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V(제임스 왕 흠정역 성경)의 역사와 의의와 문제점

종교경전/번역성경 2013. 3. 27. 23:19

<모든 글은 직접 작성함>


-역사

제임스 1세 왕은 스코틀랜드에서 원래 왕(제임스 6세)이었는데 기존 영국 연방 왕가의 대가 끊기자 영국 연방의 왕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았다. 그의 어머니는 영국 연방 여왕에서 폐위되었고, 자신이 왕이던 스코틀랜드의 스코틀랜드 장로회와는 원수지간에 가까웠으며, 죽은 여왕과 외사촌이긴 했으나 왕조가 바뀌어 버렸고, 유아 시절부터 왕이 된 그에게 대한 불만족스러움과,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폄하, 영국 성공회와 마찰, 의회와의 수 많은 마찰 등으로 말이 많았다. 


영국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각각 군주가 있었다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는 합쳐져 왕이 있었고 잉글랜드&아일랜드 왕과 스코틀랜드 왕이 있었다가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아일랜드 왕을 이어받게 되면서 잉글랜드&아일랜드&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1세 부터 3군데 왕을 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그에게는 정치적 목적으로 왕권강화의 필요성이 있었던데다, 영국 내부적으로 교회 자체가 분열되어 있어서 골머리를 앓았다. 종교개혁의 산물로 영국 성공회와 장로회(청교도)로 갈라져 싸움질이나 하고 있었고 국가를 하나로 모으는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임스 1세보다 약 100년 전의 영국 왕 헨리 8세는 혼인무효와 관련해 영국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교황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빼앗았으나 처음엔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던 것과는 별 상관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빼앗았다. 결국 얼마 못가 다시 로마 가톨릭 교회로 회귀 했다가, 제임스 1세의 전임 왕 엘리자베스 1세 때에야 비로소 다시 회귀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종교 개혁적 손질을 하여 영국 성공회 라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그걸 바라본 청교도들(스코틀랜드 장로회)은 로마 가톨릭의 냄새가 짙은 불완전한 종교 개혁이 무슨 종교 개혁이냐고 반발하면서 새롭게 다시 개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에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종교 일치와 성경 일치이다. 여담이지만 종교 일치를 위해 청교도들을 성공회로 이동시키려고 강압적으로 정치를 했고 그 결과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도망가 미국을 세운 것이다. (그들의 후배?(후손?)들이 결국 조선으로 선교하러 들어와 무혈입성하고 일제와 미국과 독재에 빌붙으며 성장한 대한민국 장로회가 되었고 그들이 우리나라를 주름잡은 것이다). 더구나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신정설)을 주장하여 엄청난 왕권을 꿈꿨다. 제임스 1세가 당시 시대에 앞장서 주장했고 성경과 종교일치도 결국은 자신이 절대왕권을 가지고자 한 것이다. 후에 진정한 왕권신수설을 이룬 사람은 태양왕 루이 14세이다.


어쨌든 성경의 번역을 둘이 함께 하면 둘 사이의 앙금도 해소될 겸, 분열이 아닌 통일을 할 수 있고, 왕권강화에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당시 성공회의 주교의 성경(Bishop's Bible)과 장로회(청교도)의 제네바 성경(Geneva Bible)과 틴데일 성경을 개정한 대성경(The Great Bible)이 경쟁하고 있었고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싸움의 대부분은 주교의 성경과 제네바 성경의 싸움이었다. 청교도의 제네바 성경은 책의 1/4은 주석이요 3/4는 본문으로 본문 한줄 읽고 난외 주석을 읽어야 하여 본문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들어 특히 제임스 1세가 싫어했다. 그래서 왕이 직접 명령하여 모든 교회에서 읽을 수 있고 난외주가 거의 없는 성경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KJV를 만드는데 7년 걸렸고 출판했다. 영국이 강대국이 되고 영어가 거의 공용어가 되면서 KJV은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400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살아남았다.



-의의

왕의 명령으로, 47명의 학자가 모여 만들었으며, 장로회와 성공회의 화합을 도모한 점, 짧고 굵게 리듬감을 주어 번역하여 읽을 때 힘이 난다는 점, 긴 역사를 거쳐 살아남은 점, 단일 역본으로 엄청나게 팔린 점 등이 거론된다.


또 KJV는 영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KJV 이후의 영문학을 공부하는데 KJV를 빼면 남는게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현재에도 영어권 국가의 회화나 글에서 어디에 빗대거나 표현을 할때에 툭 하면 KJV의 표현이 등장한다.



-문제점

구약은 그리스어 70인역이나 라틴어 불가타를 번역했고(히브리어 마소라도 참고는 했으나 우선적인 수용은 아니었다), 신약은 TR(수용본문)과 라틴어 불가타, 구약 외경(가톨릭 표현으론 제2경전)은 대체로 바티칸 사본을 참조한 그리스어 성경과 일부 라틴어 불가타를 사용했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설명한 대본을 사용하긴 했는데 대체로 KJV를 만드는 번역원칙에는 영어 성경(그중에도 주교의 성경)이 우선이었다. 더구나 문제는 기존 영어성경(구체적으로 제네바 성경)을 그대로 베끼기 까지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번역이 완벽하다면 베꼈다 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으나 그 부분이 상당하다. 웃긴 것은 성공회 번역자들이 장로회 성경을 그대로 베낀 것에 있겠지만 말이다.


더구나 KJV은 성경의 원문이 아닌 교리를 담은 성경이다. KJV을 달달 읽고 외우면 교리를 한번만 들어도 아 그렇구나 하게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킹 제임스 성경이 나오기 전의 교리들(물론 그것이 나름 정통교리이긴 하다)로 원문을 변형시켜서 갖다가 박은 것이다.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신학적 입장으로 바라보면 별로 좋지 않다. 역사와 의의와 문제점을 다 제쳐두고라도, 누가 되었든 간에 전체적 내용파악 하는데는 KJV이든 아니든 전혀 문제가 없다. 일반인에겐 이런 논쟁은 별로 중요치 않고, 신학논쟁에서만 의의를 얻는다. 한 단어까지 일일이 따져드는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엔 좋은 성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7년에 걸쳐 만들었으나 실질적으로 집필한 기간은 반도 안된다. 앞의 반은 개인연구하는데 시간을 들이고, 뒤에 일부는 얼른 써내기 바빴고, 교정작업을 하도록 보낸 후 몇 개월 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왜냐면 급했으니까. 왕권 강화 하려고 몇 십년을 기다리다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시 학자들의 언어적 이해도가 현대 학자들의 언어적 이해도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것은 웃기다. 지금은 컴퓨터로 단어 치면 의미와 예문까지 언어학적으로 분석한 것 까지 나오지만, 그 시절은 연구도 부족했으며 단어 하나의 의미 찾는데도 한참 걸리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KJV의 그리스어 신약 대본은 TR(수용본문)이었다. 이 당시에는 인쇄술로 찍어낸 최신이자 최초의 그리스어 성경이었지만 지금 TR은 엄청난 공격을 당했고 권위는 무너졌다. TR이 무너지면서 KJV 역시 같이 신학에선 권위가 무너져 버린 성경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