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성경의 역사 - 새번역 이야기

종교경전/번역성경 2013. 4. 11. 03:12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개역한글(1961)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공동번역으로 공동번역성서(1977)가 등장했는데 '대다수 개신교회'만 배척했습니다.


개신교계 입장에서 100년 가까이 사용해온 잘못된 음역(마태,마가,누가,바울 등)과 잘못된 표준어이자 북한 지역의 방언(하나님)을 공동번역이 서로 맞추기로 했는데 전통을 이유로 반발했습니다. 너무 읽기 편해서 권위가 떨어진다, 하나님 단어를 포기 못하겠다 등의 한심한 이유로 말이죠.


하지만 자신들의 개역한글(1961)보다 훨씬 읽기 편하고 내용 이해가 쉬웠던 것은 부정할 수 없었죠. 자신들의 전통적 용어는 유지하고 싶고, 읽기 편한건 좋으니 머리굴려서 만든게 표준새번역(1993)입니다.


1998년에 나온 개역개정판까지도 페르시아를 바사라고, 이집트를 애굽이라고 사용하지요. 어떻게 읽어야 이렇게 나오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 몇몇 단어들은 바꾸긴 했지만 거의 전부 「1911 성경」을 따랐습니다.


1911->1938->1961은 영어성경으로 1911년 까지 번역한 것을 맞춤법만 개정하다보니 문제가 있었고, 공동번역을 따라해서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그리스어로 된 것을 번역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영어 이외의 버전에서 번역함과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공동번역을 따라했고, 기존 개신교의 용어들을 유지하는 것으로 개역한글을 따라해 표준새번역(1993)을 만들어 개신교회의 공식 예배용으로 사용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공식으로 만들면 '공동번역의 장점 + 개역한글의 용어 유지 = 표준새번역'


그러나 성경에 무지한 개신교 사람들이 새번역을 만들때의 당초 목적과 달리 개역한글을 계속해서 고수하기로 결정하자 예배용으로 채택한 개신교는 거의 없었고, 결국 대한성서공회는 개역한글에서 맞춤법과 오역 일부를 개정한 개역개정(1998)을 내놓고 밀어주게 됩니다. 흔히 들리는 이야기로는 개역한글판의 저작권 기한이 거의 끝나가자 장사 목적으로 급히 출시한 성경으로 보기도 합니다.


대한성서공회와 개신교계에서는 개역개정판을 밀기로 했고 현재 개역개정을 예배용으로 사용하는 교회가 상당수 되지요.


표준새번역(1993)은 후에 새번역(2001)으로 개정되었는데, 문체와 단어 몇개를 조금 바꾸었을 뿐 큰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개역개정(1998)을 밀기로 함에 따라 표준새번역(1993)을 없애버리기로 결정했고, 절판되었습니다. 그후 새번역(2001)이 출간되어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습니다.


결국 대한성서공회와 개신교계가 입 맞추어 훨씬 좋은 타 번역을 없애버리고「1911 성경」을 「1998 성경(개역개정)」까지 가지고 와서 그대로 가는 꼴입니다.


아직도 개역한글을 사용하는 곳에선 말합니다. '개역개정(1998)은 장사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니 개역한글(1961)을 사용하겠다' 이는 아주 무식한 말 임은 세개의 글을 통해 입증하였습니다.


세개의 글에서 작성된 성경 이외의 성경버전은 개신교가 처음온 1885년부터 120년 넘는 시간동안 다양한 이유(장사용, 예배용, 북한용, 어린이용, 낱권 등)로 만들어졌는데 실제로 사용된 적도 거의 없으며 접할 기회도 없고 역사에 한줄 남기고 사라졌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역 성경 한글번역판, 말씀보존학회의 킹제임스흠정역 한글번역판 등은 워낙 소수종파만 사용하는지라 역시 큰 틀은 볼 수 없고요.

성경, 무엇을 사야하는가?

종교경전/번역성경 2013. 4. 8. 22:21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매번 질문받아 답변해주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아예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한글성경을 기준으로, 본인이 직접 사서 읽고 사용하는 것으로 정리한다.

-추천순위
3가지를 추천할 것인데, 이는 구약은 히브리어 원어(BHK,BHS)에서, 신약은 그리스어 원어(GNT=NTG)에서 직접 번역한 것들이다. 

1. 천주교 성경(2005년 초판)
-> 외국어표현이 괜찮고, 글씨체도 볼만 하며, 가장 최근에 나왔다. 공동번역성서가 전체 신구약성서 원어번역으로는 최초인 셈인데 그것이 한국 천주교의 첫번째 성경이었다. 천주교와 소수 개신교만 사용하는 사태가 벌어져 결국 자신들 만의 성경을 번역했다. 약 30년전 성경인 공동번역성서의 장점을 모두 살리면서도 의역이 심한 부분을 직역으로 바꾸어 더 업그레이드 했다고 보면 된다.
번역대본 : 구약-BHS, 신약-GNT, 제2경전(외경)-LXX(Septuaginta)

2. 천주교&개신교 공동번역성서(1977년 초판, 1999년 개정판)
-> 공동으로 번역한 것에 대해 의의를 높게사고, 읽는 것도 쉽게 적었으며, 신구약성경 전체 원어번역으로는 최초이다. 다만 너무 쉽게 풀어 적은 탓에 의역을 한 경향이 있는데, 신학적으로 볼때에는 썩 좋지 않지만 일반인이 내용 파악하는데에는 손색이 없다. 허나 지금은 잘 팔지도 않고 천주교 성경이나 개신교 새번역을 사라고 추천하겠다. 첫번째라는 것과, 공동으로 번역하였다는 것에 의의를 높게 산다. 신을 부르는 호칭이 다른 유일한 나라는 우리나라인데(당시 천주교는 천주, 개신교는 하나님), 순 우리말 표준어 '하느님'으로 통일하기로 합의하였다.
번역대본 : 구약-BHK, 신약-GNT, 제2경전(외경)-LXX(Septuaginta)

3. 개신교 새번역(2001년 초판, 더러 1993년 초판인 표준새번역의 개정판이라 표현하기도 함)
-> 외국어표현이 개판이나, 훌륭한 번역. 공동번역성서에 비해 급은 한단계. 하지만 공동번역성서를 잘 구할 수 없는 탓에 실질적으로 3위에서 한단계 올라가 2위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공동번역성서의 장점은 살리고 싶고 개역성경의 단어들은 유지해야 그나마 교회에서 예배용으로 채택해 사줄 것 같고 하니까 개역성경의 단어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 개역성경의 단어는 단점이었는데 외국어표현과 표준어를 자신들 마음대로 음역한 것을 쓴 것이다. 정말 시급히 바꾸어야 할 외국어표현(애굽->이집트, 바사->페르시아)은 바꾸었지만, 어지간한건 그냥 갔다(하나님->하느님, 구레네->키레네 등으로 해야 맞다).
번역대본 : 구약-BHS, 신약-GNT

=> 정리하자면, 천주교 성경 아니면 개신교 새번역 둘 중에 하나 택하라는 것이다.


-비추천
아래의 성경을 보자마자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리길 바란다. 만드는 종이와 잉크가 아깝다. 비추천 순위를 매길 수 없을 만큼 하찮다.

개신교 개역한글판(1961년 초판), 개신교 개역개정판(1998년 초판)
->한국 개신교 대부분이 쓰는 성경이다. 이는 약 100년전 미국 선교사들과 조선인들이 상대방의 언어도 제대로 모른채 시급하게 번역한 것을 맞춤법과 진짜 오류 일부만 개정해 오면서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냥 쓰레기통에 넣고 위 추천 3개 중 하나를 사는 것이 낫다. 잉크가 아깝고 종이가 아깝다.
번역대본 : 중국어 성경, 일본어 성경(초기 독자 번역) + 영어 RV, ASV, KJV(미국인 선교사와 함께 번역)

개신교 킹제임스성경의 한글번역판들
->KJV는 영어로 읽었을 때 명판이지, 한글번역판은 전혀 명판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번역대본 : 영어 King James Version

개신교 현대인의 성경
->현대인의 성경을 번역한 판본은 The Living Bible 이라는 영어성경인데 이 성경의 원칙은 의역이다. 무슨 문장이든 단어든 그냥 의미만 대충 통하면 된다는 의도로 성경 전체를 대강 무슨내용인지 알 수 있게 영어로 다 의역을 해놓은 것이다. 그것을 한글성경 번역자들이 개역성경은 읽기 힘드니까 이걸 번역해서 쉽게 메꾸어보자는 심보로 번역하긴 했는데 그냥 쓰레기다. 의역한 것에 또 의역을 하는 바람에 자기 맘대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대본 : 영어 The Living Bible

그외 잡다한 성경은 잘 팔지도 않거나 추천도 비추천도 아니기에 언급을 하지 않겠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3. 31. 04:24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일부러 하나님이라 적었다. 왜냐하면 천주교에서 "성경은 모든 구절의 일점일획이 다 하느님의 말씀이에요" 라는 멍청한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 누구가, 예언자 누구가, 예수님이, 주님이 등으로 누가 말하는지를 분명히 하며 말하기 때문이며 그 목적을 안다. 반면에 개신교는 사도의 말이건, 예수의 말이건, 예언자의 말이건, 심지어는 악인의 말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라 목회자부터가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 그에 교육받은 신자들 조차도 해당 성경의 작성목적은 잊은채 모든 구절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무신론/불가지론 등의 입장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일단 신이 없으므로 성경 전체는 모두 고대 사람들이 작성한 문서들을 집대성한 것일 뿐이며, 일부는 역사적 사실이거나 또 일부는 역사적으로 존재한 사람의 말을 적었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저자의 상상일 뿐이다. 꼭 어느 집단의 입장을 붙이지 않더라도 이는 사실이다. 허나 이 주장은 근본주의 개신교의 잘못된 통념을 바로 잡지는 못한다.

'성경은 근본주의 개신교가 생각하는 대로 일점 일획도 전부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다시 되짚어 보게 된 이유는 어느 음식점에서 본 것 때문이다. 그것은 맨 마지막에 다루겠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근거를 되짚어 본다.

1)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감동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등장하는 단골 구절이 있다.

디모데후서 3:16(새번역)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성경'은 '구약' 이지 '신약'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착각하는 것이 있다. 성경하니까 아주 당연스럽게 신구약성경을 이야기하는 줄 알지만,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다. 신약성경 목록은 4세기까지 박터지게 싸우다가 성립되었으므로 절대 신약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령 신약을 의미했다 치더라도 -백번양보해도 절대 그럴일은 없지만- 그 목록도 없고 신약이 완성되지도 않았을 시절이다.

더구나 여기서 말하는 성경, 즉 구약도 이 차명편지가 쓰여질 1세기 말 당시에 뭐가 정경인지 목록을 제정하던 때였다. 한편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죽기 얼마전에 쓴 것이므로 60년대 중반인데, 구약목록이 정립된 것은 AD 90년 얌니아 회의이다. 따라서 그들에 의하면 여기서 성경은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르는 단어인데다, 심지어 자신들이 보는 구약도 여기서 말하는 성경이 아니다.


2)하나님의 말씀에는 일점일획도 틀린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신의 말에 오류가 있고 모순이 있고, 앞뒤 말이 다르면 그게 신인가? 당연히 신이라면 일점일획의 오류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 말에는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신의 말이 '원본'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원본'은 히브리어이며 히브리어 '원본' 성경이 아니면 일점일획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원본'은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베끼는 와중에 글자 하나라도 잘못 표기 했다면 이미 오류가 생긴 것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신은 히브리어로만 말을 했을 것이며(그게 기록 언어니까), 그리스어로는 말한적이 없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신)이라 말한 적이 없으며, 신이라 하더라도 그는 아람어를 사용했지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일점일획설을 들고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영어권에서는 KJV를, 한국어권에서는 개역한글판이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고 믿는다.

심지어 신약의 언어인 그리스어 조차도 신의 말씀이 아니므로 부정해야될 판에, 번역본이 오류가 없다는 소리는 그냥 헛소리다.


더구나, 모든 말이 하나님의 말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달리 하나님(신)의 말은 다 표기가 되어있다.
"나 주의 말이다" (새번역)
"야훼가 말한다"  (공동번역)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개역개정)

따라서 이 말만이 신의 말이다. 신이 말할때는 해당 구절로 운을 떼고, 말이 끝나면 닫는다.


흔히 사용하는 잘못된 예시)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어느 음식점에 걸어둔 성경구절이다. 우리가 앞서 말한바 대로 이것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욥기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누가 들어도 듣기 좋은 말이다. 그래서 아마도 달아놓았을 것이다. 개신교인들은 마치 이 구절을 "지금 사업장은 작지만 나중엔 커질 것이다"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선 욥기 전체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욥은 의로운 사람이나 하나님과 사탄이 얼마나 의인인지 시험삼아 보고 있는 대상으로,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잃어버리게 만든 후 세 친구(엘리바스,빌닷,소발)와의 대화형식으로 되어있다. 그 후 또 다른 사람(엘리후)의 말이 있고 결국 하나님은 욥을 의인으로 여기고 복을 준다는 내용이다.

이 구절은
첫째, 이 말은 하나님의 말이 아니라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하고 있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이면 써먹어도 괜찮겠지만, 사람의 말이다.

둘째, 욥기의 주제는 하나님은 욥이 진정한 의인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며 세 친구는 아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의인도 아닌 사람의 말을 갖다 쓰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마치, "그러므로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누가복음4:7) 라는 구절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면 모든걸 준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사실 이 구절은 사탄이 예수에게 한 말이다. 의인이 아닌 사람 또는 악인의 말을 갖다가 쓰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사탄의 말은 갖다 쓰지 못하면서, 의롭지 못한 사람의 말은 갖다 써도 괜찮은가?

셋째, 앞뒤 문맥과 수아 사람 빌닷의 특성상 아무데나 갖다 박을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 욥이 고난을 받자, 빌닷은 "이게 다 너의 죄 탓이며, 벌은 악인만 받는 것" 이라며 "지금이라도 회개하여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복 주실테니까, 아무 것도 없는 지금은 미약하지만(보잘것 없지만) 나중에는 창대해질거야(크게 될 거야)" 라고 말하는 구절이다. 사업장 번창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시를 하나 살펴보며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인용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따라서 개신교인들은 앞뒤 문맥,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한 말인지도 모른채 다 갖다 쓰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부터 바꾸어야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성경은 구절과 단어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국 개신교에서 사이비가 정말 많이 나왔다. 한 구절, 단어 떼어서 생각하는 것으로는 단연 최고이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이런 방식으로 6.25 전쟁 이후만 쳐도 수십명의 사이비교주들이 등장했다. 정통이라 주장하는 자들이 매번 이단판정 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잘못된 태도 탓에 벌어진 일이므로 그들은 할 말이 없다. 결국 개신교계 사이비종교는 현재 개신교의 각성으로 해치워야할 사회악이지, 일방적으로 이단 판정하면서 "저기 교회 가지마세요" 주장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개신교 성경의 역사 - 개역 이야기

종교경전/번역성경 2013. 3. 27. 23:33

대한민국의 천주교와 개신교는 중국에서 건너왔습니다. 이 글에선 개신교만 다룹니다. 보통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선교국에 들어와서 선교하면서 성경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좀 특이한 면을 보이는데, 선교사보다 성경이(복음서이긴 하지만) 더 먼저 들어왔습니다. 개신교 성경은 중국에 선교온 영국 선교사와 몇몇 조선인들에 의해 중국어 성경에서 일부 번역해서 들어왔고, 조선에 선교온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왔으므로 선교하면서 조선인들의 도움을 받아 영어 성경에서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이 개신교 성경의 시작입니다. 그러다보니 성경의 인명이나 지명이 중국에서 가지고 온 것을 읽거나, 영어에서 읽긴 하지만 영어를 못하던 사람들이 듣고 한문 음역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중국사람들이 듣고 한문으로 적은 것이 기리사독(줄여서 기독)인데, 그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 처럼 말이지요.


마태,마가,누가,요한 같은 단어는 복음서였으니 중국어에서 가져온 것이고, 신약 서신서는 당연히 나중에 번역될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선교사들이 했는데, 바울을 예로 들면 바울은 영어로는 폴(Paul)인데, 선교사들이 pa 바 / ul 울 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문제점은 무엇이냐면, 선교사들은 한글을 제대로 몰랐고 조선인들은 영어를 제대로 몰랐다는 것입니다. 언어에 대한 이해도 없이 급하니까 얼른 번역해서 내놓은 조잡한 성경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신약(그중에서도 복음서)이 중요하니 신약이 먼저 나오고 구약이 나중에 나와서 「성경」의 꼴을 갖춥니다.「1911년 성경(흔히 구역이라 부름. 1938개역과 구분짓기위해)」이라 합시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겪고 시간이 흐르면서 맞춤법이 변화한 것과 몇가지 오류를 찾으니, 그에 맞추어 다시 출판한 것이「1938년 성경(흔히 개역)」입니다. 그나마도 한글을 보존하고 퍼뜨리신 주시경 선생이 맞춤법과 국문법을 제정해 둔 것을 후에 조선어학회가 맞춤법을 공표하였는데(1933), 그것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름과 지명은 바꿀 용기가 안나니 변화없이 그냥 갔습니다. 한마디로 자신들 맘대로 한거죠.


결국 주시경 선생이 주도했었던 한글 맞춤법과 국문법을 정부에서 인정하게 됩니다(1948). 그러다보니 당연히 맞춤법을 다시 개정해야하는 상황이 오게 되었습니다.


전쟁 후에 그나마 안정화가 되자, 맞춤법도 국가에서 인정한 것으로 해야지, 시간이 흘렀으니 다시 고쳐야지 하는 여러 이유 탓에 「1961년 성경(흔히 개역한글)」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세로쓰기에 옆에는 빨간 성경인데 보신적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나중에는 가로쓰기에 은,금색 칠해서 팔았지만요. 1911->1938->1961 을 고스란히 이어오는 성경이죠. 개역한글판이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보수적인 사람들에 의해 읽혀지고, 교회에서 사용되면서 아직까지 죽지 않았죠. 


사람들이 경제발전하고 개신교 인구가 늘면서 성경 구입이 늘어나고, 또 많이 읽다보니 번역 오류가 발견된 구절들이 쏟아져 나왔고, 쓰이지 않는 고어(가라사대, 풀무불 등), 지나친 한문사용, 국가에서 맞춤법을 개정한 이유로(1988), 그것에 맞추어 맞춤법 개정 10년후 또 「1998 성경(흔히 개역개정)」이 나왔습니다. 1998년에 나오긴 했지만 실질적인 출판은 조금 후에 이루어졌는데 이유는 다른 번역판을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번역판(표준새번역 개정판)이 출시되자 기존 교단들이 반발하면서 싸움을 하게되었습니다. 2004년 쯤 부터 많은 교단들이 이 성경을 쓰고 (새번역을 시장에서 누르도록) 성도들에게 구매하도록 하여 시장주도권을 개역개정에 주면서 2007~2008년 쯤 부터는 주도권도 확보하고 보급이 잘 되자 지금의 개신교회 상당수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 개신교 성경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채택하고 몇 년이 흘러「1998 성경(흔히 개역개정)」을 못마땅해 하면서 「1961년 성경(흔히 개역한글)」로 다시 돌아가기로 예장합동이 결의하면서 개신교 성경은 주도권 싸움만 하는게 실정입니다. 결국은 개역한글이든 개역개정이든 쓰레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정리하자면 「1911 성경(흔히 구역)」-> 「1938 성경(흔히 개역)」-> 「1961 성경(흔히 개역한글)」-> 「1998 성경(흔히 개역개정)」 으로 흘러온거고, 시대가 흐르면서 맞춤법과 오역이 일어난 구절을 조금 손질했을 뿐,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영문성경, 중국어성경을 번역한 것에 진짜 오류 몇개와 대부분의 맞춤법이 제정 될 때마다 고친채 100년 넘게 쓰고 있는 성경입니다. 전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쓰레기 성경이라고.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라고."


그런데 아직까지 개역한글판은 죽지 않았습니다. 한심한 개신교인들이 끝까지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죠. 신의 말씀을 본다는 건지 오역한 사람의 말씀을 본다는 건지.


중국어 성경과 영어 성경의 번역본으로 번역 원전도 훌륭하지 않았고, 번역한 사람들 자체도 훌륭하지 않았으며, 내용이해도 어렵게 써두고, 오역 투성이에, 의미없는 번역 투성이,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만들어내 번역하고, 문장부호도 없으며, 번역에 통일성도 없는 등 문제점만 가득한 성경입니다.

KJV(제임스 왕 흠정역 성경)의 역사와 의의와 문제점

종교경전/번역성경 2013. 3. 2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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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임스 1세 왕은 스코틀랜드에서 원래 왕(제임스 6세)이었는데 기존 영국 연방 왕가의 대가 끊기자 영국 연방의 왕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았다. 그의 어머니는 영국 연방 여왕에서 폐위되었고, 자신이 왕이던 스코틀랜드의 스코틀랜드 장로회와는 원수지간에 가까웠으며, 죽은 여왕과 외사촌이긴 했으나 왕조가 바뀌어 버렸고, 유아 시절부터 왕이 된 그에게 대한 불만족스러움과,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폄하, 영국 성공회와 마찰, 의회와의 수 많은 마찰 등으로 말이 많았다. 


영국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각각 군주가 있었다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는 합쳐져 왕이 있었고 잉글랜드&아일랜드 왕과 스코틀랜드 왕이 있었다가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아일랜드 왕을 이어받게 되면서 잉글랜드&아일랜드&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1세 부터 3군데 왕을 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그에게는 정치적 목적으로 왕권강화의 필요성이 있었던데다, 영국 내부적으로 교회 자체가 분열되어 있어서 골머리를 앓았다. 종교개혁의 산물로 영국 성공회와 장로회(청교도)로 갈라져 싸움질이나 하고 있었고 국가를 하나로 모으는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임스 1세보다 약 100년 전의 영국 왕 헨리 8세는 혼인무효와 관련해 영국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교황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빼앗았으나 처음엔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던 것과는 별 상관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빼앗았다. 결국 얼마 못가 다시 로마 가톨릭 교회로 회귀 했다가, 제임스 1세의 전임 왕 엘리자베스 1세 때에야 비로소 다시 회귀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종교 개혁적 손질을 하여 영국 성공회 라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그걸 바라본 청교도들(스코틀랜드 장로회)은 로마 가톨릭의 냄새가 짙은 불완전한 종교 개혁이 무슨 종교 개혁이냐고 반발하면서 새롭게 다시 개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에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종교 일치와 성경 일치이다. 여담이지만 종교 일치를 위해 청교도들을 성공회로 이동시키려고 강압적으로 정치를 했고 그 결과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도망가 미국을 세운 것이다. (그들의 후배?(후손?)들이 결국 조선으로 선교하러 들어와 무혈입성하고 일제와 미국과 독재에 빌붙으며 성장한 대한민국 장로회가 되었고 그들이 우리나라를 주름잡은 것이다). 더구나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신정설)을 주장하여 엄청난 왕권을 꿈꿨다. 제임스 1세가 당시 시대에 앞장서 주장했고 성경과 종교일치도 결국은 자신이 절대왕권을 가지고자 한 것이다. 후에 진정한 왕권신수설을 이룬 사람은 태양왕 루이 14세이다.


어쨌든 성경의 번역을 둘이 함께 하면 둘 사이의 앙금도 해소될 겸, 분열이 아닌 통일을 할 수 있고, 왕권강화에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당시 성공회의 주교의 성경(Bishop's Bible)과 장로회(청교도)의 제네바 성경(Geneva Bible)과 틴데일 성경을 개정한 대성경(The Great Bible)이 경쟁하고 있었고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싸움의 대부분은 주교의 성경과 제네바 성경의 싸움이었다. 청교도의 제네바 성경은 책의 1/4은 주석이요 3/4는 본문으로 본문 한줄 읽고 난외 주석을 읽어야 하여 본문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들어 특히 제임스 1세가 싫어했다. 그래서 왕이 직접 명령하여 모든 교회에서 읽을 수 있고 난외주가 거의 없는 성경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KJV를 만드는데 7년 걸렸고 출판했다. 영국이 강대국이 되고 영어가 거의 공용어가 되면서 KJV은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400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살아남았다.



-의의

왕의 명령으로, 47명의 학자가 모여 만들었으며, 장로회와 성공회의 화합을 도모한 점, 짧고 굵게 리듬감을 주어 번역하여 읽을 때 힘이 난다는 점, 긴 역사를 거쳐 살아남은 점, 단일 역본으로 엄청나게 팔린 점 등이 거론된다.


또 KJV는 영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KJV 이후의 영문학을 공부하는데 KJV를 빼면 남는게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현재에도 영어권 국가의 회화나 글에서 어디에 빗대거나 표현을 할때에 툭 하면 KJV의 표현이 등장한다.



-문제점

구약은 그리스어 70인역이나 라틴어 불가타를 번역했고(히브리어 마소라도 참고는 했으나 우선적인 수용은 아니었다), 신약은 TR(수용본문)과 라틴어 불가타, 구약 외경(가톨릭 표현으론 제2경전)은 대체로 바티칸 사본을 참조한 그리스어 성경과 일부 라틴어 불가타를 사용했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설명한 대본을 사용하긴 했는데 대체로 KJV를 만드는 번역원칙에는 영어 성경(그중에도 주교의 성경)이 우선이었다. 더구나 문제는 기존 영어성경(구체적으로 제네바 성경)을 그대로 베끼기 까지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번역이 완벽하다면 베꼈다 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으나 그 부분이 상당하다. 웃긴 것은 성공회 번역자들이 장로회 성경을 그대로 베낀 것에 있겠지만 말이다.


더구나 KJV은 성경의 원문이 아닌 교리를 담은 성경이다. KJV을 달달 읽고 외우면 교리를 한번만 들어도 아 그렇구나 하게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킹 제임스 성경이 나오기 전의 교리들(물론 그것이 나름 정통교리이긴 하다)로 원문을 변형시켜서 갖다가 박은 것이다.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신학적 입장으로 바라보면 별로 좋지 않다. 역사와 의의와 문제점을 다 제쳐두고라도, 누가 되었든 간에 전체적 내용파악 하는데는 KJV이든 아니든 전혀 문제가 없다. 일반인에겐 이런 논쟁은 별로 중요치 않고, 신학논쟁에서만 의의를 얻는다. 한 단어까지 일일이 따져드는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엔 좋은 성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7년에 걸쳐 만들었으나 실질적으로 집필한 기간은 반도 안된다. 앞의 반은 개인연구하는데 시간을 들이고, 뒤에 일부는 얼른 써내기 바빴고, 교정작업을 하도록 보낸 후 몇 개월 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왜냐면 급했으니까. 왕권 강화 하려고 몇 십년을 기다리다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시 학자들의 언어적 이해도가 현대 학자들의 언어적 이해도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것은 웃기다. 지금은 컴퓨터로 단어 치면 의미와 예문까지 언어학적으로 분석한 것 까지 나오지만, 그 시절은 연구도 부족했으며 단어 하나의 의미 찾는데도 한참 걸리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KJV의 그리스어 신약 대본은 TR(수용본문)이었다. 이 당시에는 인쇄술로 찍어낸 최신이자 최초의 그리스어 성경이었지만 지금 TR은 엄청난 공격을 당했고 권위는 무너졌다. TR이 무너지면서 KJV 역시 같이 신학에선 권위가 무너져 버린 성경이 된 것이다.

바울과 사울의 이름 논쟁과 그에 의한 사건 해설

종교경전/신약성경 2013. 3. 27. 22:10

흔히 그리스도교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특히 개신교)


"1)예수 믿는 사람들(=나자렛 이단)을 박해하던 사울이 부활한 예수를 다마스쿠스(다메섹)에서 만나면서

2)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3)사울(큰 자)에서 바울(작은 자)로 개명하고 

4)예수를 전하다가 순교했다"


이 이야기는 나는 무식하다고 광고하는 이야기다. 목사가 가르쳐줬든 어쨌든.


일단 사울/바울은 Saul/Paul을 「1911년 성경」에서 선교사들이 사도행전을 번역하면서 영어이름 Sa/ul 사울, Pa/ul 바울 이라고 음역하면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부터가 잘못되었다. 


사울은 원래 히브리어로 샤울, 바울은 원래 그리스어로 파울로스다.

그래서 역사에서 나자렛 예수 전하던 바울을 나타내려면, '타르수스(Tar 다 /sus 소)의 파울로스' 이다.


하도 사람들이 바울/바울로/바오로/바우로 등으로 음역해 놓다 보니 우리나라만 뒤죽박죽이다. 영어만 보더라도 Paul 하나 밖에 없는데 말이다.


1)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파울로스 친서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있지 않다. 더러 그리스도교인들은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엄연히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 봐야한다. 파울로스 스스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린도전서 9:1)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했단 말입니까? 라는 언급 뿐이다. 어디에서 봤는지 정말 눈이 멀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러나 저러나 파울로스는 실존 예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다만 파울로스는 예수를 직접 보고 가르침을 얻진 못했지만 초기 추종자 중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2)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하는데, 파울로스의 다마스쿠스의 회심 사건은 그리스도교 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신약이 한줄도 안 쓰였다. 예수가 죽은지 얼마 안된 상태에서 예수가 메시아 라며 '나자렛 이단'이 갑자기 출몰하자 바리새인이자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던 샤울은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를 봐서 회심했으므로, 개종이 아니다. 스스로가 나자렛 이단세력에 끼어서 약 20년 후 자신에 의해 제일 처음 신약이 쓰여지고 AD 90년에 얌니아 회의를 통해 메시아 출현은 거짓이며 유대교가 맞다고 확정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갈라진 것이다.


더구나 그리스도교는 파울로스가 예수를 교조로 창시했다(본인이 원했든,원하지 않았든). 교리의 상당수는 자신이 세운 예수교회에 '이게 교리다' 라며 보낸 파울로스 편지에서 나오고 있으며 신약의 절반은 파울로스 편지라고 일컬어 진다. 자신이 창시한 종교에 웬 개종?


3) 사울/바울 이라고 적어두니까 왠지 한글자 차이에 우리나라 말로 보니 돌림자처럼 생겨서 개명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샤울(히브리어)/파울로스(그리스어)로 이름이 원래 두개이다. 왜냐하면 파울로스는 타르수스 라는 로마지역의 해외파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이 있다. 그리고 파울로스는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편지를 작성했으며, 편지 첫머리에 파울로스가(샤울이 아니고) 보낸다고 적고 있고, 당시에 그리스어는 공용어였다. 그래서 예수의 죄패에도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로 쓰였다.


파울로스는 '작은자' 라는 뜻이 있지만. 샤울은 동사 '요청하다(기도하다,간구하다)'에서 파생되어 '신께 요청한'의 뜻이다. 따라서 큰자에서 작은자로 개명했다는 이야기는 그냥 헛소리가 된다.


완벽히 똑같은 사례를 현실에서 찾아서 설명해주자면 골프선수 미셸 위(영어)/위성미(한국어) 가 있겠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갖는 문화(=여기서는 한국)의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 시민권이 있는 나라의 언어로 된 이름(=여기서는 미국)이 있는 것이다. 고로 개명이 아니고 당연히 두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격투기 선수 추성훈이 있겠다. 아키야마 요시히로와 추성훈은 둘 다 가지고 있는 이름이지, 개명이 아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근거로 봐도 예루살렘(이스라엘지역)에서의 활동(사도행전 ~12장)은 히브리 이름인 샤울이라고 적고 있고, 안티오키아(로마지역)에서의 활동(사도행전 13장~)부터는 전부 로마지역에서의 이야기 이므로 파울로스라고 적고 있다.


4) 외경과 전승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베드로의 역십자가형과 마찬가지로 파울로스는 참수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어떤 방법으로든 죽기는 죽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 안 나온다고 영생했을리는 없는일.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십일조의 허상과 진실) ver 3.5

그리스도교/개신교 2013. 3. 27. 21:06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사용한 성경은 개신교 새번역판.


'십일조를 내야하는가'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민하고 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하건대 십일조는 내지 않아도 된다.


일단 십일조는 원래 구약의 제도이고, 타락한 중세 교회가 부활시켰던 것이고, 그것을 폐지한지 오래며, 현재는 구약율법의 철저한 준수를 요구하는 여호와의증인 마저 없애버렸다. 남아있는 곳은 미국의 소수 개신교 교단(주로 오순절)과 대한민국의 다수 개신교 교단(장로회, 오순절 등) 뿐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1)낼 곳도 받을 사람도 없다


십일조는 원래 세금으로 국가에 바치는 것이었으며 그것의 사용처는 레위지파 였다. 13번째 레위지파는 성직자 그룹으로 다른 12지파와 달리 땅도 받지 못하고 일도 하지 못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든 성직 업무를 담당하는 대신에 12지파에서 1/10을 떼어 그들에게 생활비를 댔던 것이다(1차 십일조). 또 바치는 사람을 위해 따로 떼어놓아 바치는 사람을 즐기게 해주는 것이었으며(2차 십일조), 또 그것은 과부와 고아 같은 소외된 계층을 위해 사용되어야만 했던 제도이다(3차 십일조). 이는 구약의 율법이었다.


따라서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인에 의해 무너져 이스라엘-유다 국가 자체가 지구상에서 없어진 후 유다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이 약 1900년 후에 전쟁으로 땅을 빼앗아 현대 이스라엘을 건국했지만 그들에겐 성전이 없고 레위지파가 없다. 현대 유다교는 1세기 중반의 성전 유다교가 아니라 1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랍비 유다교다. 따라서 내야될 장소도, 내야될 의무도, 받을 사람도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십일조는 개신교에서 걷고 있는데 내는 곳은 교회(예배당)이다. 하지만 내야될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며, 교회(예배당)도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다. 더구나 세금은 국가에 내는 것이지 교회에 내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십일조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신정국가 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정국가도 아니고, 교회는 국가가 아니다. 더러 개신교 사람들은 목사를 성직자라 부르며, 교회 건물을 종종 성전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그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다.


첫째, 종교개혁자들은 만인제사장설(특별한 성직계급은 없고 그리스도인 모두가 제사장이자 성직자이며, 유일한 최고의 대제사장은 예수 뿐이다)을 받아들였고 그에 따라 설립된 것이므로 목사는 레위지파 처럼 특별한 성직자가 아니다. 아울러 장로회의 경우 목사의 직위는 평신도인 장로 중 '가르치는 장로' 이므로 평신도 이다. 


둘째, 성전이려면 기본적으로 제사가 있거나 성전에서만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만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다. 예배당 자체도 비성경적인 것으로 초대교회는 집에서 모였다. 더구나 개신교의 예배 및 기도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굳이 예배당이라는게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성전이 아니다. 성전이라는 표현 역시 잘못된 것인데,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를 경우 예수의 구속사역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므로 이단보다 훨씬 심한 표현이다. 아예 신약 자체를 폐기하겠다는 표현이기 때문.


셋째, 세금은 국가에 내는 것이며 교회는 국가가 아니다. 십일조를 거두었던 고대 이스라엘-유다는 신정국가 였다. 그러기에 율법이 곧 법이어서 국가에서 십일조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넷째, 십일조를 거두었던 서양 그리스도교들은 전부 폐지한지 오래되었다.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이라는 말을 한국 개신교에서는 입에 달고 살지만, 원조인 서양은 비성경적이라며 폐지한 것에 주목하라. 십일조는 아니나 교회세를 걷는 외국의 경우 1~2%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여 교회에 주는 것이지, 교회가 직접 걷는 것이 아니다.



2)내야 한다는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거나 사기를 치는 구절들이다


  A)예수가 십일조를 언급했다고 주장한다

복음서에 십일조는 총 3회 등장한다(누가18:12, 누가11:42=마태23:23). 하지만 뒤의 두개는 말한 배경은 다르나 내용이 같은 병행구절이므로 언급은 2개이다. 2개 중에 1개는 예수의 말이 아니라 바리새인이 '자신이 율법을 이렇게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도중에 드러내기 위해 한 말이다.


(누가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십일조의 근거가 될 수 없고, 예수의 언급인 누가11:42=마태23:23 를 살펴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쉽게 말해, 예수 曰 "이 쓰레기들은 율법 지키기는 칼 같이 지키면서 율법의 진정한 의미는 쏙 빼 먹는다! 십일조를 하면서 정의,자비,신의 같은 의미를 되새기랬지 언제 그것만 지키라고 했느냐!" 라고 마태복음 23장 1~36절 까지 길게 바리새인을 비난하는 것 중 일부이다.


이것을 무작정 십일조 하라는 구절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구약시대'이며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고 레위지파도 있었으므로, 낼 장소와 받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예수가 죽고 '신약시대'가 시작된지 40년 후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가 없어져 버렸으므로 예수 당시에는 내는게 맞았고, 지금은 낼 곳이 영원히 없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고 죽어야 신약이 시작되는 것이다! 누가 22:20-'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


율법교사와 바리새인은 예수가 가장 많이 비난하는 집단이다. 예수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 그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그 따위 것 다 필요없고 마음가짐이나 똑바로 하고 율법의 본래 의미나 알고 살라고 설교했는데, 목사들이 뭔데 율법을 부활해 철저히 준수 할 것을 요구하나? 더구나 율법을 전부 부활하는 것도 아니고 십일조 '만' 부활하나?


더구나 예수가 언급한 십일조의 내용물은 박하,회향,근채로 모두 '땅에서 난 산물'이며(구약에서 '땅에서 난 산물'의 1/10을 바치라고 했다) 돈이 아니다. 따라서 돈을 바치는 것은 십일조가 아니다. 더구나 박하,회향,근채는 향신료로써 원래 십일조의 대상이 아니다. 바리새인이 자신은 이런 잡 농산물에도 철저히 십일조를 한다며 자랑을 했기에 예수가 위선자라고 욕을 퍼부은 것이다.



  B)헌금을 마치 없는 상황에서도 전부를 내야하는 정도의 것으로 생각한다
(누가복음 21:1~4=마가복음12:41~4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거기에 렙돈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자기들의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이 구절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예수가 '액수나 비율이 중요한게 아닌, 헌금을 내는 마음가짐이 올바른 과부'를 보고 칭찬한 것 처럼 보인다. 이는 상당수 성경주석이 그렇게 적고 있는 것에도 한 몫 한다. 그러니 신자들은 자연스레 "xxx 목사님이 주석 단 거니까" 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유명한 외국의 성경주석들도 그렇게 적고 있다. 

이 구절의 최대 실수는 '문맥을 무시하고 읽었을 때'에 발생한다!

참고로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가 말한 이 성전은 '제2성전(헤로데 대왕 성전)' 이다.

마가복음에서는 11:27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와 13:1 에서야 성전에서 나간다.
누가복음에서는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정확하게 써 있지는 않다.
20:1부터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어느날 벌어진 설교라고 적고 있고 21:37에서 낮에는 성전에서, 밤에는 올리브 산에서 지냈다고 적혀있다.

어쨌든 설교의 배경은 '성전'이다.
문맥 파악의 기본부터 하기 위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이 '과부의 헌금' 사건 바로 전 구절을 살펴보아야 한다.

누가복음 21장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시다

45    모든 백성이 듣고 있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6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원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과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잔치에서 윗자리를 좋아한다. 
47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그들은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친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의 구절을 잘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과부의 헌금 사건은 율법학자를 비난하며 예시를 든 것이기 때문이다.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의 예시가 곧 생활비 전부를 넣게한 사건인 것이다.

2 렙돈 = 1 고드란트 = 1/64 데나리온
1 데나리온 = 노동자의 하루 임금 (마태 20:2) 이므로 일당 5만원이라 치고 계산하면 약 781원 정도이다.

쉽게 생각해, 500원 2개 헌금 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율법교사들은 이런것마저도 율법 운운하며 성전에 들어왔으니 예물을 드리도록 해 가난한 과부의 돈을 꿀꺽 한 것이다.

이야기 구성을 다시 해보자.
예수 曰 "율법학자들의 율법강조를 조심해라. 율법학자들은 예복 입기, 장터에서 인사받기, 회당의 높은 자리 앉기, 잔치에서 윗자리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꿀꺽하면서★ 남에게 보여주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율법학자들은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말하는 와중에 성전에 있는 헌금함을 보았는데 부자들이 100만원 수표 내는 것과, 과부가 1000원 내는 것을 보았다. 이 헌금함은 성전에 출입했으니까 돈 내라는 전형적인 율법적인 장치였다) "부자들은 돈이 넉넉한 와중에 100만원 냈지만, 과부는 당장 돈이 없는데도 1000원을 내었다. (액수는 제쳐두고)저 과부가 제일 많이 넣었다" (부자는 100만원 내도 생활에 지장받지 않지만, 과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때문에 생활비 전부를 예물로 냈는데, 과부는 혜택을 받아야 함에도 율법을 운운하며 넣게할 정도로 더러운 놈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자기 수중에 돈이 별로 없는데도 전부를 넣은 가난한 과부를 칭찬한 것이 아니라, 혜택을 받아야할 과부들이 오히려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함에 대한 예수의 분노이다. 과부가 왜 혜택을 받아야 하는가는 아래(※십일조의 진실)에 적혀 있으니 참고하라.

더구나, 만약 이 부분을 예수가 과부를 칭찬을 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야기 흐름을 깬다. 마가복음 11장~13장과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에 의하면 성전에 들어간 후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쫒았고, 그에 대해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권한에 대해 문제 삼았으며,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을 비유로 이야기 하자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이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시험을 했고, 사두개인들과는 부활 논쟁을 벌였으며, 논쟁을 본 율법학자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고,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였으며(이 와중에 과부의 헌금이 나온다), 성전을 나가는데 성전이 전부 무너질 것이라 말하고 종말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가르친다.

마가복음 11장부터 13장의 내용까지 살펴보았다. 요약문만 읽어봐도 예수의 목소리는 격앙되어있으며 흥분해있다. 예수는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고 얼굴은 찌푸려져 있다. 그리고 성전에서의 분위기는 매우 험악하고 난리통이다. 시골촌놈을 어떻게 잡아볼까, 죽여볼까 대제사장과 높은 사람들까지 나선다. 성전에서 들어와서 나가는 순간까지도 예수와 대제사장과 율법교사들은 서로가 얼굴을 붉히며 화가 나있다. 이 와중에 예수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두 절도 채 안되는 부분인 과부의 헌금을 칭찬했다는 것은 누가봐도 이상하다. 허나 많은 주석서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

대표격으로 내가 예장합동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정교수 심상법(신약학, 성서해석학) 교수의 해석을 비판한 것이 있으니 자세히 보려면 링크를 따라가기 바란다.


  C)십일조하면 복 받는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필수로 알아야 할 사항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의 '하나님의 것을' '나의 것을' 같은 말은 히브리어 원문에 없다. 히브리어 원문은 '하나님을' '나를' 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의 것을'은 자의적인 해석이다. 표준새번역(1993)과 그의 개정판인 새번역(2001)도 위와 같이 번역하고 있는데 헛소리 번역이다. 오역일 뿐만아니라, 내 생각에는 일부러 이용해 먹으려고 이렇게 번역한 듯 싶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개신교 성경 전부 ('대한성서공회' 개역한글,개역개정,(표준)새번역, '생명의 말씀사' 현대인의성경,'두란노' 우리말성경, '아가페' 쉬운성경) 일부러 오역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동번역성서(1977)은 가톨릭의 눈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나를' 이라고 옳게 번역했으나, 8절에서 '소출에서 열의 하나(십일조)' 만 언급하고 '예물(헌물)'을 빼먹는 실수를 했다. 공동번역 개정판에서도 개정되지 않았다.


현재 이 단락의 제일 옳은 한글번역은 가톨릭 성경(2005)이다.

(※참고로 대표적인 영미권성경 NIV, KJV, NASB, NJB, RSV 모두 옳은 번역을 했다.)


따라서 이 부분만은 가톨릭 성경을 사용할 것이다.


(가톨릭 성경 말라키 3장)

6 나 주님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 너희는 조상 때부터 나의 규정에서 벗어나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러나 너희는 “어떻게 하면 저희가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고 말한다.

8 사람이 하느님을 약탈할 수 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약탈하면서 “저희가 어떻게 당신을 약탈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십일조와 예물이 아니냐!

9 너희 온 백성이 나를 약탈하고 있으니 저주를 받으리라.

10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하늘의 창문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넘치도록 쏟아 붓지 않나 보아라.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 떼를 꾸짖으리라. 그래서 그것들이 너희 땅의 소출을 망치지 않고 너희 밭의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12 그러면 모든 민족들이 너희를 행복하다고 하리니 바로 너희가 기쁨의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말라기 3장의 해석은 너무나 중요한데, 왜냐하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며 안 내는 사람은 도둑질하는 사람"이라 가르치면서 신자들의 마음에 죄를 심어줌에 있다. 십일조 이야기만 나오면 거품물고 들이미는 구절이 이 구절이기 때문에 가장 잘 이해해야 한다.


~의 것 이라고 해석하는 목사나 신학자가 있다면 당당하게 배틀을 신청하라. 가톨릭의 성경을 보는 개신교 목회자는 거의 없을테니, 영미권 개신교 성경 NIV나 KJV만 들이밀어도 할말이 없다. 문장도 간단하기 때문에 누구나 해석이 가능하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된 NIV 성경(개신교)으로 해당 구절을 확인해보면,

"Will a man rob God? Yet you rob me. "But you ask, 'How do we rob you?' "In tithes and offerings.

You are under a curse--the whole nation of you--because you are robbing me.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신을 강도질 할 수 있느냐? 그러나 너는 나를 강도질 했다. "하지만 너는 '우리가 당신을 강도질 할 수 있나요?' 하고 묻는다" "십일조와 바치는 예물이다"

너는 저주 아래 있을 것이다--너희 나라 모두--왜냐하면 너는 나를 강도질 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3장의 이 단락을 쉽게 말함과 동시에 당시의 이 말이 나온 시대배경과 말라기 전체의 내용을 괄호속에 집어 넣어 함께 설명하겠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4장 밖에 안되는 말라기를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말라기 3장 요약

야훼 曰 "내 백성아 제발 내게 다시 돌아와라"

이스라엘 曰 "(아니 이미 유배 갔다가 돌아와서 성전도 지어 당신 섬기고 있구만)돌아가려면 뭘 해야하나요? (유배 갔다왔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나라가 휘청거리니까 이런 힘든 상황 벗어나게 복이나 내려줘요)"

야훼 曰 "니들은 (제일 쉬운 율법인)십일조 부터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복을 달라고 하냐! (양심도 없는 것들아!) 땅의 소산물에 십일조하면 내가 그 땅의 소산물의 십일조가 나온 땅을 비옥하게 해줘서 복 줄테니까 다시 나를 제대로 섬겨라! (농산물이 별로 안 난다고 1/10보다 적게 내어, 나를 섬기기는 커녕 떼어 낸걸 자기들 먹고사는데 쓰면서 복 달래? 그것부터나 똑바로 해라! 제일 쉬운 율법부터라도 똑바로 지키고 내가 복 주나 안 주나 봐라!)"


이걸 이해하려면 말라기 1장부터 보면 더 확실하다.

(말라기 1장은) 성전을 새로 세워 제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백성들이 더러운 빵과 눈멀고 병든 짐승을 바치고, 훔친 걸 바치는 등 개판이었다. 원래는 제일 깨끗한 것과 제일 좋은 것을 바쳐야 함에도 대충대충 하니까 야훼는 나는 너희들이 싫다고 말하며 제사 다 필요없고 성전 다시 닫으라 한다.

(말라기 2장은) 백성들이 하도 율법을 편파적으로 지키길래 한번 바빌론 유배라는 벌을 받게 한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혼하지 말라니까 이혼이나 하고, 우상숭배하는 여자들과 결혼이나 하는 등 개판이나 치고 있다고 야훼가 쓴소리를 한다.

(말라기 3장은) 레위지파를 깨끗하게 해주어 올바른 제물을 바치게 할 것이며, 악인은 심판하겠다. 그러면서 십일조가 나오고, 의인과 악인을 구별해 의인을 아끼겠다고 한다.

(말라기 4장은) 율법을 지키라고 강조하면서 악인을 심판하겠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해당 구절과 말라기 전체의 내용은 십일조를 그리스도교에서 내냐 마냐와는 전혀 상관 없는 구절이 되겠다.


더불어, 개신교의 관점에선 '돈'의 십일조를 하면 뻥튀기 시켜 자신의 재산이 몇배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미국 석유왕 록펠러 이야기를 든다. 심지어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록펠러' 라는 책도 있는데, 자신이 처음엔 회계장부를 쓰면서 십일조를 하다가 재산이 많아지자 40명의 회계팀을 구성해 십일조를 냈다고 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본문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말라기 3:10에서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왔으니 터전도 도구도 제대로 없고, 농사도 제대로 안되고 하여 먹고 살 길은 막막하니까 하나님께 바칠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고 남은 것들로 근근히 살아갔던 것이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대해 실망스러운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진짜 농사가 잘 되게 해주는지 "나를 시험해보아라" 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절인 11절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예 본문을 10절 까지만 읽고 십일조 설교를 하는 설교가 대부분이고, 한 단락인 12절 까지 읽기는 하나 11절과 12절에 대해선 침묵하는 설교가 소수이다. 그 이유는 현금 십일조에 대해 독이 되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말라기 3: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 떼를 꾸짖으리라. 그래서 그것들이 너희 땅의 소출을 망치지 않고 너희 밭의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 라고 한 것이다. 개신교의 논리라면, '돈'을 뻥튀기하는데 왜 뜬금없이 메뚜기 떼로 인해 농사가 망쳐졌으니, 메뚜기를 통제하여 농사가 잘 되게 해준다는 것인가? 왜냐하면 개신교의 논리로는 이 구절은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 메뚜기, 땅, 포도나무, 열매 같은 명사들은 전혀 다른 것에 비유한 것이 아니다. 십일조의 대상은 '농산물' 이기 때문에 농사가 망쳐졌으니 농사가 되게 해주는지 안해주는지 십일조 제대로 하고 하나님을 시험해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십일조를 제대로 안해서 생계가 곤란했던 레위지파 사람들이 성직업무를 때려치우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느헤미야 13장).



※번외로 이 구절의 오역에 대한 자세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말라기 3:8~10

(사용한 성경은 개역개정판. 개역한글에서 도적->도둑 으로 개정했을 뿐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구절을 아무 생각없이 읽다보면 십일조와 봉헌물은 '하나님의 것'인데 사람이 도둑질 한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이 구절은 대한민국 개신교 성경들('대한성서공회' 개역한글,개역개정,(표준)새번역, '생명의 말씀사' 현대인의성경,'두란노' 우리말성경, '아가페' 쉬운성경)이 단체로 변개한 구절이다!


특히 8절과 9절에서 굵은 글씨로 표시해 둔 '~의 것'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은 물론이거니와 기타 다른 나라말 성경들 모두 '그런 표현 없다'.


말라기 3:8~9 히브리어 원문

היקבע אדם אלהים כי אתם קבעים אתי ואמרתם במה קבענוך המעשר והתרומה 

במארה אתם נארים ואתי אתם קבעים הגוי כלו


이 부분에서 칼 동사 קבע 의 번역이 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대부분 '강도질하다' 로 번역했다. 하지만 원어의 의미를 반영하자면 '숨기고 속여서 빼앗는다'는 의미다.


영어 성경 NJB(가톨릭)으로 확인해보면, 가장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를 잘 살린 번역이다. 칼 동사 קבע 를 속이다(cheat)로 번역하였다.

Can a human being cheat God?" Yet you try to cheat me! You ask, "How do we try to cheat you?" Over tithes and contributions.

A curse lies on you because you, this whole nation, try to cheat me.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신을 속일 수 있느냐?" 그러나 너는 나를 속이려 했다! 너는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속이나요?"하고 묻는다. 십일조와 예물이다.

너에게 저주가 내릴 것이다, 이 온 나라에게, 왜냐하면 나를 속이려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번역자의 몫은 개인적 의견(또는 교단,교파의 의견)을 번역할 때 다는 것이 아닌, 원문 그대로의 느낌과 의미를 얻을 수 있도록 언어에 맞게 번역하도록 노력함에 있다. 이를 지키지 못했으면 번역자의 자질이 좋지 못함은 분명하다. 


아울러 대한민국 목사들이 심심하면 강단에 서서 히브리어 원문이 어쩌고 원어가 어쩌고 언급하는데, 이런 것이야 말로 "히브리어 원어는 이런데 원어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고 이야기 해야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명사를 히브리어로 말하면서 자신이 잘 아는 척 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중에 목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라. 대부분 히브리어, 그리스어 사용은 쓸데없는 명사에다 대고 하지, 중요한 동사에 하지 않는다.



  D)십일조는 율법 이전부터 존재한 것이라 주장한다

창세기 14:17~24 아브라함(원래 이때는 이름이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1/10을 주었으니 율법 이전부터 존재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히브리서 7장을 추가해 주장하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의 법이나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 자기 입맛대로 골라선 안된다. 율법 이전의 전통이자 규례인 십일조를 지킨다면 당연히 할례를 받아야 하며, 짐승의 엉덩이뼈의 큰 힘줄을 먹어선 안된다. 더구나 자손이 없으면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아이를 낳아야 하고, 노예 제도를 지지해야 하며, 일부일처제를 부정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1/10을 준 것은 십일조 제도도 아니었고, 1회성에 그친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1/10 바친 사건과 달리 십일조 제도는 어떤 것을 내야하는지, 언제 내야 하는지, 사용처는 어때야 하는지가 명확했다.


히브리서 7장 을 살펴보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히브리서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히브리인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레위지파의 제사장 체계를 다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레위지파 제사장 체계보다 멜기세덱 제사장 체계가 더 훌륭함을 강조 하는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정리하여 설명하겠다.


레위지파 제사장 체계는 족보도 있으며 시작과 끝도 있지만, 멜기세덱은 그런 것도 없다. 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하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데 그 조상이 멜기세덱에게 바쳤을 정도이다! 레위지파 중에서 일부가 제사장이 되었고, 제사장은 레위지파로부터 또 십일조를 받았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레위지파도 아니고 그 일부의 제사장 계통도 아닌데 십일조를 받았다. 그러므로 레위지파 제사장 체계보다 멜기세덱 제사장 체계가 더 훌륭하다! 한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1/10을 줄때는 아브라함의 허리(또는 몸으로 번역, 정액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해석은 약간 이상하다. 고대 사람들의 생각은 정액 개념까지 가지 못했으니까.)에 레위가 있었으니 레위도 멜기세덱에게 바친 꼴이다! 시편 110편에도 표현하듯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했다. 영원한 제사장, 죽지 않는 제사장, 대제사장으로써 제물을 대신 바쳐주는 제사장, 그러면서 그 자신이 제물이된 제사장, 혈통으로 제사장이 아닌 제사장,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이시다!


내용이 이해가 되는가? 히브리서 7장의 강조와 설명은 십일조가 아니라 '진정한 제사장은 예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당 구절도 십일조를 내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더구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1/10 준 것은 '전리품'이다. 전리품에 대한 율법은 1/10 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전통이 신이 직접 말해준 율법보다 앞선다는 말인가?


민수기 31:25~30

2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6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집안 우두머리들과 함께 전리품의 수와 포로로 잡아온 사람과 짐승의 머리 수를 세어라.

27 너는 전리품으로 가져 온 것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반은 전쟁에 나갔다 온 군인들에게 주고, 반은 모든 회중에게 주어라.

28 전쟁에 나갔다 온 사람들에게서는 나 주에게 바칠 세금 몫을 떼어 내어라. 사람이든 소든 나귀든 양 떼든, 그 오백분의 일을,

29 그들에게 나누어 준 절반에서 떼어 내어, 나 주에게 바치는 제물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어라.

30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누어 준 절반에서는, 사람이든지 소든지 나귀든지 양이든지, 그 어떤 가축이든지, 오십분의 일을 떼어 내어 주의 성막을 보살피는 레위 사람에게 주어라."


마찬가지로 창세기 28:10~22 에서 야곱이 자신을 지켜준다면 1/10을 바치겠다는 약속일 뿐. 그것을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면 곤란하다. 더구나 바쳤는지 안 바쳤는지 결과를 알 수 없다. 나오지 않는다.



3)낸다고 하더라도 사용처가 잘못 되었다


십일조는 제사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레위인과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고아,과부와 같은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십일조는 소외된 이웃에게 사용하는 양이 극히 적다고 조사된 바 있으며, 거의 예배당 건립에 돈을 쓰거나 담임목사와 그 가족들 어깨에 힘주려는데 사용되고 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던 개신교가 애초에 존재자체가 없던 예배당을 짓는다는 것은 명백히 사기이다. 또 십일조를 걷어 그런 곳에 쓰라고 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목사는 레위지파 성직계급이 아니므로 받아 쓸 권리가 없다.



4)낸다고 하더라도 매달 걷는 것은 잘못 되었다


신명기 14:22 당신들은 해마다 밭에서 거둔 소출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밭에서 거둔 소출(곡식,포도주,기름)'의 1/10을 1년마다 예루살렘에 내야 한다. 또 1년마다 1/10을 따로 떼어 자신과 그 가족끼리 먹고 마시며 즐기는데 썼어야 한다. 그리고 3년마다 또 다른 1/10을 모아 별로 받은게 없는 레위인과 소외계층(고아,과부 등)을 위해 쓰는 것으로 되어있다. 농사와 목축은 절대 1개월 만에 만들어 낼 수 없으므로 당연한 이야기이다. 허나 현대의 한국 개신교는 '매달' 걷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 십일조의 전통을 지킨다 하더라도 1개월에 1번 현금 월급의 십일조는 그냥 헛소리다.


원래는 곡식,포도주,기름(팔레스타인 지역의 3대 농산물) 정도에나 붙던 세금인 십일조가 나중에는 '기른 가축'에게도 십일조가 적용되었으며(레위 27:32), '박하,회향,근채'와 같은 잡 농산물에도 적용되었다(마태23:23).


한편 실질적으로 십일조를 걷어 사용하는 것에 이스라엘 전체가 삐걱거렸었다. 바빌론 유배이후 명확한 규례 보단 뭉뚱그려 사용되고 걷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제대로 안 걷어져서, 심지어 레위인들이 성직업무를 때려 치우고 일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내용은 느헤미야 13장에 기록되어있다. 맨 밑에서 살펴볼 것이다.



5)낸다고 하더라도 돈을 걷는 것은 잘못 되었다


(신명기 12:17) 당신들이 십일조로 바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서원하고 드린 갖가지 서원제물과 자원제물과 높이 들어 바치는 곡식제물은, 성 안에서는 먹을 수 없습니다.

(신명기 14:23) 당신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처음 난 소와 양의 새끼와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서, 주님 앞에서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느헤미야 13:5) 그런데 그가 도비야에게 큰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 방은 처음부터 곡식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주려고 십일조로 거두어들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제사장들의 몫으로 바친 제물을 두는 곳이다.

(역대기 31:6) 유다의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 왔고, 주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릴 물건의 십일조를 가져 왔다. 이렇게 가져 온 것을 차곡차곡 더미가 되도록 쌓았다.


무엇을 십일조 해야하는지 예를 들어 써주고 있다. 곡식, 포도주, 기름, 소, 양 처럼 '땅에서 난 산물' 혹은 '잘 기른 짐승' 이다. 돈이 아니다.


지금은 화폐로 거래하니까 화폐로 내는게 맞지 않느냐는 반박이 있을지 모르나, 화폐는 창세기부터 통용되면서도,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모두 화폐로 십일조 낸 사례나 규례가 단 한개도 없다! 


창세기만 언급하자면,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 몇 세겔을 주었는가? 400세겔이다. 십일조를 바쳤다고 주장하던 아브라함도 돈으로 아내를 묻을 밭을 샀다. 또 형제들이 요셉을 몇 세겔에 팔았는지 잊었는가? 마치 돈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개신교의 작태를 보라.


화폐를 제출한 사례는 사도행전의 신약시대에 재산을 모두 화폐로 바꾸어 '공동재산'으로 사용한 경우이다.


화폐를 쓰는 규정은 신명기 14:22~29 너무 멀어서 가지고 갈 수 없다면, 돈으로 바꾼 후, 돈으로 '구매를 하고 사용하라' 하였다. '돈으로 내라'가 아니라. 더구나 그 경우 세금으로 내는 십일조가 아니었다(2차 십일조).


더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예수는 마태23:23(=누가11:42)에서 십일조는 박하,회향,근채를 언급하고 있으며 모두 '땅에서 난 산물'이다. 그렇게 십일조를 화폐로 내는게 중요했다면 예수가 돈으로 내라고 하거나 왜 돈으로 하지 않느냐고 언급했었을 것이다. 또는 율법에 그리하라고 애초부터 써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유다 역사상 화폐로 낸 적은 없으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도 원래는 농산물로 받다가 벌이를 늘리고 싶어 타락한 시대에 와서야 돈으로 내라고 규정을 바꾸어 걷어들인게 현대 십일조의 기원이다. 착각하지 마라.



6)신약의 돈개념은 십일조가 아니라 공동재산이다


(사도행전 2:24~25)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사도행전 4:32~35)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중략)..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공동재산으로 사용했고,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가까웠다.


(사도행전 5:1~11) 요약하자면, 공동재산으로 쓰려고 모두가 전부를 내놓을때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일부를 떼어서 내놓았다. 그것을 베드로가 호통치자 둘 모두 야훼를 속인 죄로 죽었다. 사실 십일조 보다 더 부담스러운 전통이다. 왜 이 전통을 숨기려하고 십일조를 부활하려 하는가? 왜 이 구절은 강단에 서서 설교하지 않는가?



7)사도 바울은 마음에 정한대로 내라고 했다


고린도후서 9:7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자기가 내고 싶은 대로 내는 것이지 특정 비율이 아니다. 더구나 설령 현대의 현금 십일조를 낸다한들 억지로 십일조를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지 않을 것이다. 1%를 내든, 10%를 내든, 100%를 내든 마음에 없었다면 그것은 가짜 헌금이다. 그저 남에게 보이기 좋아한 바리새인과 다른 것이 전혀 없다. 


고린도전서 16:2 매주 첫날에, 여러분은 저마다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해 두십시오. 그래서 내가 갈 때에, 그제야 헌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걸 보고 혹시? 할지 모르겠는데, 어지간히 글을 못 읽지 않는 이상, 누구에게나 일괄적인 비율로 저축하는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헌금모금 개념은 연보이며, 그것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 당시에는 흉년과 기근이 들어 벌이가 없어진 시대이다. 그래서 모교회를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에 쓴 것이다. 바울이 쓰거나 예배당 건설이 아니다. 바울이 다른 사람을 시켜 보내겠다고 하면서 자기도 같이 가는게 마땅하면 같이 가겠다고 하고 있다.





※십일조의 진실

십일조에는 1,2,3차 십일조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차 십일조만 알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십일조 제도의 진실을 신자들에게 말했을 경우, 무언가 독이 되었던 것이 분명할 터. 1,2,3차 십일조는 본인이 직접 분류한 것이므로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1차 십일조

-> 레위인과 레위인 중에서도 제사장 계통을 먹여 살리기 위한 신정국가의 세금.

(이것이 한국 개신교가 흔히 알고 있는 십일조의 개념이다.)


민수기 18장

레위 사람의 몫


21    "나는 레위 자손에게는 이스라엘 안에서 바치는 열의 하나를 모두 그들이 받을 유산으로 준다. 이것은 그들이 회막 일을 거드는 것에 대한 보수이다. 

22    이제부터 이스라엘 자손은 회막에 접근하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다가는 그 죄값을 지고 죽을 것이다. 

23    회막 일은 레위 사람들이 한다. 이것을 어긴 죄값은 레위 사람이 진다. 이것은 오고오는 세대에 언제나 지켜야 할 율례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아무런 유산이 없다. 

24    그 대신에 나는 그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제물, 곧 열의 하나를 그들의 유산으로 준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아무런 유산도 없다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전체의 십일조를 받을 권리가 있던 대신 조상으로 부터 재산을 상속받지는 못하였다. 십일조를 받은 것으로 먹고 살아야 했다.



민수기 18장

레위 사람의 십일조


25    주님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6    "레위 사람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일러라. 너희가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내가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는 열의 하나를 받을 때에, 너희는 열의 하나 받은 것에서 열째 몫을, 나 주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제물로 드려라. 

27    나는 너희가 바치는 그 제물을, 너희가 타작 마당에서 떼어 낸 곡식처럼, 포도 짜는 틀에서 떠낸 포도주처럼 여길 것이다. 

28    이렇게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떼어, 나 주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제물로 드리고, 나 주에게 드린 그 제물은 제사장 아론의 몫으로 돌려라. 

29    너희는 주의 몫으로는 너희가 받는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좋고 가장 거룩한 부분을, 들어 올려 바치는 제물로 모두 바쳐야 한다.

30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희가 가장 좋은 부분을 들어 올려 바칠 때에, 나는 그것을 레위 사람이 타작 마당이나 포도 짜는 틀에서 나온 것을 바치는 것처럼 여길 것이다. 

31    그 나머지는 너희와 너희 집안 사람이 어디에서나 먹어라. 그것은 너희가 회막에서 하는 일에 대한 보수이기 때문이다. 

32    가장 좋은 부분을 들어 올려 바침으로써, 너희는 이 일에 죄를 짓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는 이스라엘이 바친 거룩한 제물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죽지 않는다."


-> 레위인들은 십일조 받은 것에 또 십일조를 해야했다. 왜냐하면 레위인의 십일조는 레위인 중에서 제사장인 아론 계통에게 주어야 해서 아론 계통이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2차 십일조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 준 십일조. 1차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이 또 2차 십일조를 행해야 했는데, 그것으로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것을 사서(독주 마저도) 레위인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종과 함께 하나님을 생각하며 먹고 즐기는 것이었다. 이 십일조 규례는 먹고 마시며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어디에 '내는' 것이 아니다.


신명기 12장

17    당신들이 십일조로 바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서원하고 드린 갖가지 서원제물과 자원제물과 높이 들어 바치는 곡식제물은, 성 안에서는 먹을 수 없습니다. 

18    그것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먹도록 하십시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와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 사는 레위 사람과 함께 먹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높이 들어 바친 모든 것을 즐거워하십시오. 


신명기 14장

22    "당신들은 해마다 밭에서 거둔 소출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23    당신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처음 난 소와 양의 새끼와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서, 주님 앞에서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24    그러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이, 당신들이 있는 곳에서 너무 멀고, 가기가 어려워서,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당신들은 그것을 돈으로 바꿔서, 그 돈을 가지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십시오. 소든지 양이든지 포도주든지 독한 술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십시오. 

27    그러나 성 안에서 당신들과 함께 사는 레위 사람은,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기서 번외로 한국 개신교의 (11번째 계명에 가까운) 금주 교리는 무너진다. 포도주는 물론 이거니와 '독주' 까지 마셔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는 일이므로 더욱 문제될 것이 없다.




3차 십일조

->별로 받지 못한 레위인과 소외계층(떠돌이,고아,과부)을 위해 3년마다 1/10을 베푸는(어디에 '내는' 것이 아님) 십일조. 평균적으로 매년 약 3.3% 정도.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주어 먹게 하는 것이다. 


신명기 14장

28    당신들은 매 삼 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29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이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위와 같은 1,2,3차 십일조가 철저하게 있었지만 실상은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었다.


느헤미야는 말라기와 동시대 인물이다. 앞선 말라기 내용을 상기하면서 읽어도 좋다.


느헤미야 13장 전체정리(본문생략)

느헤미야는 유다지파 출신의 정치가이자 바빌론 포로 생활기에 고위 관리이다. 그는 성벽을 재건하고 유다교 종교 개혁을 단행한 인물이다. 그 과정이 13장에 나와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십일조를 제대로 걷지않아 레위인이 제사를 안하고 밭에 나가 농사를 지어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등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뿐더러, 안식일에 장사를 하고, 이방인 여자와 결혼을 하는 등 개판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이 현실은 지금도 적용할 수 있는데, 현대 개신교회에서도 십일조를 모두 내고 있지는 않는다는 점을 살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진배없음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