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십일조의 허상과 진실) ver 3.5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3. 27. 21:06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사용한 성경은 개신교 새번역판.


'십일조를 내야하는가'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민하고 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하건대 십일조는 내지 않아도 된다.


일단 십일조는 원래 구약의 제도이고, 타락한 중세 교회가 부활시켰던 것이고, 그것을 폐지한지 오래며, 현재는 구약율법의 철저한 준수를 요구하는 여호와의증인 마저 없애버렸다. 남아있는 곳은 미국의 소수 개신교 교단(주로 오순절)과 대한민국의 다수 개신교 교단(장로회, 오순절 등) 뿐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1)낼 곳도 받을 사람도 없다


십일조는 원래 세금으로 국가에 바치는 것이었으며 그것의 사용처는 레위지파 였다. 13번째 레위지파는 성직자 그룹으로 다른 12지파와 달리 땅도 받지 못하고 일도 하지 못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든 성직 업무를 담당하는 대신에 12지파에서 1/10을 떼어 그들에게 생활비를 댔던 것이다(1차 십일조). 또 바치는 사람을 위해 따로 떼어놓아 바치는 사람을 즐기게 해주는 것이었으며(2차 십일조), 또 그것은 과부와 고아 같은 소외된 계층을 위해 사용되어야만 했던 제도이다(3차 십일조). 이는 구약의 율법이었다.


따라서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인에 의해 무너져 이스라엘-유다 국가 자체가 지구상에서 없어진 후 유다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이 약 1900년 후에 전쟁으로 땅을 빼앗아 현대 이스라엘을 건국했지만 그들에겐 성전이 없고 레위지파가 없다. 현대 유다교는 1세기 중반의 성전 유다교가 아니라 1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랍비 유다교다. 따라서 내야될 장소도, 내야될 의무도, 받을 사람도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십일조는 개신교에서 걷고 있는데 내는 곳은 교회(예배당)이다. 하지만 내야될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며, 교회(예배당)도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다. 더구나 세금은 국가에 내는 것이지 교회에 내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십일조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신정국가 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정국가도 아니고, 교회는 국가가 아니다. 더러 개신교 사람들은 목사를 성직자라 부르며, 교회 건물을 종종 성전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그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다.


첫째, 종교개혁자들은 만인제사장설(특별한 성직계급은 없고 그리스도인 모두가 제사장이자 성직자이며, 유일한 최고의 대제사장은 예수 뿐이다)을 받아들였고 그에 따라 설립된 것이므로 목사는 레위지파 처럼 특별한 성직자가 아니다. 아울러 장로회의 경우 목사의 직위는 평신도인 장로 중 '가르치는 장로' 이므로 평신도 이다. 


둘째, 성전이려면 기본적으로 제사가 있거나 성전에서만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만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다. 예배당 자체도 비성경적인 것으로 초대교회는 집에서 모였다. 더구나 개신교의 예배 및 기도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굳이 예배당이라는게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성전이 아니다. 성전이라는 표현 역시 잘못된 것인데,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를 경우 예수의 구속사역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므로 이단보다 훨씬 심한 표현이다. 아예 신약 자체를 폐기하겠다는 표현이기 때문.


셋째, 세금은 국가에 내는 것이며 교회는 국가가 아니다. 십일조를 거두었던 고대 이스라엘-유다는 신정국가 였다. 그러기에 율법이 곧 법이어서 국가에서 십일조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넷째, 십일조를 거두었던 서양 그리스도교들은 전부 폐지한지 오래되었다.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이라는 말을 한국 개신교에서는 입에 달고 살지만, 원조인 서양은 비성경적이라며 폐지한 것에 주목하라. 십일조는 아니나 교회세를 걷는 외국의 경우 1~2%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여 교회에 주는 것이지, 교회가 직접 걷는 것이 아니다.



2)내야 한다는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거나 사기를 치는 구절들이다


  A)예수가 십일조를 언급했다고 주장한다

복음서에 십일조는 총 3회 등장한다(누가18:12, 누가11:42=마태23:23). 하지만 뒤의 두개는 말한 배경은 다르나 내용이 같은 병행구절이므로 언급은 2개이다. 2개 중에 1개는 예수의 말이 아니라 바리새인이 '자신이 율법을 이렇게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도중에 드러내기 위해 한 말이다.


(누가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십일조의 근거가 될 수 없고, 예수의 언급인 누가11:42=마태23:23 를 살펴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쉽게 말해, 예수 曰 "이 쓰레기들은 율법 지키기는 칼 같이 지키면서 율법의 진정한 의미는 쏙 빼 먹는다! 십일조를 하면서 정의,자비,신의 같은 의미를 되새기랬지 언제 그것만 지키라고 했느냐!" 라고 마태복음 23장 1~36절 까지 길게 바리새인을 비난하는 것 중 일부이다.


이것을 무작정 십일조 하라는 구절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구약시대'이며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고 레위지파도 있었으므로, 낼 장소와 받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예수가 죽고 '신약시대'가 시작된지 40년 후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가 없어져 버렸으므로 예수 당시에는 내는게 맞았고, 지금은 낼 곳이 영원히 없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고 죽어야 신약이 시작되는 것이다! 누가 22:20-'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율법교사와 바리새인은 예수가 가장 많이 비난하는 집단이다. 예수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 그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그 따위 것 다 필요없고 마음가짐이나 똑바로 하고 율법의 본래 의미나 알고 살라고 설교했는데, 목사들이 뭔데 율법을 부활해 철저히 준수 할 것을 요구하나? 더구나 율법을 전부 부활하는 것도 아니고 십일조 '만' 부활하나?


더구나 예수가 언급한 십일조의 내용물은 박하,회향,근채로 모두 '땅에서 난 산물'이며(구약에서 '땅에서 난 산물'의 1/10을 바치라고 했다) 돈이 아니다. 따라서 돈을 바치는 것은 십일조가 아니다. 더구나 박하,회향,근채는 향신료로써 원래 십일조의 대상이 아니다. 바리새인이 자신은 이런 잡 농산물에도 철저히 십일조를 한다며 자랑을 했기에 예수가 위선자라고 욕을 퍼부은 것이다.



  B)헌금을 마치 없는 상황에서도 전부를 내야하는 정도의 것으로 생각한다
(누가복음 21:1~4=마가복음12:41~4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거기에 렙돈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자기들의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이 구절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예수가 '액수나 비율이 중요한게 아닌, 헌금을 내는 마음가짐이 올바른 과부'를 보고 칭찬한 것 처럼 보인다. 이는 상당수 성경주석이 그렇게 적고 있는 것에도 한 몫 한다. 그러니 신자들은 자연스레 "xxx 목사님이 주석 단 거니까" 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유명한 외국의 성경주석들도 그렇게 적고 있다. 

이 구절의 최대 실수는 '문맥을 무시하고 읽었을 때'에 발생한다!

참고로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가 말한 이 성전은 '제2성전(헤로데 대왕 성전)' 이다.

마가복음에서는 11:27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와 13:1 에서야 성전에서 나간다.
누가복음에서는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정확하게 써 있지는 않다.
20:1부터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어느날 벌어진 설교라고 적고 있고 21:37에서 낮에는 성전에서, 밤에는 올리브 산에서 지냈다고 적혀있다.

어쨌든 설교의 배경은 '성전'이다.
문맥 파악의 기본부터 하기 위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이 '과부의 헌금' 사건 바로 전 구절을 살펴보아야 한다.

누가복음 21장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시다

45    모든 백성이 듣고 있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6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원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과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잔치에서 윗자리를 좋아한다. 
47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그들은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친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의 구절을 잘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과부의 헌금 사건은 율법학자를 비난하며 예시를 든 것이기 때문이다.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의 예시가 곧 생활비 전부를 넣게한 사건인 것이다.

2 렙돈 = 1 고드란트 = 1/64 데나리온
1 데나리온 = 노동자의 하루 임금 (마태 20:2) 이므로 일당 5만원이라 치고 계산하면 약 781원 정도이다.

쉽게 생각해, 500원 2개 헌금 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율법교사들은 이런것마저도 율법 운운하며 성전에 들어왔으니 예물을 드리도록 해 가난한 과부의 돈을 꿀꺽 한 것이다.

이야기 구성을 다시 해보자.
예수 曰 "율법학자들의 율법강조를 조심해라. 율법학자들은 예복 입기, 장터에서 인사받기, 회당의 높은 자리 앉기, 잔치에서 윗자리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꿀꺽하면서★ 남에게 보여주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율법학자들은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말하는 와중에 성전에 있는 헌금함을 보았는데 부자들이 100만원 수표 내는 것과, 과부가 1000원 내는 것을 보았다. 이 헌금함은 성전에 출입했으니까 돈 내라는 전형적인 율법적인 장치였다) "부자들은 돈이 넉넉한 와중에 100만원 냈지만, 과부는 당장 돈이 없는데도 1000원을 내었다. (액수는 제쳐두고)저 과부가 제일 많이 넣었다" (부자는 100만원 내도 생활에 지장받지 않지만, 과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때문에 생활비 전부를 예물로 냈는데, 과부는 혜택을 받아야 함에도 율법을 운운하며 넣게할 정도로 더러운 놈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자기 수중에 돈이 별로 없는데도 전부를 넣은 가난한 과부를 칭찬한 것이 아니라, 혜택을 받아야할 과부들이 오히려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함에 대한 예수의 분노이다. 과부가 왜 혜택을 받아야 하는가는 아래(※십일조의 진실)에 적혀 있으니 참고하라.

더구나, 만약 이 부분을 예수가 과부를 칭찬을 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야기 흐름을 깬다. 마가복음 11장~13장과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에 의하면 성전에 들어간 후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쫒았고, 그에 대해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권한에 대해 문제 삼았으며,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을 비유로 이야기 하자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이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시험을 했고, 사두개인들과는 부활 논쟁을 벌였으며, 논쟁을 본 율법학자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고,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였으며(이 와중에 과부의 헌금이 나온다), 성전을 나가는데 성전이 전부 무너질 것이라 말하고 종말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가르친다.

마가복음 11장부터 13장의 내용까지 살펴보았다. 요약문만 읽어봐도 예수의 목소리는 격앙되어있으며 흥분해있다. 예수는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고 얼굴은 찌푸려져 있다. 그리고 성전에서의 분위기는 매우 험악하고 난리통이다. 시골촌놈을 어떻게 잡아볼까, 죽여볼까 대제사장과 높은 사람들까지 나선다. 성전에서 들어와서 나가는 순간까지도 예수와 대제사장과 율법교사들은 서로가 얼굴을 붉히며 화가 나있다. 이 와중에 예수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두 절도 채 안되는 부분인 과부의 헌금을 칭찬했다는 것은 누가봐도 이상하다. 허나 많은 주석서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

대표격으로 내가 예장합동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정교수 심상법(신약학, 성서해석학) 교수의 해석을 비판한 것이 있으니 자세히 보려면 링크를 따라가기 바란다.


  C)십일조하면 복 받는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필수로 알아야 할 사항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의 '하나님의 것을' '나의 것을' 같은 말은 히브리어 원문에 없다. 히브리어 원문은 '하나님을' '나를' 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의 것을'은 자의적인 해석이다. 표준새번역(1993)과 그의 개정판인 새번역(2001)도 위와 같이 번역하고 있는데 헛소리 번역이다. 오역일 뿐만아니라, 내 생각에는 일부러 이용해 먹으려고 이렇게 번역한 듯 싶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개신교 성경 전부 ('대한성서공회' 개역한글,개역개정,(표준)새번역, '생명의 말씀사' 현대인의성경,'두란노' 우리말성경, '아가페' 쉬운성경) 일부러 오역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동번역성서(1977)은 가톨릭의 눈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나를' 이라고 옳게 번역했으나, 8절에서 '소출에서 열의 하나(십일조)' 만 언급하고 '예물(헌물)'을 빼먹는 실수를 했다. 공동번역 개정판에서도 개정되지 않았다.


현재 이 단락의 제일 옳은 한글번역은 가톨릭 성경(2005)이다.

(※참고로 대표적인 영미권성경 NIV, KJV, NASB, NJB, RSV 모두 옳은 번역을 했다.)


따라서 이 부분만은 가톨릭 성경을 사용할 것이다.


(가톨릭 성경 말라키 3장)

6 나 주님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 너희는 조상 때부터 나의 규정에서 벗어나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러나 너희는 “어떻게 하면 저희가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고 말한다.

8 사람이 하느님을 약탈할 수 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약탈하면서 “저희가 어떻게 당신을 약탈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십일조와 예물이 아니냐!

9 너희 온 백성이 나를 약탈하고 있으니 저주를 받으리라.

10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하늘의 창문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넘치도록 쏟아 붓지 않나 보아라.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 떼를 꾸짖으리라. 그래서 그것들이 너희 땅의 소출을 망치지 않고 너희 밭의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12 그러면 모든 민족들이 너희를 행복하다고 하리니 바로 너희가 기쁨의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말라기 3장의 해석은 너무나 중요한데, 왜냐하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며 안 내는 사람은 도둑질하는 사람"이라 가르치면서 신자들의 마음에 죄를 심어줌에 있다. 십일조 이야기만 나오면 거품물고 들이미는 구절이 이 구절이기 때문에 가장 잘 이해해야 한다.


~의 것 이라고 해석하는 목사나 신학자가 있다면 당당하게 배틀을 신청하라. 가톨릭의 성경을 보는 개신교 목회자는 거의 없을테니, 영미권 개신교 성경 NIV나 KJV만 들이밀어도 할말이 없다. 문장도 간단하기 때문에 누구나 해석이 가능하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된 NIV 성경(개신교)으로 해당 구절을 확인해보면,

"Will a man rob God? Yet you rob me. "But you ask, 'How do we rob you?' "In tithes and offerings.

You are under a curse--the whole nation of you--because you are robbing me.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신을 강도질 할 수 있느냐? 그러나 너는 나를 강도질 했다. "하지만 너는 '우리가 당신을 강도질 할 수 있나요?' 하고 묻는다" "십일조와 바치는 예물이다"

너는 저주 아래 있을 것이다--너희 나라 모두--왜냐하면 너는 나를 강도질 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3장의 이 단락을 쉽게 말함과 동시에 당시의 이 말이 나온 시대배경과 말라기 전체의 내용을 괄호속에 집어 넣어 함께 설명하겠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4장 밖에 안되는 말라기를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말라기 3장 요약

야훼 曰 "내 백성아 제발 내게 다시 돌아와라"

이스라엘 曰 "(아니 이미 유배 갔다가 돌아와서 성전도 지어 당신 섬기고 있구만)돌아가려면 뭘 해야하나요? (유배 갔다왔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나라가 휘청거리니까 이런 힘든 상황 벗어나게 복이나 내려줘요)"

야훼 曰 "니들은 (제일 쉬운 율법인)십일조 부터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복을 달라고 하냐! (양심도 없는 것들아!) 땅의 소산물에 십일조하면 내가 그 땅의 소산물의 십일조가 나온 땅을 비옥하게 해줘서 복 줄테니까 다시 나를 제대로 섬겨라! (농산물이 별로 안 난다고 1/10보다 적게 내어, 나를 섬기기는 커녕 떼어 낸걸 자기들 먹고사는데 쓰면서 복 달래? 그것부터나 똑바로 해라! 제일 쉬운 율법부터라도 똑바로 지키고 내가 복 주나 안 주나 봐라!)"


이걸 이해하려면 말라기 1장부터 보면 더 확실하다.

(말라기 1장은) 성전을 새로 세워 제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백성들이 더러운 빵과 눈멀고 병든 짐승을 바치고, 훔친 걸 바치는 등 개판이었다. 원래는 제일 깨끗한 것과 제일 좋은 것을 바쳐야 함에도 대충대충 하니까 야훼는 나는 너희들이 싫다고 말하며 제사 다 필요없고 성전 다시 닫으라 한다.

(말라기 2장은) 백성들이 하도 율법을 편파적으로 지키길래 한번 바빌론 유배라는 벌을 받게 한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혼하지 말라니까 이혼이나 하고, 우상숭배하는 여자들과 결혼이나 하는 등 개판이나 치고 있다고 야훼가 쓴소리를 한다.

(말라기 3장은) 레위지파를 깨끗하게 해주어 올바른 제물을 바치게 할 것이며, 악인은 심판하겠다. 그러면서 십일조가 나오고, 의인과 악인을 구별해 의인을 아끼겠다고 한다.

(말라기 4장은) 율법을 지키라고 강조하면서 악인을 심판하겠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해당 구절과 말라기 전체의 내용은 십일조를 그리스도교에서 내냐 마냐와는 전혀 상관 없는 구절이 되겠다.


더불어, 개신교의 관점에선 '돈'의 십일조를 하면 뻥튀기 시켜 자신의 재산이 몇배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미국 석유왕 록펠러 이야기를 든다. 심지어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록펠러' 라는 책도 있는데, 자신이 처음엔 회계장부를 쓰면서 십일조를 하다가 재산이 많아지자 40명의 회계팀을 구성해 십일조를 냈다고 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본문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말라기 3:10에서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왔으니 터전도 도구도 제대로 없고, 농사도 제대로 안되고 하여 먹고 살 길은 막막하니까 하나님께 바칠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고 남은 것들로 근근히 살아갔던 것이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대해 실망스러운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진짜 농사가 잘 되게 해주는지 "나를 시험해보아라" 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절인 11절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예 본문을 10절 까지만 읽고 십일조 설교를 하는 설교가 대부분이고, 한 단락인 12절 까지 읽기는 하나 11절과 12절에 대해선 침묵하는 설교가 소수이다. 그 이유는 현금 십일조에 대해 독이 되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말라기 3: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 떼를 꾸짖으리라. 그래서 그것들이 너희 땅의 소출을 망치지 않고 너희 밭의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 라고 한 것이다. 개신교의 논리라면, '돈'을 뻥튀기하는데 왜 뜬금없이 메뚜기 떼로 인해 농사가 망쳐졌으니, 메뚜기를 통제하여 농사가 잘 되게 해준다는 것인가? 왜냐하면 개신교의 논리로는 이 구절은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 메뚜기, 땅, 포도나무, 열매 같은 명사들은 전혀 다른 것에 비유한 것이 아니다. 십일조의 대상은 '농산물' 이기 때문에 농사가 망쳐졌으니 농사가 되게 해주는지 안해주는지 십일조 제대로 하고 하나님을 시험해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십일조를 제대로 안해서 생계가 곤란했던 레위지파 사람들이 성직업무를 때려치우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느헤미야 13장).



※번외로 이 구절의 오역에 대한 자세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말라기 3:8~10

(사용한 성경은 개역개정판. 개역한글에서 도적->도둑 으로 개정했을 뿐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구절을 아무 생각없이 읽다보면 십일조와 봉헌물은 '하나님의 것'인데 사람이 도둑질 한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이 구절은 대한민국 개신교 성경들('대한성서공회' 개역한글,개역개정,(표준)새번역, '생명의 말씀사' 현대인의성경,'두란노' 우리말성경, '아가페' 쉬운성경)이 단체로 변개한 구절이다!


특히 8절과 9절에서 굵은 글씨로 표시해 둔 '~의 것'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은 물론이거니와 기타 다른 나라말 성경들 모두 '그런 표현 없다'.


말라기 3:8~9 히브리어 원문

היקבע אדם אלהים כי אתם קבעים אתי ואמרתם במה קבענוך המעשר והתרומה 

במארה אתם נארים ואתי אתם קבעים הגוי כלו


이 부분에서 칼 동사 קבע 의 번역이 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대부분 '강도질하다' 로 번역했다. 하지만 원어의 의미를 반영하자면 '숨기고 속여서 빼앗는다'는 의미다.


영어 성경 NJB(가톨릭)으로 확인해보면, 가장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를 잘 살린 번역이다. 칼 동사 קבע 를 속이다(cheat)로 번역하였다.

Can a human being cheat God?" Yet you try to cheat me! You ask, "How do we try to cheat you?" Over tithes and contributions.

A curse lies on you because you, this whole nation, try to cheat me.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신을 속일 수 있느냐?" 그러나 너는 나를 속이려 했다! 너는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속이나요?"하고 묻는다. 십일조와 예물이다.

너에게 저주가 내릴 것이다, 이 온 나라에게, 왜냐하면 나를 속이려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번역자의 몫은 개인적 의견(또는 교단,교파의 의견)을 번역할 때 다는 것이 아닌, 원문 그대로의 느낌과 의미를 얻을 수 있도록 언어에 맞게 번역하도록 노력함에 있다. 이를 지키지 못했으면 번역자의 자질이 좋지 못함은 분명하다. 


아울러 대한민국 목사들이 심심하면 강단에 서서 히브리어 원문이 어쩌고 원어가 어쩌고 언급하는데, 이런 것이야 말로 "히브리어 원어는 이런데 원어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고 이야기 해야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명사를 히브리어로 말하면서 자신이 잘 아는 척 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중에 목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라. 대부분 히브리어, 그리스어 사용은 쓸데없는 명사에다 대고 하지, 중요한 동사에 하지 않는다.



  D)십일조는 율법 이전부터 존재한 것이라 주장한다

창세기 14:17~24 아브라함(원래 이때는 이름이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1/10을 주었으니 율법 이전부터 존재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히브리서 7장을 추가해 주장하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의 법이나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 자기 입맛대로 골라선 안된다. 율법 이전의 전통이자 규례인 십일조를 지킨다면 당연히 할례를 받아야 하며, 짐승의 엉덩이뼈의 큰 힘줄을 먹어선 안된다. 더구나 자손이 없으면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아이를 낳아야 하고, 노예 제도를 지지해야 하며, 일부일처제를 부정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1/10을 준 것은 십일조 제도도 아니었고, 1회성에 그친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1/10 바친 사건과 달리 십일조 제도는 어떤 것을 내야하는지, 언제 내야 하는지, 사용처는 어때야 하는지가 명확했다.


히브리서 7장 을 살펴보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히브리서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히브리인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레위지파의 제사장 체계를 다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레위지파 제사장 체계보다 멜기세덱 제사장 체계가 더 훌륭함을 강조 하는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정리하여 설명하겠다.


레위지파 제사장 체계는 족보도 있으며 시작과 끝도 있지만, 멜기세덱은 그런 것도 없다. 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하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데 그 조상이 멜기세덱에게 바쳤을 정도이다! 레위지파 중에서 일부가 제사장이 되었고, 제사장은 레위지파로부터 또 십일조를 받았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레위지파도 아니고 그 일부의 제사장 계통도 아닌데 십일조를 받았다. 그러므로 레위지파 제사장 체계보다 멜기세덱 제사장 체계가 더 훌륭하다! 한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1/10을 줄때는 아브라함의 허리(또는 몸으로 번역, 정액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해석은 약간 이상하다. 고대 사람들의 생각은 정액 개념까지 가지 못했으니까.)에 레위가 있었으니 레위도 멜기세덱에게 바친 꼴이다! 시편 110편에도 표현하듯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했다. 영원한 제사장, 죽지 않는 제사장, 대제사장으로써 제물을 대신 바쳐주는 제사장, 그러면서 그 자신이 제물이된 제사장, 혈통으로 제사장이 아닌 제사장,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이시다!


내용이 이해가 되는가? 히브리서 7장의 강조와 설명은 십일조가 아니라 '진정한 제사장은 예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당 구절도 십일조를 내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더구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1/10 준 것은 '전리품'이다. 전리품에 대한 율법은 1/10 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전통이 신이 직접 말해준 율법보다 앞선다는 말인가?


민수기 31:25~30

2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6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집안 우두머리들과 함께 전리품의 수와 포로로 잡아온 사람과 짐승의 머리 수를 세어라.

27 너는 전리품으로 가져 온 것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반은 전쟁에 나갔다 온 군인들에게 주고, 반은 모든 회중에게 주어라.

28 전쟁에 나갔다 온 사람들에게서는 나 주에게 바칠 세금 몫을 떼어 내어라. 사람이든 소든 나귀든 양 떼든, 그 오백분의 일을,

29 그들에게 나누어 준 절반에서 떼어 내어, 나 주에게 바치는 제물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어라.

30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누어 준 절반에서는, 사람이든지 소든지 나귀든지 양이든지, 그 어떤 가축이든지, 오십분의 일을 떼어 내어 주의 성막을 보살피는 레위 사람에게 주어라."


마찬가지로 창세기 28:10~22 에서 야곱이 자신을 지켜준다면 1/10을 바치겠다는 약속일 뿐. 그것을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면 곤란하다. 더구나 바쳤는지 안 바쳤는지 결과를 알 수 없다. 나오지 않는다.



3)낸다고 하더라도 사용처가 잘못 되었다


십일조는 제사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레위인과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고아,과부와 같은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십일조는 소외된 이웃에게 사용하는 양이 극히 적다고 조사된 바 있으며, 거의 예배당 건립에 돈을 쓰거나 담임목사와 그 가족들 어깨에 힘주려는데 사용되고 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던 개신교가 애초에 존재자체가 없던 예배당을 짓는다는 것은 명백히 사기이다. 또 십일조를 걷어 그런 곳에 쓰라고 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목사는 레위지파 성직계급이 아니므로 받아 쓸 권리가 없다.



4)낸다고 하더라도 매달 걷는 것은 잘못 되었다


신명기 14:22 당신들은 해마다 밭에서 거둔 소출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밭에서 거둔 소출(곡식,포도주,기름)'의 1/10을 1년마다 예루살렘에 내야 한다. 또 1년마다 1/10을 따로 떼어 자신과 그 가족끼리 먹고 마시며 즐기는데 썼어야 한다. 그리고 3년마다 또 다른 1/10을 모아 별로 받은게 없는 레위인과 소외계층(고아,과부 등)을 위해 쓰는 것으로 되어있다. 농사와 목축은 절대 1개월 만에 만들어 낼 수 없으므로 당연한 이야기이다. 허나 현대의 한국 개신교는 '매달' 걷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 십일조의 전통을 지킨다 하더라도 1개월에 1번 현금 월급의 십일조는 그냥 헛소리다.


원래는 곡식,포도주,기름(팔레스타인 지역의 3대 농산물) 정도에나 붙던 세금인 십일조가 나중에는 '기른 가축'에게도 십일조가 적용되었으며(레위 27:32), '박하,회향,근채'와 같은 잡 농산물에도 적용되었다(마태23:23).


한편 실질적으로 십일조를 걷어 사용하는 것에 이스라엘 전체가 삐걱거렸었다. 바빌론 유배이후 명확한 규례 보단 뭉뚱그려 사용되고 걷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제대로 안 걷어져서, 심지어 레위인들이 성직업무를 때려 치우고 일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내용은 느헤미야 13장에 기록되어있다. 맨 밑에서 살펴볼 것이다.



5)낸다고 하더라도 돈을 걷는 것은 잘못 되었다


(신명기 12:17) 당신들이 십일조로 바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서원하고 드린 갖가지 서원제물과 자원제물과 높이 들어 바치는 곡식제물은, 성 안에서는 먹을 수 없습니다.

(신명기 14:23) 당신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처음 난 소와 양의 새끼와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서, 주님 앞에서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느헤미야 13:5) 그런데 그가 도비야에게 큰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 방은 처음부터 곡식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주려고 십일조로 거두어들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제사장들의 몫으로 바친 제물을 두는 곳이다.

(역대기 31:6) 유다의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 왔고, 주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릴 물건의 십일조를 가져 왔다. 이렇게 가져 온 것을 차곡차곡 더미가 되도록 쌓았다.


무엇을 십일조 해야하는지 예를 들어 써주고 있다. 곡식, 포도주, 기름, 소, 양 처럼 '땅에서 난 산물' 혹은 '잘 기른 짐승' 이다. 돈이 아니다.


지금은 화폐로 거래하니까 화폐로 내는게 맞지 않느냐는 반박이 있을지 모르나, 화폐는 창세기부터 통용되면서도,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모두 화폐로 십일조 낸 사례나 규례가 단 한개도 없다! 


창세기만 언급하자면,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 몇 세겔을 주었는가? 400세겔이다. 십일조를 바쳤다고 주장하던 아브라함도 돈으로 아내를 묻을 밭을 샀다. 또 형제들이 요셉을 몇 세겔에 팔았는지 잊었는가? 마치 돈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개신교의 작태를 보라.


화폐를 제출한 사례는 사도행전의 신약시대에 재산을 모두 화폐로 바꾸어 '공동재산'으로 사용한 경우이다.


화폐를 쓰는 규정은 신명기 14:22~29 너무 멀어서 가지고 갈 수 없다면, 돈으로 바꾼 후, 돈으로 '구매를 하고 사용하라' 하였다. '돈으로 내라'가 아니라. 더구나 그 경우 세금으로 내는 십일조가 아니었다(2차 십일조).


더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예수는 마태23:23(=누가11:42)에서 십일조는 박하,회향,근채를 언급하고 있으며 모두 '땅에서 난 산물'이다. 그렇게 십일조를 화폐로 내는게 중요했다면 예수가 돈으로 내라고 하거나 왜 돈으로 하지 않느냐고 언급했었을 것이다. 또는 율법에 그리하라고 애초부터 써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유다 역사상 화폐로 낸 적은 없으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도 원래는 농산물로 받다가 벌이를 늘리고 싶어 타락한 시대에 와서야 돈으로 내라고 규정을 바꾸어 걷어들인게 현대 십일조의 기원이다. 착각하지 마라.



6)신약의 돈개념은 십일조가 아니라 공동재산이다


(사도행전 2:24~25)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사도행전 4:32~35)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중략)..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공동재산으로 사용했고,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가까웠다.


(사도행전 5:1~11) 요약하자면, 공동재산으로 쓰려고 모두가 전부를 내놓을때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일부를 떼어서 내놓았다. 그것을 베드로가 호통치자 둘 모두 야훼를 속인 죄로 죽었다. 사실 십일조 보다 더 부담스러운 전통이다. 왜 이 전통을 숨기려하고 십일조를 부활하려 하는가? 왜 이 구절은 강단에 서서 설교하지 않는가?



7)사도 바울은 마음에 정한대로 내라고 했다


고린도후서 9:7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자기가 내고 싶은 대로 내는 것이지 특정 비율이 아니다. 더구나 설령 현대의 현금 십일조를 낸다한들 억지로 십일조를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지 않을 것이다. 1%를 내든, 10%를 내든, 100%를 내든 마음에 없었다면 그것은 가짜 헌금이다. 그저 남에게 보이기 좋아한 바리새인과 다른 것이 전혀 없다. 


고린도전서 16:2 매주 첫날에, 여러분은 저마다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해 두십시오. 그래서 내가 갈 때에, 그제야 헌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걸 보고 혹시? 할지 모르겠는데, 어지간히 글을 못 읽지 않는 이상, 누구에게나 일괄적인 비율로 저축하는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헌금모금 개념은 연보이며, 그것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 당시에는 흉년과 기근이 들어 벌이가 없어진 시대이다. 그래서 모교회를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에 쓴 것이다. 바울이 쓰거나 예배당 건설이 아니다. 바울이 다른 사람을 시켜 보내겠다고 하면서 자기도 같이 가는게 마땅하면 같이 가겠다고 하고 있다.





※십일조의 진실

십일조에는 1,2,3차 십일조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차 십일조만 알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십일조 제도의 진실을 신자들에게 말했을 경우, 무언가 독이 되었던 것이 분명할 터. 1,2,3차 십일조는 본인이 직접 분류한 것이므로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1차 십일조

-> 레위인과 레위인 중에서도 제사장 계통을 먹여 살리기 위한 신정국가의 세금.

(이것이 한국 개신교가 흔히 알고 있는 십일조의 개념이다.)


민수기 18장

레위 사람의 몫


21    "나는 레위 자손에게는 이스라엘 안에서 바치는 열의 하나를 모두 그들이 받을 유산으로 준다. 이것은 그들이 회막 일을 거드는 것에 대한 보수이다. 

22    이제부터 이스라엘 자손은 회막에 접근하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다가는 그 죄값을 지고 죽을 것이다. 

23    회막 일은 레위 사람들이 한다. 이것을 어긴 죄값은 레위 사람이 진다. 이것은 오고오는 세대에 언제나 지켜야 할 율례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아무런 유산이 없다. 

24    그 대신에 나는 그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제물, 곧 열의 하나를 그들의 유산으로 준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아무런 유산도 없다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전체의 십일조를 받을 권리가 있던 대신 조상으로 부터 재산을 상속받지는 못하였다. 십일조를 받은 것으로 먹고 살아야 했다.



민수기 18장

레위 사람의 십일조


25    주님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6    "레위 사람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일러라. 너희가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내가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는 열의 하나를 받을 때에, 너희는 열의 하나 받은 것에서 열째 몫을, 나 주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제물로 드려라. 

27    나는 너희가 바치는 그 제물을, 너희가 타작 마당에서 떼어 낸 곡식처럼, 포도 짜는 틀에서 떠낸 포도주처럼 여길 것이다. 

28    이렇게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떼어, 나 주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제물로 드리고, 나 주에게 드린 그 제물은 제사장 아론의 몫으로 돌려라. 

29    너희는 주의 몫으로는 너희가 받는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좋고 가장 거룩한 부분을, 들어 올려 바치는 제물로 모두 바쳐야 한다.

30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희가 가장 좋은 부분을 들어 올려 바칠 때에, 나는 그것을 레위 사람이 타작 마당이나 포도 짜는 틀에서 나온 것을 바치는 것처럼 여길 것이다. 

31    그 나머지는 너희와 너희 집안 사람이 어디에서나 먹어라. 그것은 너희가 회막에서 하는 일에 대한 보수이기 때문이다. 

32    가장 좋은 부분을 들어 올려 바침으로써, 너희는 이 일에 죄를 짓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는 이스라엘이 바친 거룩한 제물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죽지 않는다."


-> 레위인들은 십일조 받은 것에 또 십일조를 해야했다. 왜냐하면 레위인의 십일조는 레위인 중에서 제사장인 아론 계통에게 주어야 해서 아론 계통이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2차 십일조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 준 십일조. 1차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이 또 2차 십일조를 행해야 했는데, 그것으로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것을 사서(독주 마저도) 레위인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종과 함께 하나님을 생각하며 먹고 즐기는 것이었다. 이 십일조 규례는 먹고 마시며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어디에 '내는' 것이 아니다.


신명기 12장

17    당신들이 십일조로 바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서원하고 드린 갖가지 서원제물과 자원제물과 높이 들어 바치는 곡식제물은, 성 안에서는 먹을 수 없습니다. 

18    그것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먹도록 하십시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와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 사는 레위 사람과 함께 먹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높이 들어 바친 모든 것을 즐거워하십시오. 


신명기 14장

22    "당신들은 해마다 밭에서 거둔 소출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23    당신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처음 난 소와 양의 새끼와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서, 주님 앞에서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24    그러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이, 당신들이 있는 곳에서 너무 멀고, 가기가 어려워서,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당신들은 그것을 돈으로 바꿔서, 그 돈을 가지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십시오. 소든지 양이든지 포도주든지 독한 술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십시오. 

27    그러나 성 안에서 당신들과 함께 사는 레위 사람은,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기서 번외로 한국 개신교의 (11번째 계명에 가까운) 금주 교리는 무너진다. 포도주는 물론 이거니와 '독주' 까지 마셔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는 일이므로 더욱 문제될 것이 없다.




3차 십일조

->별로 받지 못한 레위인과 소외계층(떠돌이,고아,과부)을 위해 3년마다 1/10을 베푸는(어디에 '내는' 것이 아님) 십일조. 평균적으로 매년 약 3.3% 정도.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주어 먹게 하는 것이다. 


신명기 14장

28    당신들은 매 삼 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29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이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위와 같은 1,2,3차 십일조가 철저하게 있었지만 실상은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었다.


느헤미야는 말라기와 동시대 인물이다. 앞선 말라기 내용을 상기하면서 읽어도 좋다.


느헤미야 13장 전체정리(본문생략)

느헤미야는 유다지파 출신의 정치가이자 바빌론 포로 생활기에 고위 관리이다. 그는 성벽을 재건하고 유다교 종교 개혁을 단행한 인물이다. 그 과정이 13장에 나와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십일조를 제대로 걷지않아 레위인이 제사를 안하고 밭에 나가 농사를 지어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등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뿐더러, 안식일에 장사를 하고, 이방인 여자와 결혼을 하는 등 개판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이 현실은 지금도 적용할 수 있는데, 현대 개신교회에서도 십일조를 모두 내고 있지는 않는다는 점을 살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진배없음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