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이스라엘의 상황과 종교,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초대교회와 유다교

유대교 2014. 1. 30. 22:01

1세기 이스라엘의 상황과 종교,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초대교회와 유다교


*사용 용어는 대부분 공동번역을 따름.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고 이스라엘의 종교(유다교란 표현이 없다)는 하나였다.


(CE 1~30년대 초중반) 예수가 살던 1세기 전반부에는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혁명당(이 세 분파가 성전을 인정했다), 에세네파, 세례자 요한파(이 두 분파가 성전을 부패했다며 불인정했다)가 존재했다. 원래 이스라엘의 종교에는 분파는 있을지언정, 이단은 없다. 이 분파들은 각자 특색이 있었으나 공통점도 있었고 차이점도 적지 않았다. 물론 상당수 무지몽매한 평민들은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팔레스티나 지역의 갈릴래아 땅은 유다 땅보다 북쪽에 있던 사마리아 땅보다도 더 북쪽에 있는 곳이다. 즉, 갈릴래아가 북부, 사마리아가 중부, 유다가 남부이다.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예수는 태어나고 자랐다.


(CE 30년대 중후반) 식민지는 원래 수탈하라고 강제로 빼앗은 땅이지만, 특히 갈릴래아에서는 수탈이 극심했다. 먹고살기 바쁜 그 와중에 목수(번역은 목수이나 실은 석공에 가깝다. 결국 일용직 노동자)나 하던 무식한 자가 세례자 요한파에서 세례를 받고 배웠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정치범으로 사형 당한다. 배워봤자 얼마나 배웠다고 자신이 직접 토라(가르침, 율법)에 대해 떠든다. 갑자기 율법선생(랍비)이 되었다. 별거 아니던 놈이 율법에 대해 떠드니 갈릴래아 주민들은 무시하고 비웃는다. 더군다나 율법상 죄인들이나 소외된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식사를 같이 한다. 이를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 비유하자면, 양반과 여자와 노비가 같은 밥상에서 같은 음식을 같이 먹은 것이다. 파격적인 행보이다. 그러다 갈릴래아에서 더 이상 활동이 안 되니 떠돌이 설교자를 시작한다. 이곳저곳을 돌며 가르치는데 말과 행동이 파격적이다. 랍비처럼 제자들을 몰고 다니며 평민들이 주축이 된 소규모의 나자렛파를 형성했다. 예언자적 행동으로 종교와 성전과 성직자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을 가한다. 그에 화가난 지도자들은 예수가 몇 년간 활동하며 밉보인 것들을 다 트집잡아 식민지 지배국가인 로마에 고발한다. 죄목은 정치범, '국가의 왕(결국 이 국가는 하느님의 나라, 신정통치국가, 神國)'을 자처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정치범 최악의 형벌인 십자가형으로 사형당하자 나자렛파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CE 40년대~50년대 후반) 나자렛파를 이루었던 대부분의 평민들은 회당의 공적 예배와 더불어 집이 있는 사람의 집에서 예수가 했던 것처럼 같이 식사하면서 예수의 가르침을 전승했다. 이 전승모임 중 갈릴래아의 전승모임은 Q공동체라 불리는 집단으로 초기에는 예수를 직접 봤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초기 직접 목격자들이 사망해가자 Q복음서를 집필한다. 이 와중에 파울로스는 나자렛파를 박해하던 사람에서, 스스로 나자렛파에 들어가 나자렛파를 변호했다. 파울로스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도시들에 가정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가르침을 주었다. 


(CE 60년대~70년대) 그러다 파울로스는 참수형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혁명당은 독립전쟁(후에 역사가들은 제1차 유다독립전쟁이라 명명함)을 일으켜서 4년간 로마군과 전쟁을 벌였으나 실패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무너졌다. 예루살렘 성전은 곧 하느님인 야훼가 있는 곳으로 야훼와 동급으로 여겨졌다. 이스라엘의 신이 무너진 것이다. 성전의 무너짐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대 충격으로 다가왔고, 반 로마파인 에세네파와 나자렛파와 세례자 요한파가 갈망하던 세상의 종말인 '로마의 멸망과 신정국가의 회복'은 오지 않았다. 역시 반 로마파인 혁명당은 반란으로 낙인찍힌 역사에서 패배해 숙청되어 사라진다. 이에 더불어 성전이 타락했다며 사막으로 나가 생활했던 에세네파(쿰란 공동체) 역시 로마군에 의해 공격받아 사라진다. 사두가이파는 성전 제의에만 관심이 있었으므로 성전이 무너지고는 모든 것을 잃게 되어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이스라엘 밖 나자렛파에서 제2복음서(마르코 복음서)가 집필된다. 성전이 없어지고 나자 바리사이파는 회당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이것이 성전 유다교에서 랍비 유다교로의 전환이다. 


※번외 :  바리사이파가 전환시켜 이어가던 랍비 유다교는 CE 2세기에 입으로 전승되던 것들을 모아 미쉬나를 만들었고 이것이 탈무드의 토대이다.


(CE 80년대) 율법의 철저한 준수를 주장했던 바리사이파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는 나자렛파를 경멸했고 회당에서 내쫒았다. 이러는 와중에 제1복음서(마태오 복음서)와 제3복음서(루가 복음서)가 해외에서 제작되고, 가정교회에서 모이던 나자렛파는 자신들만의 교리문서(소위 파울로스 차명서신과, 공동 서신)를 쓰기 시작한다. 시리아의 나자렛파(제1복음서의 저작 장소)는 Q공동체와 세례자 요한파를 흡수하게 된다.


(CE 90년대) Q문서, 제1복음서, 제2복음서, 제3복음서 모두 그리스어로 제작되었고 그리스어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나자렛파는 그리스어 성경(LXX)을 썼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고집하면서 얌니아 회의를 연다. 나자렛파를 축출하기 위해 그들이 보는 그리스어 성경에 대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성경 목록을 짰다. 그리고 나자렛파에 대해 메시아는 오지 않았으며,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 하여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회당에서 내쫒는다. 이스라엘 종교 두 분파가 서로에게 욕설을 하며 갈라선다. 그렇게 한개의 종교는 두 분파에 의해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로 나뉘게 된다. 바리사이파는 회당 중심의 랍비 유다교를 이어가고 있었고, 회당을 떠나 가정교회에서 만찬과 예배를 하던 나자렛파는 그리스도교가 되어 자신들에게 필요한 문서들(소위 목회서신이라 불리는 것들)을 만들기 시작하고 조직화되었다. 이때 생겨난 복음서가 제4복음서(요한 복음서)이다. 나자렛파는 바리사이파와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겪으며 90년대 말,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한 요한의 묵시록이 작성된다.


이것이 1세기 이스라엘의 상황과 종교,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초대교회와 유다교의 상황이다.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의 하나이던 종교의 대부분의 분파를 없애고, 예수 한명을 보는 시각이 달랐던 두 분파는 두개의 종교로 갈라지게 된다.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나온 예수

경전 외부자료 2013. 9. 21. 23:28

[63] Now there was about this time Jesus, a wise man, if it be lawful to call him a man; for he was a doer of wonderful works, a teacher of such men as receive the truth with pleasure. He drew over to him both many of the Jews and many of the Gentiles. He was [the] Christ. And when Pilate, at the suggestion of the principal men amongst us, had condemned him to the cross, those that loved him at the first did not forsake him; for he appeared to them alive again the third day; as the divine prophets had foretold these and ten thousand other wonderful things concerning him. And the tribe of Christians, so named from him, are not extinct at this day.


이때, 예수라는 현명한 사람이 있었다. [만약 그를 한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그는 믿기 힘든 대단한 일을 했고, 진리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의 스승이었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많은 이방인들(그리스-로마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그리스도(메시아) 였다]. 필라투스가 우리(유대인)중 지도자의 고발로 그를 십자가에 처형 했을 때에, 그를 처음부터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3일만에 다시 살아서 나타났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이 이것을 예언했고, 1만개의(많은) 그에 대한 다른 놀라운 것들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붙은 이름에 따라 크리스천(그리스도인) 이라 불린 집단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존재한다).


-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8, 63. translated by 전투적무신론


1세기 저작물 중에서 유일하게 예수를 언급하는 부분으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다. 허나 저자인 요세푸스는 유대반란 당시 항복하여 역사가로써 지원을 받으며 저작 활동에 전념하였지만, 유대인의 배신자였기 때문에 그의 자료는 유대인들에게서 필사되고 읽혀진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


[ ] 부분은 최소한 이 부분만은 그리스도인들의 가필로 여겨지며, 문체나 단어가 요세푸스의 것이 아닌데다, 역사적 진술과는 거리가 먼 덧붙인 말이다.

( ) 부분은 요세푸스가 표현한 것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의역한 표현이다. 나머지는 직역.


회의론자들은 '예수 부분 자체가 조작이며 그것이 없어야 앞뒤 내용이 자연스레 연결된다' 라고 말하는데, 이 또한 신빙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부분만 제거해서 앞뒤를 연결한다면 내용이 부드럽게 이어지므로.


현재의 결론은 내용 중간중간에 삽입된 그리스도인들의 가필을 제거해서 최소한의 본문을 남기는 것으로 합니다. 


즉, '요세푸스가 진짜로 썼다면 이정도 본문은 진짜 있었을 것이다' 라는 부분입니다.


예수 부분이 조작 되었음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부분 조작이냐, 전체 조작이냐로 나누어져 있을 뿐. 물론 그것을 확정 지을 만한 사람이 없지요. 요세푸스는 지금으로부터 1900년 전 사람이니까. 타임머신 타고 요세푸스가 쓰고 있는 모습을 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건 어느 작품이든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래서는 논의의 진행이 안되고 서로가 허공에 짖을 뿐이니, 그런 말은 말장난이며 쓸데 없는 부분입니다. 즉 '조작 되었을 것' 이라는 표현이나 '조작 되었다' 라는 표현이나 지금 상황에서 단어 분석, 문체 분석, 내용 분석, 편집 분석 이라는 압도적 증거로 해당 가필을 제거한 마당이므로 둘 다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이겁니다.


원래는 '아마도 조작 되었을 것' 이라 표현해야 함이 옳지만, 지금은 학계 결론이 '조작 되었다' 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학계의 논쟁은 '부분 조작 vs 전체 조작' 의 구도로 되어있지, '조작 vs 조작 아님' 의 구도는 이미 끝났습니다.

크리스천이 못하는 메시아론 변증 - 다윗의 후손

종교경전/신약성경 2013. 6. 30. 23:48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아(히브리어:메시아, 그리스어:크리스토스) 왕이 되었고, 그에 대한 전설 등으로 인해 다윗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나온다는 성경구절을 제시하면서, 다윗이 태어난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나기 까지 한다고 써있다.


쉽게 말해, 메시아의 조건에 '다윗의 후손'은 필수이다. 그리고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었다고 주장되었다.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 불린 사실은 공관복음서+사도행전 이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유주의와 무신론 까지 인정하는 바울 친서 '로마서 1:3' 에서도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라 주장되고 있다. 심지어 메시아론 변증과 아무 상관없는 요한복음 조차도 이를 알고 있었다. 예수 스스로 '나는 다윗의 후손이다'며 명백히 하진 않았지만, 복음서 저자들과 군중들은 예수를 다윗의 후손이라 칭했다.


유대교에서는 부계혈통상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오는 것도 맞고,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라 칭함 받은 것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서에서 다윗의 후손이라 적힌 부계혈통의 증거를 들이민 것도 다 인정한다. 문제는 마태와 누가에 의하면, 예수는 처녀잉태로 태어났으므로 아버지가 없다.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은 예수 탄생에 아무것도 기여한 것이 없으니 그 족보의 근거는 무시된다. 요셉이 다윗의 후손임이 틀림이 없더라도, 예수를 낳도록 한 것은 요셉이 아니므로(마리아와 성령이다), 따라서 예수가 다윗의 후손임은 아직 입증되지 못했다.


더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그리고 마태와 누가의 족보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태복음 족보는 양아버지 요셉의 족보이고, 누가복음 족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족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었으나, 유대교는 물론이고 그리스도교에서도 엄청난 비판을 불러왔다. 당시 유대교는 여자는 물건과 동일시 되었던 시절이라 모계혈통은 싹 무시되었기에 근거로 쓸 수 없고, 그리스도교에서는 누가가 부계혈통 다윗의 후손을 변증한 것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마태는 요셉의 족보에서 일부러 누락시켜 14대를 맞춰 썼고, 누가는 그냥 길게 썼다. 두 복음서 작가의 족보의 근거는 달랐다.


더구나 마리아는 레위지파일 가능성도 있다.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과 그의 남편 스갸랴와 그의 아들 세례자 요한은 레위지파다. 하지만 마리아가 어디지파 출신인지 자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설일 뿐이다. 친척이라는 단어로 몇 촌 관계냐를 따진다면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기 때문에, 마리아는 유다지파일 가능성 역시 존재하며 그것이 맞다고 여겨지더라도 여자의 족보는 근거로 쓰일 수 없다. 그것을 가지고 마리아 족보네 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못하고, 그 근본을 모르니까 떠드는 헛소리다. (이 마리아 족보라는 잘못된 해석이, 설명하는데 편하고 믿는데 편하니까 너도나도 이유는 모른채 설명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있다)


두 족보에서 다른 점을 살펴봐야 할 부분은 다윗의 친아들(마태-솔로몬, 누가-나단),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의 아버지(즉, 예수의 친 할아버지. 마태-마탄, 누가-엘리) 부분 뿐이다. 이는 두 족보는 같은 자료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며, 누구 한명의 잘못도 아니다. 이것을 가지고 마리아 족보설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요셉이 마리아의 아버지(예수의 외할아버지)에게 혈통을 잇도록 족보를 이었네 어쩌네 하는 주장을 펼쳤었다.


족보에 관한 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역시 셀 수 없는 가정을 토대로 경우의 수를 나열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 헛된 주장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두 족보의 이야기는 '부계혈통상 다윗의 후손' 이라는 메시아의 조건을 변증하기 위한 자료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태복음서의 아브라함-다윗-(요셉)-예수 로 이어지는 족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유다지파 다윗 왕의 후손인 예수는 메시아 라고 변증하기 위한 족보이고,

누가복음서의 아담-아브라함-다윗-(요셉)-예수 로 이어지는 족보는, 신의 첫 작품 아담의 후손이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유다지파 다윗 왕의 후손인 예수는 메시아라고 변증하기 위한 족보이다.


복음서의 족보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 전부다.

허나, 공교롭게도 유대교로 부터 비판을 받는 '친아버지가 없다'는 부분에서, 마태와 누가 만이 족보를 전했고, 이 두 복음서만이 처녀잉태를 전한다.


마가복음은 마태,누가복음 보다 먼저 지어졌는데, 마가복음은 예수의 족보는 없지만, 거지가 소리치는 부분(마가10:47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마가복음만 있었다면 유대교에서 족보의 유무논쟁만 불러일으켰겠지만, 마태와 누가복음이 족보를 실으면서 처녀잉태를 동시에 실었기 때문에 변증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를 마치 다윗의 후손이 아무 것도 아닌 양, 예수는 신이며 삼위일체 라며 아는체 하는 소리는 그냥 무시하면 되겠다.

예수가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족보를 실을 필요가 전혀 없으며, 다윗의 후손 여부도 아무 상관이 없다.

요한계시록이 예수의 계시가 아닌 이유와 대안

종교경전/고등비평 2013. 5. 1. 04:15

<요한계시록이 예수의 계시가 아닌 이유와 대안>

1)요한계시록에 예수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한다(1:8,21:6,22:13)

알파와 오메가란 그리스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를 말하는데, 그 뒷 구절에 설명되었듯,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리스어를 할 줄 몰랐다. 예수는 아람어 사용자이며, 그리스어를 설령 알았다고 한들 계시를 그리스어로 주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계시를 받는 사람이 사도 요한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2)요한계시록의 저자를 흔히 사도 요한이라 이야기 한다
이는 1:1도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이다. 1:1에는 '종 요한'이라고 했지 자신이 사도라는 단어조차 없다.

요한계시록을 사도 요한이 썼다고 치더라도, 그는 100세 가까이 살았다는 이야기 인데, 이는 신빙성이 없다. 조선시대 왕이나 산해진미 먹어도 평균 46세 면 죽었는데 그보다 1300~1800년 앞선 요한이 100세 까지 살았다? 고려시대에도 왕의 평균 수명이 42세.
요한보다 200년 전 사람인 중국의 진 시황제도 안 죽으려고 발악을 했는데 49세에 죽었다. 예수와 사도 요한이 살았던 시대 ±100년 정도의 로마 '황제'가 암살을 빼고 최장수해봤자 70대.

즉,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지은 것이 아니라 어느 '요한'이 지은 것이며, 요한이란 이름은 철수와 영희같은 이름이다. 신약성경에 세례자 요한, 요한 마가(마가복음의 저자라고 불린 사람), 사도 요한, 베드로의 아버지 요한만 해도 4명이며, 야고보도 4명이다. (번외 이야기지만 예수라는 이름은 원래는 여호수아,예수아,예슈아 이며 구약성경에 널렸다.)

사도 요한이 AD 100년 정도까지 살았다는 전설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 교부는, 소문이나 몇 번 건너 듣는 이야기를 엄청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사실은 알고 제시하는 것인가? 더구나 요한은 흔한 이름이었으므로(당시에는 성이 없었기에 이름이 다 똑같았다) 헷갈렸을 가능성이 훨씬 많다.

설령 사도 요한이라 치자. 사도 요한은 시골촌뜨기 어부였으며 아람어 사용자였다. 예수가 사도 요한에게 들려준 말은 아람어 였을 것이지 그리스어로 들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요한이든 베드로든 예수든 촌놈들이라고 불렸다(복음서의 내용).

3)계시록의 언어 문제
계시록에서 요한이 말하는 부분과, 예수가 말하는 부분이 아람어라면, 24장로가 야훼에게 말하는 말은 어떤 언어이며, 천사가 외치는 말은 어떤 언어인가?

환상속에서 예수가 요한에게 직접 다 적으라면서, 심지어 요한은 계시록 맨 마지막에 여기서 단어 하나라도 더하거나 빼면 저주를 받을 거라고 필사자에게 협박까지 하는데,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으므로 모두 그리스어로 말했을 것이다. 예수가 아람어로 말했는데 요한이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적었다면 일단 1차 왜곡이 있었으므로 계시에 오류가 생긴다. 그러므로 모두 그리스어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사상 모순이다.

24장로는 원래 없는 존재이고 천사는 (예수시대-신약성경-에는 아람어, 그 전 시대-구약성경-에는 히브리어)를 썼을 것이며-사실 천사의 언어가 변한 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만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까지 그리스어를 쓸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당시 여자는 물건 취급 당했으며, 글을 배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아마도 아람어를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사는 아람어로 이야기 해야지만 마리아에게 잉태를 전할 수 있었다. 한편 그 잉태 이야기를 쓴 누가복음은 그리스어로 쓰였다.

마태복음에서 요셉에게 말한 천사 역시 아람어로 말했을 것이며, 요셉은 목수(일용직 막노동꾼)였으므로 자기네 말도 잘 몰랐을 것이다. 역시 그 이야기를 쓴 마태복음은 그리스어로 쓰였다.

더 나아가 구약성경에서 천사가 성경의 인물들에게 말하는 구절 역시 전부 히브리어로 적혔으므로, 히브리어로 말했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언어는 변할 수도 있지.."라는 주장은 요한계시록이 작성된 이후의 모든 계시는 -예수의 계시니 마리아의 계시니 자신들의 언어로 계시를 받았다는 내용을- 전부 계시로 인정해야 한다. 그건 정경이 아니지 않냐 할지 모르는데, 예수가 AD 100년 경에만 계시를 한번 주고 약 300년 지나 정경 확정된 이후 계시를 주지 않았다는 주장을 감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의 뜻을 인간이 어찌 안다고 계시를 부정하나?

AD 100~400년 사이의 계시는 다 가짜이며, 그 이후의 계시도 다 가짜라면 요한계시록도 가짜라고 주장되는 것은 당연한 순리 아닌가?

4)예수는 영으로 요한과 말하고 있다
예수는 영으로 등장한 적이 없으며, 부활 후 사도들에게 육체를 가지고 나타났다. '육신의 부활', 만약 이것이 거짓이라면 예수교는 무너진다. (그래서 신약성경 거의 모든 권이 부활에 대해 다루고 있다.)

더구나 예수 자신이 영으로 오겠다고 한 적이 없다. 부활 후 영으로 부활한다는 이야기도 한적이 없다. 사두개인들과의 부활여부 논쟁(공관복음서 모두)에 있어서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표현은 천사 처럼 영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천사 처럼 성욕도 없어서 자식을 키울 부부관계는 필요없으며, 다시 죽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천사처럼 질병과 고통 또한 없다. 이것이 메시아의 사명이다.

"사도 바울이 영으로 된 예수를 보지 않았는가?"라고 주장할 지 모르나, 그것은 사도행전 딱 1군데 에서만 나타나는 기록일 뿐이며, 심지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직접 쓴 편지에서 예수를 어떤 에피소드로 어떠하게 만났다는 단어 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개신교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유일하게 직접적인 저자로 인정받고 혼자서 여러권을 쓴데다, 철저한 검증에서도 7권이나 살아남은 사도 바울이 나는 예수를 이러이러하게 봤다고 이야기 한 적이 없다. 사도행전을 제일 빨리 잡은 연도가 바울편지(AD 50년대 초반)보다 최소 30~40년 후의 작품이다. 즉, 본인도 말하지 않은 사실을 다른 사람이 주장하고 있는 꼴.

예수의 육신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교는 존재 이유가 없으므로, 서양에서는 '예수는 정말로 죽고 부활하였는가?' 라는 주제로 1:1 맞짱토론이 심심찮게 벌어지며 무신론이고 이슬람교고 물불 가리지 않는다. 이 부분에 있어서 예수교 철학자이자 변증론자 윌리엄 크레이그는 이 주제 하나만 가지고 여러번 토론해대고 부활이 진짜라고 주장했다. 그 크레이그는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와 토론을 못해 안달병이 났을 정도로 부활에 목숨 걸고 있다. 왜? 부활이 거짓이면 예수교는 가짜니까. 그래서 변증론자들은 이슬람교와도 토론에 나선다. 이슬람교는 예수가 직접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다고 믿지 않으니까. 예수는 알라가 천국으로 보내주고 예수 인것처럼 감쪽같이 속인 배신자 유다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주장하니까.

5)요한계시록이 비정경이라고 비판받은 적이 있다.
무신론자들의 비판이 아니라 초대 교회에서부터 정통이라 불리는 집단에서조차 이것은 예수의 계시가 아니라며 정경이 아니라 했을 뿐더러, 정경을 확정지은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 까지도 이것은 정경이 아니라며 치고박고 싸웠다.

결국 당시 교회(지금의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밀고나가서 정경이 되었으나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다시 부정되었다.

정작 요한계시록을 정경이라고 밀어붙인 원조 집단은 계시로 보지 않고 묵시문학작품으로 보는 반면, 원조의 이단격인 개신교가(대부분 근본주의) 진짜 계시라며 일일이 구절과 단어를 쓰인 이후의 사건들에 맞추어 해석하려 들고 있다.

정통이 된 집단이 이단 정죄한 소위 '초대 교회 이단들' 또한 요한계시록은 정경 축에도 끼워주지 않았다. 번외 이야기지만, 사도의 저작이라 주장되었던 베드로,야고보,히브리 서신 등은 물론이고 바울 목회서신(디모데전서,후서,디도서)도 정경에 끼워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이단들'의 주장은 1800년 후 적중하여 바울 목회서신은 물론 베드로 서신도 의심할 바 없는 차명서신으로 분류된다.

6)요한계시록이 정경이 되었다면, 베드로계시록도 정경이 되었어야 한다

계시록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베드로계시록도 만만치 않은 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에 비해 분량은 작지만 그리 작성연대가 차이나지도 않을 뿐더러 초대 교회는 이것도 사도가 쓴 계시록으로 읽었다. 베드로계시록도 예수가 말하고 있다. 그래서 두 계시록은 둘 다 정경이라고 주장되거나, 둘 다 비정경이라고 주장되었지, 어느 한 쪽 만이 정경이라 하지 않았다.

7)예수는 열매를 강조했다.(공관복음서 모두)
예수와 바울 역시 종말론자였다. 하지만 예수의 종말론과 바울의 종말론으로 나쁜 열매를 맺은 것에 비해, 특히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은 열매가 좋지 못하다. 요한계시록 만큼은 쓰인 직후부터 종교 사기가 1900년 동안 벌어졌다. 요한계시록으로 종말이 언제라고 주장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 종말론으로 사람들의 모든 재산과 인생을 헌납하게 한 사례는 셀 수 없다. 이는 나쁜 열매이다. 분명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예수와 바울의 종말론인데, 듣도 보도 못한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이 더 진짜인 양 행세를 하고 있으며 이는 거짓이다.

만약 요한계시록이 빠진 26권이 신약성경이었다면 예수와 바울의 종말론에 의해 '언젠간 오겠지, 내가 죽기 전에 오겠지' 정도의 무한한 기다림만 있었을 것이지, 언제 무슨 일이 있고를 정확하게 찝어내진 못했을 것이다.

8)예수의 말이 복음서와 달라졌다(1)-예수는 자신이 계시를 나중에 준다는 얘기를 한적이 없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라 하면서 나올 것이며 거짓 예언자들이 설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인자가 올때에 이러이러 할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갑작스러운 재림을 주장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예수 사후 최소 60년 후에 등장하면서 은밀하게 섬에서 유배받고 있던 요한 한명에게 슬쩍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예수의 뜻인가? 복음서보다 계시록이 우선인가? 복음서는 육체를 가진 예수가 땅에서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계시록은 환상 속에서 영인 예수가 한명에게 이야기 하고 보여주고 있다. 다시 한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9)예수의 말이 복음서와 달라졌다(2)
2:20에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는데 이것은 죄라고 표현된다. 이는 예수의 뜻과도, 바울의 뜻과도 어긋나는 가르침이다. 예수도 바울도 음식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 구절은 비유니 어쩌니 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왜냐하면 근처의 말은 과거의 사람에 빗댄 비유이지만 이 말은 비유가 아니다.

이사벨로 비유한 이유는, 이사벨이 이스라엘에게 섬기게한 이방신 바알과 대결해 승리한 전설적인 예언자, 신약성경에서도 두 명(세례자 요한,예수)이나 그 사람이라고 칭함 받은 사람, 불수레 타고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예언자의 대표 엘리야다.

그런 이사벨 같은놈이 지금 두아디라 교회에 있는데,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신자들과 같이 먹고 있으니 그 제물 같이 먹는 사람 가만 안둔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예배에 먹지? 하는 생각을 가지겠으나, 초대 교회에서는 예배 자체가 그냥 식사에 가까웠다. 빵과 포도주를 메인으로 한. 가톨릭에서 매주 하는 조그만 면병 주는게 성만찬이 아니었다. 개신교에서 몇달에 한번 하는 떡이나 빵 조각에 포도즙(주?) 한 스푼에 가까운 양의 컵으로 하는 성찬은 더더욱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다 같이 식탁 차려놓고 빵 쌓아두고, 포도주를 박스채로 갖다 놓고 예수의 몸과 피를 생각하며 먹고 마신거였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못 먹은 사람을 위해 좀 기다리면서 배고프면 식사 미리 하고 오라는 둥 이야기 하고 있다.

10)예수의 말이 복음서와 달라졌다(3)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고, 이웃은 물론이고 원수도 사랑하면서, 사도 요한이 벌을 주자고 제안했을 때 사도를 꾸짖은 예수가 계시록에 와서는 교회에 심판을 내려 죽이겠다고 무자비하게 폭력적으로 변한다. 요한계시록이 '예수가 사도 요한에게 준 계시'라면서 사도 요한에게 육체로 있을 떄와 영으로 보여줬을 때의 말이 다르다? 이는 사도 요한이 쓰지 않았다는 증거 이기도 하다.

요한계시록이 정경된 이유는 '사도'의 글이라는 것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그것이 정경의 기준이니까), 사도의 글이 아니거나 사칭한 것이라면 정경목록에서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그리스도교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어떠한 대안이 있는가?>

1)진짜 계시가 아닌 묵시문학적 작품으로 바라 본다면 문제는 일단락 지어진다.
이미 AD 397년에 정경 된 상황에 현대 신학에 맞추어 비정경으로 요한계시록 1권이라도 들어냈다간 나머지 26권 중에서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절반 이상 들어내야 한다.

묵시문학적 작품이라면 그것이 사도 요한이 썼네 안썼네, 실제 일이 벌어지네 아니네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지고, 당시의 상황, 즉 '그 만큼 힘든 이 시기에 지금의 박해를 참고 견디면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 는 주제만 남게 되므로 그리스도교는 유지될 수 있다.

2)묵시문학적 작품으로 바라보아 요한계시록이 진짜 종말묘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종말론에는 변함이 없다
설령 또 다른 종교 개혁이 일어나 요한계시록을 들어낸다 하더라도 예수와 바울의 종말론에는 변함 없으며, 교회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종교 개혁 당시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들어내려고 시도 했던 것이다.

루터회의 창시자, 종교개혁자의 대표 마르틴 루터는 "사도의 것도 아니고, 예언도 아니고, 지킬 것도 없고, 무슨 말 하려는지도 모르겠고.." 라는 평을 했다. 루터의 생각은 현대신학에 들어 적중했다.

3)묵시문학적 작품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유대교에서는 이미 1900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다니엘서를 예언서에 분류해 놓고 예언인 양 끼워 맞추려는 노력을 했으나(주로 근본주의 개신교), AD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확정되고 지금까지도 다니엘서는 '성문서', 잠언이나 시편 같은 문학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유대교가 무너졌는가? 지금까지도 유대교는 살아남았다.

구약경전의 소유자인 유대교에서 조차 다니엘서가 예언이 아니며 문학작품이고, BC 500년대에 지어진게 아니며 BC 100년대에 지어진 것이라 이야기하는데, 근본주의 개신교에서 진짜 다니엘이 BC 500년 대에 지은 것이며 예언서라고 우기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예수의 계시가 아님을 10가지로 증명했고, 그 대안으로 묵시문학적 작품으로 바라보아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3가지로 보였다.
이는 본인 전투적무신론의 생각이지 어느 책에 나온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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