리(유대인)중 지도자의 고발로 그를 십자가에 처형 했을 때에, 그를 처음부터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3일만에 다시 살아서 나타났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이 이것을 예언했고, 1만개의(많은) 그에 대한 다른 놀라운 것들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붙은 이름에 따라 크리스천(그리스도인) 이라 불린 집단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존재한다).


-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8, 63. translated by 전투적무신론


1세기 저작물 중에서 유일하게 예수를 언급하는 부분으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다. 허나 저자인 요세푸스는 유대반란 당시 항복하여 역사가로써 지원을 받으며 저작 활동에 전념하였지만, 유대인의 배신자였기 때문에 그의 자료는 유대인들에게서 필사되고 읽혀진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


[ ] 부분은 최소한 이 부분만은 그리스도인들의 가필로 여겨지며, 문체나 단어가 요세푸스의 것이 아닌데다, 역사적 진술과는 거리가 먼 덧붙인 말이다.

( ) 부분은 요세푸스가 표현한 것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의역한 표현이다. 나머지는 직역.


회의론자들은 '예수 부분 자체가 조작이며 그것이 없어야 앞뒤 내용이 자연스레 연결된다' 라고 말하는데, 이 또한 신빙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부분만 제거해서 앞뒤를 연결한다면 내용이 부드럽게 이어지므로.


현재의 결론은 내용 중간중간에 삽입된 그리스도인들의 가필을 제거해서 최소한의 본문을 남기는 것으로 합니다. 


즉, '요세푸스가 진짜로 썼다면 이정도 본문은 진짜 있었을 것이다' 라는 부분입니다.


예수 부분이 조작 되었음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부분 조작이냐, 전체 조작이냐로 나누어져 있을 뿐. 물론 그것을 확정 지을 만한 사람이 없지요. 요세푸스는 지금으로부터 1900년 전 사람이니까. 타임머신 타고 요세푸스가 쓰고 있는 모습을 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건 어느 작품이든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래서는 논의의 진행이 안되고 서로가 허공에 짖을 뿐이니, 그런 말은 말장난이며 쓸데 없는 부분입니다. 즉 '조작 되었을 것' 이라는 표현이나 '조작 되었다' 라는 표현이나 지금 상황에서 단어 분석, 문체 분석, 내용 분석, 편집 분석 이라는 압도적 증거로 해당 가필을 제거한 마당이므로 둘 다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이겁니다.


원래는 '아마도 조작 되었을 것' 이라 표현해야 함이 옳지만, 지금은 학계 결론이 '조작 되었다' 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학계의 논쟁은 '부분 조작 vs 전체 조작' 의 구도로 되어있지, '조작 vs 조작 아님' 의 구도는 이미 끝났습니다.

심상법 교수의 '과부의 헌금' 해석을 반박함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9. 21. 03:09

심상법 교수는 '예장합동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로 


부산대학교(B.S.) 

부산고려신학대학원(M.Div.)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STM) 

University of STELLENBOSCH(Th.D.) 


를 나왔다고 한다.


내가 반박할 글은 "막12장 : 성전에서의 논쟁과 가르침 / 심상법" (두란노출판사 '마가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이고, 먼저 나의 글부터 읽고 뒷부분은 그 교수의 글에 반박을 달았다.


이 글은 본인의 글 http://militantatheism.tistory.com/1 에서 일부 퍼온 것이다. 원본에 일부 가감하였다.


  B)헌금을 마치 없는 상황에서도 전부를 내야하는 정도의 것으로 생각한다

(누가복음 21:1~4=마가복음12:41~4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거기에 렙돈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자기들의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이 구절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예수가 '액수나 비율이 중요한게 아닌, 헌금을 내는 마음가짐이 올바른 과부'를 보고 칭찬한 것 처럼 보인다. 이는 상당수 성경주석이 그렇게 적고 있는 것에도 한 몫 한다. 그러니 신자들은 자연스레 "xxx 목사님이 주석 단 거니까" 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유명한 성경주석들도 그렇게 적고 있다. 


이 구절의 최대 실수는 '문맥을 무시하고 읽었을 때'에 발생한다!


참고로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가 말한 이 성전은 '제2성전(헤로데 대왕 성전)' 이다.


마가복음에서는 11:27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와 13:1 에서야 성전에서 나간다.

누가복음에서는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정확하게 써 있지는 않다.

20:1부터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어느날 벌어진 설교라고 적고 있고 21:37에서 낮에는 성전에서, 밤에는 올리브 산에서 지냈다고 적혀있다.


어쨌든 설교의 배경은 '성전'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이 '과부의 헌금' 사건 바로 전 구절을 살펴보아야 한다.


누가복음 21장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시다(평행본문 마가 12:38-40)


45    모든 백성이 듣고 있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6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원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과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잔치에서 윗자리를 좋아한다. 

47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그들은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친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의 구절을 잘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과부의 헌금 사건은 율법학자를 비난하며 예시를 든 것이기 때문이다.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의 예시가 곧 생활비 전부를 넣게한 사건인 것이다.


2 렙돈 = 1 고드란트 = 1/64 데나리온

1 데나리온 = 노동자의 하루 임금 (마태 20:2) 이므로 일당 5만원이라 치고 계산하면 약 781원 정도이다.


쉽게 생각해, 1000원 한 장 헌금 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율법교사들은 이런것마저도 율법 운운하며 성전에 들어와 예물을 드리도록 해 가난한 과부의 돈을 꿀꺽 한 것이다.


이야기 구성을 다시 해보자.

예수 曰 "율법학자들의 율법강조를 조심해라. 율법학자들은 예복 입기, 장터에서 인사받기, 회당의 높은 자리 앉기, 잔치에서 윗자리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꿀꺽하면서★ 남에게 보여주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율법학자들은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말하는 와중에 성전에 있는 헌금함을 보았는데 부자들이 100만원 수표 내는 것과, 과부가 1000원 내는 것을 보았다. 이 헌금함은 성전에 출입했으니까 돈 내라는 전형적인 율법적인 장치였다) "부자들은 돈이 넉넉한 와중에 100만원 냈지만, 과부는 당장 돈이 없는데도 1000원을 내었다. (액수는 제쳐두고)저 과부가 제일 많이 넣었다" (부자는 100만원 내도 생활에 지장받지 않지만,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냈는데, 과부는 혜택을 받아야 함에도 율법을 운운하며 넣게할 정도로 더러운 놈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자기 수중에 돈이 별로 없는데도 전부를 넣은 가난한 과부를 칭찬한 것이 아니라, 혜택을 받아야할 과부들이 오히려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함에 대한 예수의 분노이다. 과부가 왜 혜택을 받아야 하는가는 원본글(※십일조의 진실)에 적혀 있으니 참고하라.


더구나, 만약 이 부분을 예수가 과부를 칭찬을 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야기 흐름을 깬다. 마가복음 11장~13장과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에 의하면 성전에 들어간 후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쫒았고, 그에 대해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권한에 대해 문제 삼았으며,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을 비유로 이야기 하자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이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시험을 했고, 사두개인들과는 부활 논쟁을 벌였으며, 논쟁을 본 율법학자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고,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였으며(이 와중에 과부의 헌금이 나온다), 성전을 나가는데 성전이 전부 무너질 것이라 말하고 종말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가르친다.


마가복음 11장부터 13장의 내용까지 살펴보았다. 요약문만 읽어봐도 예수의 목소리는 격앙되어있으며 흥분해있다. 예수는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고 얼굴은 찌푸려져 있다. 그리고 성전에서의 분위기는 매우 험악하고 난리통이다. 시골촌놈을 어떻게 잡아볼까, 죽여볼까 대제사장과 높은 사람들까지 나선다. 성전에서 들어와서 나가는 순간까지도 예수와 대제사장과 율법교사들은 서로가 얼굴을 붉히며 화가 나있다. 이 와중에 예수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두 절도 채 안되는 부분인 과부의 헌금을 칭찬했다는 것은 누가봐도 이상하다. 허나 많은 주석서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


그 대표격으로 예장합동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인 심상법 교수의 해석을 꼽아보겠다.


다음 내용은 두란노 출판사의 '목회와 신학' 이라는 월간지에 실린 내용을 모아서 출판한 'HOW주석-마가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라는 책에 있는 것이다. 이 책 소개에 의하면 '국내 최고의 전공자들이 필진으로 참여' 했다고 한다. 그중에 심상법 교수는 마가복음 12장에 대해 주석을 썼다.


내용 전문 중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와 '굵은 글씨'는 본인(전투적무신론)의 글이다.


"막12장 : 성전에서의 논쟁과 가르침 / 심상법"

4. 성전에서 서기관들과 가난한 과부(막 12:38-44)


이제 예수님은 두 종류의 극단적인 종교적 실천의 모습을 소개하심으로써 성전에서의 그의 사역을 종결짓고있다. 하나는 종교를 빙자한 서기관들의 그릇된 행동(중한 심판을 받을 행동)이라면 다른 하나는 무명의 가난한 과부의 헌신된 모습(칭찬 받는 기억될 행동)이다. 마가는 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한 서기관들의 잘못된(인간적) 가르침(12:35-37)에 이어 그들의 잘못된 행동(12:38-40)을 지적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선언한다(12:40). 이들에 대한 심판은 이미 비유를 통해 제시되어 졌다. 그리고 연이어 이들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리 성전에서 자기 모든 소유(삶) 곧 생활비 전부를 바친 한 가난한 과부의 헌신된 모습을 소개함으로써 다가 올 예수의 희생(죽음)의 참다운 의미를 예시한다. 결과적으로 이 여인의 행동은 기독론(예수의 죽음)의 예시임과 동시에 제자도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가난한 과부의 행동이 기독론의 예시며 제자도의 모델이라는 것에 대해 웃고간다. 애초에 쓰레기 해석으로 시작한 주석이다.


특히 이 여인의 모습은 서기관들의 모습(막 12:38-40)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서기관들의 모습은 성전제도의 타락한 모습(11-12장)과 관련되어있다. 결과적으로 성전 멸망의 요인은 이들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 있다(12:3-9, 40과 13:1-2). 이들의 모습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 회당의 상석과 잔치의 상좌를 원하는 것, 과부의 가산까지도 삼키는 것, 그리고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것이다. 이들 서기관들은 성전에서 올바른 예배의 시행과 함께 율법을 백성들에게 바르게 해석하고 설명함으로써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성전예배와 율법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며 확장하는 도구로 오용(남용)하였다. 


->전혀 대조를 이루지 않는다. 과부는 율법의 피해자이며,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한 율법학자들이 법을 운운하여 돈을 떼가는 것에 예수는 분노했다.


이처럼 성전에서의 예수님의 사역 중 마지막으로 소개된 가난한 과부의 모습은 11-12장에 나타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성전을 섬기는 이들 종교지도자들은 오히려 성전(종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채우는데(과부의 가산[家産]까지 삼킴) 혈안이 되어 있지만 이 가난한 과부는 그들과는 달리 자신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연보궤에 넣어 구제에 힘썼다. 사실 이 여인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미천한 행동에 불과하였다. 그녀의 신분(과부)이나 경제적 형편(가난함) 그리고 연보궤에 넣은 돈(두 렙돈=한 고드란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칠 수 있거나 무시해도 좋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같은 사람들의 관심이나 행동(눈에 띄는 긴 옷; 시장에서의 문안; 회당에서의 상좌; 잔치의 상석)과는 판이하게 달리 행동했다. 주님은 사람들의 눈에 별로 띄지 않는 한 가난한 과부의 헌신에 시선을 집중함으로써 다가올 자신의 희생을 예시한다.


->자신의 말 조차 이해를 못하고 있다. 성전을 이용하여 과부의 가산을 삼킨 사례가 과부의 헌금이거늘, 과부가 구제에 힘썼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 돈이야 말로 율법학자들이 오남용 했을 돈이다.


우리는 이 여인의 행동을 보면서 과연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강도의 굴혈`과 같은 성전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가? 우리가 기억할 것은 타락한 성전의 예배 가운데에서도 정결하고 헌신된 사람은 있다. 사사기의 시대에도, 아합의 시대에도, 그리고 암흑기의 포로 후기시대에서도 신실한 사람은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어두운 시대에 살면서 어두움을 한탄하기보다는 한 자루 촛불이 되어 어두움을 밝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말없이 헌신하는 가난한 과부와 같은 사람 말이다.


->가난한 과부가 모델이니까 우리도 그렇게 살자고 하는 해석은, 일단 내용에도 맞지 않으며 "우리도 교회에서 그만큼 많이 바치고 헌신합시다" 하는 투의 이야기다. 사기에 가깝다.


성전을 떠나시기 전에 끝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 가난한 과부의 행동을 언급하면서 그것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한 것(43-44절)은 과히 이례적이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무가치하고 보 잘 것 없이 보이는 이 가난한 과부의 놀라운(?) 행동 즉 그녀의 전적 헌신과 희생("자기 모든 소유"[o[lon to.n bi,on auvth/j=her whole life])을 주지시킴으로써 다가올 자신의 희생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 실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 알리고자 하였다. 사실 `자신의 모든 삶`(생계)을 연보궤에 던진 이 여인의 헌신적 희생의 행동은, 어느 학자(Wright 1982)의 지적처럼,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40절) 타락한 성전제도와 기득권자들의 희생물일 수 있는 것처럼 예수의 희생 역시도 역사의 지평 위에서는 성전의 기득권자들(종교지도자들)의 희생물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은 단순한 희생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을 주신 구원의 놀라운 행동이었다(10:45).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이렇게 타락한 제도 속에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계 모두를 바쳐야 하는 것(자발적이라 할지라도)은 결코 합리적인 행동일 수가 없다. 불의한 제도의 희생물처럼 보인다. 이점은 예수의 수난("많은 고난을 받고 [불의한/타락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의 예언에 대하여 베드로가 반응한 것(책망)과 동일하다(8:31-33). 그러나 성경은 예수의 이와 같은 죽음이 우리를 위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며, 예수는 이 계획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셔서 희생의 길을 가셨다. 여기서 독자의 귀에 메아리쳐 남아있는 것은 단락의 마지막에 언급된 [그녀의 마지막 남은 두 렙돈을 의미하는] "o[lon to.n bi,on auvth/j=her whole life"이란 표현이다.


->과부의 헌금을 예수의 희생과 일치시켜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있다. 중간에 Wright 라는 학자의 해석이 올바르다. (전문이 없고 출처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인지, 문맥상 정말 해석이 올바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이 'Wright'가 N.T.Wright 라면 성공회 주교이자 복음주의권의 최고학자다.) 그러나 이 교수는 그것을 인정치 않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맨 마지막에 그리스어를 언급하는데 아무 의미 없이 원문을 언급하는 것은 개신교의 무식을 드러내는 부분으로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런 행동을 한다. 그리스어를 아는체 하면서 언급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구나 하고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는 내용이 뭐냐면, ὅλον τὸν βίον αὐτῆς 를 언급한 것이다. 그중에 βίον의 원형 βίος를 'life' 로 해석하면서 그녀의 모든 삶을 바친 것 처럼 이야기를 썼는데 완벽한 사기다. βίος 는 첫째로 'life'의 뜻이 있지만, 이 경우에는 두번째 뜻 'that by which life is sustained, resources, wealth' 삶을 지속할 자원이나 부 의 뜻으로 쓰였다. 모든 성서 그리스어 사전은 두번째의 뜻에 괄호치고 이 구절을 써 넣었다. 사전도 찾아보지 않은 이런 거짓말을 어떻게 해야할까? '히브리어,그리스어 원문'을 언급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른채 쓰는 개신교인들이 많다는 점을 봤을 땐 놀랍지도 않다. 성서해석학의 교수가 말이다.


끝으로 제자들을 불러 이 여인의 행동을 그들에게 주지한 것(43절)은 제자도의 특별한 교훈으로 취급되어져야 한다. 이 여인의 행동(과 예수님의 행동)과는 달리 제자들은 어리석은 제도적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오히려 그를 배반(가룟 유다)하거나 부인(베드로)하거나 도주(다른 제자들)함으로써 자기들의 살길을 찾았다. 그러나 사실 불의한 세상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은 제도적 희생물(부끄러움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는 복음을 위한 희생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누구든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8:35). 가난한 과부는 불의한 제도 속에서도 자기의 생계 전부 곧 그녀의 모든 삶을 [다른 사람을 위해] 연보궤에 던졌다. 이것은 과부들의 가산까지도 삼키는 그 당시의 기득권자들(종교지도자들)의 행동과는 너무도 다른 행동이었다. 이점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예수님의 모습(막 10:45) 속에서도 나타났다. 


->역시 방금의 연장이다.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행동의 예시로 바로 다음줄에서 예시를 들어주고 있는데도, 다른 부분을 언급하면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 과부의 아름다운 헌신의 행동은 앞으로 다룰 향유 부은 여인의 모습(14:3-9)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 둘의 헌신에서 바친 것들의 외관적 가치는 너무도 다르지만 - 하나는 보 잘 것 없는 두 렙돈이고 다른 하나는 300데나리온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지만 - 그러나 그것은 모두 `자기부인`(self-denial)의 행동이었다(Malbon 1991:599. cf. 막 8:34). 특별히 마가복음에서 무명의 여인들의 모습들(혈류증 여인[5:24-34]이나 수로보니게 여인[7:24-34] 그리고 가난한 과부[12:41-44]와 향유 부은 여인[14:3-9])은 제자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생명을 주시는 능력에 대한 담대한 믿음`에서부터 `예수님의 자기부인의 희생적 죽음에 대한 자기부인과 희생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그 당시에 천한 여인들이지만 그러나 그들의 `믿음`과 `헌신`은 정말 고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그들의 제자도는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10:31)는 말씀을 여실히 입증되었다. 


->과부를 보고 예수는 속에서부터 욕이 우러나왔을 사건임에도 '과부의 아름다운 헌신' 이라 쓰레기 해석을 해놓고는 엉뚱한 사건과 연결짓고 있으며 '고귀한 것'이라 평하고 있다.



심상법 교수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면 이는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약학 교수이며, 더군다나 정교수이다. 또 '신약 주해를 위한 신약 서론' '성경해석학 서론' 등을 집필하고 예비 목회자인 신학생을 대상으로 '신약성경 해석학'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석학을 강의하고 책까지 출판하며 마가복음에 대한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평생을 해석에 목을 매는 사람이 해석 방식과 해석 능력이 X판이며 방법론 부터 X판이라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시사한다.


그 문제점은 곧 총신대학교 및 예장합동의 문제이다.


마가복음 12장의 주해 전문을 보고 싶다면,

심상법 교수의 개인홈페이지

http://www.ebible.or.kr./board/view.php?id=info4&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

를 방문하기 바란다.

한국 개신교 1,2위 두 교단의 극과 극을 달리는 행보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9. 19. 20:24


한국 개신교 1,2위 두 교단의 극과 극을 달리는 행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일명 예장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일명 예장통합)


두 교단은 원래는 하나의 교단이었으나 '1950년대에 있던 WCC 가입여부'로 갈라선 교단으로 개신교 신자와 그 규모로 1,2위를 다투는 곳이다. 두 교단의 최근 극과 극을 달리는 행보를 소개하고자 한다. 워낙 유명한 것들이라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예장합동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65405

2013년 7월 18일

예장합동은 교단헌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교인으로서 6개월 이상 예배에 출석하지 않거나 십일조 헌금을 드리지 않는 교인은 권리가 자동 중지된다(3항)' 라는 부분을 삽입하고자 하여 논란을 빚었으며, 최소한의 조치라는 둥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들이 절대적 권위로 믿고 따르는 성경에 의하면 '십일조'는 교회에선 존재자체가 없어진 것이므로 비성경적인 사이비의 주장이다.

예장합동은 그동안 이단판정을 자신들 마음대로 내리고 있는데, 스스로가 사이비(이단이 아님)의 짓을 하고 있다.



*예장통합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66856

2013년 9월 12일

예장통합은 정기총회에서 '세습방지법(담임목사직 대물림)'을 논의하였다.

장로들은 '헌법개정은 절차가 필요한데다 개정한지 얼마 안되었고, 개교회가 정해야할 문제' 라고 반대를 주장했으나 오히려 목사들이 '무조건 찬성'을 외치면서 회의장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84%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으며, 헌법개정은 나중에 하도록 하기로 하고 세습방지를 즉각시행하기로 하였다.



->예장합동이 변명을 늘어놓기를, 총회에서 2/3 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노회에서 찬성해야 해서 교단헌법개정까지 총 2~3년이 걸린다며 안될 가능성도 있다고 구구절절 이야기 할때, 예장통합은 구체적 법안도 없고 헌법개정도 안했지만 통과했으니 즉각시행하고 교단헌법개정은 추후에 하기로 한다고 이야기 했다.


만약 당신이 개신교인이라면, 어느 교단, 어느 교회, 어느 목사를 신뢰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